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즈>의 장진영 머리가 여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영화 속 귀염둥이 ‘나난’의 헤어스타일이나마 닮고자 안달이었다. 그러나 정작 장진영의 부풀린 단발 파마머리가 하루 네 시간이 걸리는 생고생의 결과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영화 속 멋내기에는 늘 이렇게 숨은 공이 든다. 게다가 <싱글즈>의 두 여주인공 엄정화와 장진영의 옷매무새와 헤어스타일은 사실 영화 제작진의 ‘노심초사’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도도하면서도 남자 문제에서만큼은 한없이 자유분방한 영화 속 엄정화의 스타일은 세련된 정장에 분방한 머리 모양으로 다듬어졌고, 처음에는 다소 남자에 의존적이었지만 점차 독립적으로 변해가는 장진영의 캐릭터는 옷보다는 헤어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숱한 기획 회의 끝에 낙점된 게 바로 장진영의 ‘귀염덩어리 머리’였다.
충무로에서는 영화를 찍기 전 돼지 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의상 테스팅’이란 걸 한다. 시나리오에 따라 영화 속에서 입어야 할 의상을 배우가 의상 디자이너와 함께 한꺼번에 입어보는 것이다. 그만큼 의상은 영화 속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소품이다. 때문에 이렇게 세심하게 설정된 영화 속 의상을 입는 배우가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강력한 ‘트렌드 세터’(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싱글즈>뿐만이 아니다. <어린 신부>의 문근영이 입고 나온 의상들은 벌써 여고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특히 문근영의 몸에 착 달라붙는 체육복은 한창 몸에 관심이 많은 여고생들뿐만 아니라 아저씨들의 ‘롤리타 콤플렉스’도 제대로 자극한다. 사실 어린 나이에도 가슴 ‘빵빵’하고 다리 늘씬한 문근영의 참한 몸매가 솔직하게 드러나는 영화 속 체육복과 교복은 특별히 제작된 것들이다.
영화 의상은 ‘의상’이지 ‘의복’이 아니다. 아무리 요즘이 의상과 의복의 구분이 모호해진 시대라고 해도 영화 속 패션을 그대로 따라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파마약 듬뿍 발라서 두 시간을 공들여 만든 그녀의 머리는 ‘장진영 머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사자 머리’에 가까웠다. 놀라 뒷걸음질치는 미용사에게 말도 못하고 씩씩거리는 그녀의 표정이라니…. 정말 머리가 아프다.
지형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