지난 6·4 지방선거에서 13번의 도전 끝에 당선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박경철 익산시장이 최근 쏟아지는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박 시장 취임식.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최고의 스타덤에 오른 이는 단연 박경철 시장이다.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 12전 13기 도전 끝에 당시 이한수 시장을 0.6%에 불과한 736표 차이로 근소하게 누르고 당선됐다. 그의 당선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인 호남지역에서 이변으로 꼽혔다.
그런 만큼 그가 시장직에 오르자 익산시민들의 눈과 귀는 온통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정치인들의 오랜 구태에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익산시민들은 박 시장의 등장을 어느 때보다 반가워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어떠했을지 미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10개월 정치 성적표에는 물음표가 잔뜩 붙어 있다. 취임 직후부터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시의회와의 대립 등 돌출·파격행보가 내내 이어졌다. 지역사회에서는 박 시장의 리더십을 ‘나를 따르라’는 불통형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황당한 시정, 모현동 우남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대피명령, 시청사 분할, 시의회 의장 축사 생략, 예산안 등을 두고 벌인 시의회와의 대립은 ‘소통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들로 지적되고 있다.
박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전북 정치권의 ‘이슈 메이커’였다. 지난해 7월 자신의 관용차에 호출명 ‘거북이 1호’ 무전기를 설치한 뒤 용무가 생기면 비서실을 비롯해 행정지원과(거북이 5호)와 산림과 등 5개 부서에 ‘거북이’를 외치며 공무원을 찾았다. 이에 직원들은 “휴대전화로도 소통이 충분한데, 왜 이런 촌극을 벌이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무관(5급) 면접에서는 “당신은 전임시장 편이지?”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줘 한동안 시청내부에서 회자되는 등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이어 단행한 정기인사에서 전임 시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과장들을 면장으로 ‘유배’보냈다. 주요 보직 6급직들은 한직으로, 비서실 출신 6급직들은 무보직으로 발령했다. 특히 A 과장은 운전면허도 없는데 집에서 가장 먼 면사무소로 내쫓는 치졸함을 보였다.
지역 정치권과도 사사건건 충돌했다. 시의회와는 초장부터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나뉘어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내는 등 척진 지 오래다. 지역 행사장에서 정치인 축사가 갑자기 사라진 전말은 지역정치권과의 불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그렇다고 제 식구끼리 화합하는 것도 아니다. 박 시장은 익산시공무원노동조합과도 사사건건 날을 세웠다. 이 바람에 지난 1월 30일 박 시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당일 시공무원노조는 마치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직속상관인 ‘시장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불통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는데도 박 시장의 시정운영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박 시장이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제안한 ‘공무원 택시 타기 운동’이 또다시 잡음을 내고 있다. 박 시장은 택시타기 운동 첫날인 2일 집에서 자신의 관용차를 타고 시내권으로 들어와 택시로 갈아탄 뒤 시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 세인들의 입살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 시장의 전대미문의 돌출 파격 행보만큼이나 원인에 대한 억측도 무성하다. 익산시 사정에 밝은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그 원인을 ‘시장의 독단·독선행정’과 ‘시의회의 발목잡기’로 분석했다. 그는 “무엇보다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인 박 시장의 독특한 스타일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파악했다. 오랫동안 야인생활을 해온 박 시장이 아직도 시장인지 시민활동가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식’으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가 일각에선 박 시장의 돌출 행동 이면에는 정치적 세력 간 반목이 보다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다른 정치권 인사는 “박 시장은 12전 13기의 정치적 신화를 이룬 인물로 시민시장으로 자처하면서 젊은 층이나 일부 시민들에겐 인기가 있지만 비토세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산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출신 일부 시의원들이 중앙 정치에 휘둘리면서 박 시장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반대한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지적이다.
지역 정가에선 박 시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법당국에 고소당한 것을 두고 특정 정치세력 내지 브로커 세력의 조직적 반격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박 시장도 지난 1월, 1심 공판이 끝난 뒤 “여러 가지 기득권층의 집요한 공격에 힘들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또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취임 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시의회와의 갈등이었다”고 답답한 심경을 술회한 바 있다.
이제 그 앞에는 애초 기대했던 꿈과 희망 대신 ‘독선’과 ‘불통’ ‘아집’이라는 악성 딱지가 덧씌워졌다. 설상가상으로 박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당장 자신의 신분 보전마저 장담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빠졌다.
쏟아지는 비판에도 ‘뚝심(?)’으로 일관하는 박 시장이 내우외환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역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