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재외국민 A 씨는 2012년 5월 2일 한국에 입국했다. A 씨는 같은 달 25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19번의 병원 진료를 받았다. 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A 씨의 진료비로 55만 3061원을 부담했다. 하지만 A 씨는 이 기간 동안 건강보험료를 단 한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일부 조건에 부합하는 재외국민에게는 입국과 동시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둔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재외국민 또는 외국인은 입국 후 3개월이 지나야 건보료 지역가입자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지역가입자 자격을 바로 취득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취업이나 유학,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다. 문제는 하루 차이로 납부 규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만약 1일에 지역가입자 자격을 취득한 재외국민이라면 당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지만, 2일에 자격을 취득해 다음달 1일이 돌아오기 전에 출국하면 징수를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무료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입국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기체류 재외국민과 외국인은 지난 2013년 한 해에만 462건에 달했다. 이에 따른 건보공단의 적자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377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보료를 적게 납부하는 재외국민이 단기 체류를 이용해 여러 차례 진료를 받거나 공짜 진료를 받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일면서 국회에서도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이 논의되고 있다.
억대 자산가지만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혜택만 보는 경우도 있다. 분명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다. 오랜 공직생활을 끝으로 은퇴를 한 B 씨는 7억 2000만 원 상당의 아파트와, 532만 원 상당의 토지, 3100만 원 상당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B 씨는 지역가입자로서 월 지역보험료 26만 8357원을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B 씨가 납부하고 있는 건보료는 ‘0원’이다. 월 소득 340만 원에 월 9만 원가량의 건보료를 납부하고 있는 차녀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있어 지역 건보료 납부를 면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과 직장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징수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현행 부과체계를 악용해 건보료를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시가 50억 원 상당의 빌딩과 임대 수입이 있는 개인사업자 C 씨는 지역건강보험 대상자다. 그런데 갑자기 C 씨는 매달 50만 원 가까이 내던 건보료를 월 5만 2000원으로 크게 줄였다. C 씨가 한 사업장의 대표 자격으로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C 씨가 사업자 등록을 한 업체는 다름 아닌 자신의 빌딩관리 업체였다. 직원으로 등록된 근로자는 경비원 2명과 미화원 3명이 전부였다. 자산가인 C 씨가 재산이나 생활수준 등을 기준으로 내는 지역 건보료보다 월급에 대해서만 건보료를 내는 직장 건강보험을 선호하는 것은 이원화된 현행 부과체계의 맹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팀장의 지적이다.
“현행 건보료는 직장인들은 소득, 자영업자는 재산이라는 이원화된 부과체계를 가지고 있다. 직장과 지역으로 나뉜 현행 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피부양자나 직장가입자와 관련된 문제를 없앨 수 있다는 것에는 상당부분 공감대가 이뤄졌다. 그러나 부과체계 일원화는 소득 파악률이 미흡하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건보료 개편이 소득 파악률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원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부과체계 개선과 관련해서는 과정과 방법에 대해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건보공단 자격부과부 관계자는 “이원화된 현행 부과체계를 이용해 악의적으로 건보료를 적게 내는 지역 보험가입대상자에 대해서는 현지조사를 통해 가려내고 있다. 일부러 줄여 낸 건보료에 대해서는 강제징수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