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NC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한 권혁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야구계 한쪽에서는 빈볼 사태의 중심에 김성근 감독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큰 논란이 불거진 것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김성근 감독을 희생양 삼으려는 야구 관계자들의 행태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KBO가 빈볼을 던진 한화 투수 이동걸뿐만 아니라 김성근 감독과 구단에게도 각각 300만 원과 500만 원의 제재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에게 선수단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고, 김 감독은 이 징계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빈볼은 속어로 머리를 뜻하는 ‘빈(Bean·콩)’에서 유래된 야구 용어다. 투수가 투구 시 고의적으로 타자의 머리 부근을 겨누어 던지는 반칙투구로 심판이 빈볼을 적발했을 경우 경고 및 퇴장을 명령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빈볼을 맞고 사망한 선수가 있을 정도로 상황에 따라선 이 빈볼이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KBO리그에서는 빈볼이 발생하면 투수에게 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등 제재를 가한다.
지난 12일 경기에서 롯데 황재균이 4회와 5회 연속 한화 투수의 공에 몸을 맞은 상황은 빈볼이 한 타자에게 두 번 연속 맞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논란이 촉발됐다. 더욱이 이동걸의 등판 때 나온 두 번째 빈볼은 벤치에서 나온 지시라는 것과 황재균을 표적으로 삼은 ‘비매너 빈볼’이란 지적이 대두되었다.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4월 12일 한화와 롯데 사이에 벌어진 벤치클리어링. 김성근 한화 감독의 빈볼 지시 논란과 이종운 롯데 감독의 감정 섞인 인터뷰로 인해 한동안 야구계가 시끌시끌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11일(2차전) 경기에서 투수의 공이 김태균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가만히 지켜만 봤다. 복선은 그쪽(롯데)에서 먼저 깔았지만, 선수들에게 동요하지 말라고 했다. 1차전에서 롯데가 8-2로 앞선 6회 말에 황재균이 2루타를 친 뒤 2사 후 3루 도루에 성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런데 3차전 1회 7-0으로 앞선 상황에서 또 도루에 성공했다. 김민우가 마운드에서 황재균을 상대로 몸에 맞는 볼을 던졌을 때, 롯데에서 선수교체가 있었다면 아무 문제없이 경기가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타석 때 황재균이 또 들어섰다. 우리 선수들 입장에선 가만히 지켜보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김 감독의 얘기를 정리하면 점수 차가 크게 나는 상황에서 상대 팀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롯데가 했고, 이에 대해 한화 선수들이 나름 ‘신호’를 보냈지만, 황재균이 3차전 4회 말에 이어 5회 말에 다시 타석에 들어서니까 빈볼로 대응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1차전 롯데가 8-2로 앞선 6회 말에 황재균이 도루를 한 부분은 경기 후반이 아닌 중반이었고, 실제로 한화가 8, 9회 동점을 만들며 역전승을 노리기도 했기 때문에 황재균의 그 도루가 야구의 불문율을 깼다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
김 감독은 빈볼 지시가 벤치에서 나왔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선 “이미 인터뷰를 통해 얘기했지만 내가 직접 지시한 일은 절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감독은 다른 것보다 이종운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언행에 상당히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남의 팀에 피해를 주면, 그 팀에도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황)재균이가 무슨 잘못인가. 열심히 하는 선수일 뿐이다. 우리는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똑같이 할 가치가 없어 참았다. 앞으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김태균을 왜 뺐나. 오늘 경기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인가. 한화전은 앞으로 10경기나 넘게 남아 있다. 앞으로 우리 팀 선수를 가해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야구로 승부하자”고 격앙된 목소리로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이종운 감독은 큰 결례를 했다. 어느 상황에서도 상대 벤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매너가 아니다. 김태균을 왜 뺐느냐고 지적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렇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선수를 그냥 타석에 내보내야 하는 게 맞나. 그리고 이 감독은 마치 내가 빈볼을 지시했다고 단정 지어서 말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인터뷰를 하는 건가. 싸움은 야구장에서만 하는 것이다. 시합 끝나면 선후배로 돌아가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 감독이란 위치에서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데, 이 감독은 그 선을 넘었다.”
실제로 야구 경기 중 빈볼로 인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해도 감독들은 모르는 척 입을 닫고 지켜만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빈볼과 벤치클리어링은 선수들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종운 감독의 감정 섞인 인터뷰는 이 논란에 불을 지핀 격이었다. 이 감독은 이후 자신의 발언에 대해 올바른 행동이 아니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김성근 감독이 선임된 이후 한화는 KBO리그의 ‘핫이슈’ 팀이었다. 마무리훈련에 이어 스프링캠프, 그리고 시범경기까지 한화 관련 뉴스가 야구 기사 메뉴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다른 팀으로부턴 시기와 불편한 시선을, 한화 팬들로부턴 엄청난 기대와 찬사를 받으며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그런 가운데 이번 빈볼 사태는 ‘반 야신(野神)’ 여론에 불을 지핀 계기로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즉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라서 빈볼 사태가 다른 사례와는 달리 더욱 확대됐다는 해석이다.
17일,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은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김성근 감독이 억울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허 위원은 “야구계에서도 ‘이번 빈볼 사태가 김성근 감독의 허락 없이 가능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물증은 아무것도 없다. 선수들에게 확인해 봐도 모른다는 반응이다. 감독의 스타일을 놓고 빈볼 논란이 벌어지는 점에 대해 김성근 감독이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은 “지금이 정상적인 것이다. 김성근은 이렇게 욕먹는 게 맞다. 그래서 강연 다니며 칭찬받을 때 솔직히 불편했다. 욕먹는 김성근으로 돌아온 셈이다”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3년 만에 프로야구 현장으로 돌아왔지만, 김 감독은 매일 치열한 승부 속에 놓인 상황에 대해 고단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현재 위궤양 초기 단계다. 약 먹으면서 버티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가중되면 또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빈볼 사태’는 수그러들었지만, 야구는 계속되고 있고, 김 감독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김 감독은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자신의 길을 가겠다며 ‘마이 웨이’를 선언했다. 조인성과 정근우가 돌아오는 즈음에는 한화 야구도 탄력을 받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깊게 패인 김 감독의 주름살이 조금 펴질 수 있을까? 야구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고 있다는 김성근 감독의 말이 가슴을 때렸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투수 혹사 비판에 대한 입장은? “기록 보고 얘기해”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은 시즌 초부터 포스트시즌을 연상케 하는 투수 운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매 경기 한국시리즈 7차전을 능가하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투수 기용이 이어졌고, 결국엔 고스란히 마운드의 부담으로 나타났다. 윤규진(위), 권혁. “어느 기자가 윤규진 혹사 운운하더라. 그래서 기록을 찾아보라고 했다. 윤규진이 얼마나 던졌는지를. 생각처럼 많이 안 던졌다. 그런데 무슨 혹사라고 하느냐, 알고나 쓰라고 얘기해줬다. 안영명을 선발로 내세우자, 이번에도 말이 많았다. 왜 안영명을 선발로 올리느냐고. 우리 팀에 외국인선수 두 명을 제외하고 선발감이 보이냐고 물었다. 안 보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감독이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선발로 쓸 수 있는 선수 중 안영명이 가장 믿을 만했기 때문에 선발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도 투수를 아끼고 싶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선수 아끼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밖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 하는 건 의미 없다. 이 안으로 들어와서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김 감독은 선수를 기용할 때 트레이너의 의사를 100% 반영한다고 얘기했다. 트레이너가 아픈 선수라고 말하면 절대 출전시키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