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채 샤워하는 것이 힘들다.’
전직 모델이자 소설가인 샌드라 하워드(74)는 하이힐을 신는 것도, 밤에 책을 읽는 것도 어렵다며 나이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2>의 한 장면.
사람들은 일흔이 넘으면 자연히 나이게 걸맞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하워드는 “아직도 마음은 18세 청춘이다. 내 머리는 내가 아직 18세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거울을 볼 때가 그렇다. 마음과 달리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이게 정말 나야?”라며 놀라곤 한다는 것. 하워드가 꼽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워드 개인의 경험이긴 하지만 상당 부분 일반적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1. 어느 날 AA(영국자동차서비스협회)로부터 두꺼운 도로지도책이 배송되어 왔다. 동봉된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기분이 좋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50년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 이 도로 지도책과 함께 돋보기가 선물로 배송되어 왔다.
4. 한 무리의 노인들이 인도 호텔에 모여 지난날을 회상하고 치유하는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을 보다가 “장례식보다 아직은 폐경이 더 가깝다”는 대사를 듣고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말은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내 나이는 폐경보다 장례식이 가까운 나이였다.
5. 과거에는 파운데이션을 피부의 잡티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가 됐다.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주름살이 더 드러나 보이고 더 깊어 보인다. 피부 잡티는 더 이상 화장품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6. 버스에서 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랬더니 예의바른 젊은 여자가 일어나서 다시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줬다.
7. 자녀들의 이름을 혼동한다. 손주들의 이름을 서로 바꿔서 부르기도 한다.
8. 과거에는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즉시 볼일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변을 보려면 한참을 앉아 있어야 한다. 공중화장실의 경우에는 볼일을 보고 단추를 잠글 때면 벌써 사람들이 노크를 하기 시작한다.
9. 부부 간에 하는 농담이 바뀌었다. 이제는 귀가 먹었다거나, 건망증에 대한 농담을 한다. 상대가 하는 말이 전혀 안 들리거나 잘못 알아들어서 빵빵 터진다.
11. 극장이나 박물관에서 표를 끊을 때면 더 이상 아무도 내게 노인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노인표를 끊어준다.
12. 손등의 정맥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으며, 악어가죽처럼 갈라져 있다. 손등의 노화는 성형수술로도 해결할 수가 없다.
13. 양말을 신을 때면 꼭 침대나 의자에 걸터앉는다.
15. ‘저 어린 청년이 참 친절하네’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그 청년의 나이는 35세였다.
16. 머리카락과 눈썹이 부쩍 가늘어졌다.
17. 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하게 ‘어린아이’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도 벌써 20대다.
18. 60~70년대 가수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콘서트장을 찾았던 날을 떠올려 보니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19. 이제는 노후 계획, 은퇴 후 내 집 마련, 중풍에 걸릴 확률 등과 같은 정보에 더 관심이 간다. 디자인이 예쁜 옷보다는 편한 고무줄 허리 바지를 더 즐겨 입는다.
20. 오래 서있는 것이 힘들다.
21. 자꾸만 조용하고 평안한 것을 찾는다.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TV에서 시끄러운 광고 소리가 나오면 짜증이 난다.
22. 요즘 나온 리메이크 영화를 보면 원작보다 형편없다면서 끊임없이 투덜댄다. 요즘 젊은 배우들도 훌륭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원로 배우들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23. 집에 남편(아내) 없이 혼자 있을 때면 뛸 듯이 기쁘다.
24. 요통, 무릎 통증, 발가락 통증, 관절염 등을 앓고 있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심지어 새끼발가락까지 아플 때도 있다.
25. 키가 줄었다.
26.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신을 차리기까지 오래 걸린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난 후에도 방금 말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똑바로 설 수가 없다.
27. 선 채 샤워하는 것이 싫다. 그보다는 앉아서 씻거나 탕 속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것이 좋다.
28. 예전에는 밤에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밤에 책장을 펼치면 서너 장만 읽어도 잠이 스르르 몰려온다. 낱말 맞추기와 같은 게임을 하면 바로 잠이 쏟아진다.
29. 치아 크기가 눈에 띄게 커졌다. 그만큼 잇몸이 닳았다는 의미다.
31. ‘옛날이 좋았지’란 말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 옛날이 진짜 옛날이다. 이를테면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일 수도 있다.
32.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 늙어서 얼굴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33. 다이어트를 생각해서 일부러 먹지 않았던 고칼로리 음식(예: 바나나, 아보카도 등)을 이제는 씹기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는 이유로 즐겨 먹는다.
34. 엄지손가락 두 개만 이용해서 문자를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
35. 장거리 여행을 하고 나면 3~4일 간 피곤해서 앓아눕는다.
36. 집안 곳곳에 돋보기안경이 준비되어 있다.
37. 나도 모르게 했던 말을 자꾸 또 한다. 어떤 경우에는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던 사람에게 처음인 양 다시 해줄 때도 있다.
38. 오랜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주름은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39. 이제는 밤늦게 깨어 있는 게 너무 힘들다. 밤 10시면 졸음이 쏟아지고, 자정까지 자지 않고 있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40.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점점 늘어난다. 검정색 상복을 세탁하는 일이 잦다.
41. 유통기한을 깜박 잊고 지나치기 일쑤다. 몇 개월 지난 요구르트를 모르고 먹을 때도 있다.
42.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게 힘들다.
43. 이제는 하이힐을 신는 게 힘들다. 신어도 오래 걸어 다닐 수가 없다. 보통 굽이 없는 신발을 신는다.
44. 식당에 가면 메뉴판 글씨가 안 보여서 애를 먹는다.
45. 너무 환한 식당보다는 조금은 어두운 부드러운 조명이 더 좋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