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키맨으로 꼽혔던 경남기업 성 전 회장의 최측근 박준호 전 상무(왼쪽)와 수행비서 이용기 씨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혹을 해소해 줄 귀인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특별수사팀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여기서 귀인이란 성완종 전 회장 최측근인 박준호 전 상무와 수행비서 이용기 씨를 일컫는다. 수사팀은 금품 공여자인 성 전 회장이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더군다나 박 전 상무는 “모든 걸 밝히자는 것이 성 전 회장 유지이니 조사에 협조하자”고 동료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팀은 그의 ‘입’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전 상무와 이 씨는 수사팀에 출석해 입을 닫았다. 비밀장부 존재 여부는 물론이고 성 전 회장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 부인으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수사팀은 박 전 상무와 이 씨를 긴급체포하는 강수를 꺼내들었다. 이는 성 전 회장 측근들의 ‘증거 인멸’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결론에서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둘의 신병을 확보해 추가 증거 인멸을 차단하고, 측근들 사이의 ‘입 맞추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초동 일각에선 이들을 상대로 한 정치권 외압이나 회유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특히 검찰은 박 전 상무와 이 씨가 성 전 회장이 숨겨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 장부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성 전 회장이 죽기 직전 남긴 이른바 ‘8인 리스트’ 메모와는 별개의 로비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수사팀이 경남기업 본사, 성 전 회장 자택, 성 전 회장이 즐겨 찾던 리베라 호텔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이는 수사팀 칼날이 ‘성완종 메모’에 남겨진 친박 실세들을 넘어서 여야를 가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가운데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 일주일가량 전에 거액의 돈을 모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 전 회장이 횡령 및 비자금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4월 3일을 전후로 해서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10억 대의 현금을 갖고 있었다. 지인 등을 통해 융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돈의 흐름을 따라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성 전 회장은 죽기 직전 재정적으로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거액이 필요했던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확인 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성 전 회장과 가깝게 지냈던 한 사업가 역시 “검찰 출석을 앞둔 성 전 회장이 돈이 조금 필요하다고 하기에 변호사 비용이 모자란 줄 알았다. 돈 얘기를 안 하는 분이어서 정말 어려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약속한 돈을 주기로 했는데 성 전 회장이 자살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은 따로 용처가 있었던 것 같다. 박 전 상무 정도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상무는 수사팀 조사에서 관련 내용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이 사실상 구명을 위한 마지막 ‘히든카드’로서 돈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사면초가에 놓인 성 전 회장이 구속을 목전에 두고 최후의 로비에 나섰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성 전 회장의 또 다른 리스트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통상 피의자가 마지막 순간에 접촉하는 로비 대상자로는 과거에 돈을 줘서 통했던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자신을 비호해줄 수 있는 권력 핵심부 인사”라고 말했다. 한 차례 검찰에 다녀 온 성 전 회장에게 10억 원대 ‘실탄’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한 수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도 “성 전 회장이 마지막에 누구를 상대로 로비를 펼쳤는지 그 행적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성완종 게이트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의 사활을 건 로비는 실패로 끝난 듯하다. 이는 성 전 회장의 그간 행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성 전 회장은 4월 3일 검찰 조사 후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울분을 토했고, 9일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제로 경남기업 임직원들은 성 전 회장 자살 후 “마당발 인맥을 최대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성 전 회장으로선 로비가 전혀 먹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 바 있다. 앞서의 성 전 회장 지인 사업가도 “성 전 회장 전화를 거의 안 받는다고 하더라. 성 전 회장이 정권의 타깃이 됐는데 누가 받겠느냐. 나 같아도 성 전 회장을 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