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가양동 A 공연 연못. 아래 사진은 현장 조사를 위해 나온 경찰들.
지난 4월 21일 오후 2시 정각, 서울 강서구 가양동 A 공원의 연못 부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시신이 발견된 사실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연못을 가리키며 “저기서 미는 것도 힘들고 술 먹고 혼자 들어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수심이 이렇게 얕은데…”라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물가를 들여다보았지만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수면 위에 선명하게 비칠 정도로 수심은 깊어 보이지 않았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사건’을 아는 사람을 겨우 만났을 만큼,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적어 보였다. 경찰이 다녀간 장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흔한 ‘폴리스 라인’도 흔적조차 없었다.
하루 전인 20일 오후 5시, A 공원으로 운동을 나온 주민이 “마네킹으로 보이는 물체가 떠 있다”며 가양지구대에 신고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경찰 조사 결과, 시신의 주인공은 인근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 씨(여·57). 연못 바로 옆에서는 이 씨의 녹색 조끼와 흰색 운동복 바지, 슬리퍼가 발견됐다. 성폭행 흔적도, 외상도 전혀 없는 알몸 상태였다. 당시 경찰은 시신이 부패되지 않아 사망한 지 1~2일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그 뒤 A 공원의 ‘나체 시신’ 소식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기자가 공원을 찾았을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원은 여전히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A 공원은 무엇보다 연못이 지닌 특유의 아름다움이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해바라기 꽃 모양의 풀숲은 둥근 원을 그리며 연못의 멋스러움을 한껏 돋보이게 만들었다. 빨강 노랑 등 오색 빛깔의 꽃들은 연못과 함께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사건에 대해 물어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우린 몰랐어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주민들이 많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공원 모습이 서글픈 복선을 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후 3시, 건장한 사내 여섯 명이 공원 입구에 놓인 통나무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그들은 ‘조심하라’고 서로에게 주의를 주며 연못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넘었다. “어디에서 나오신 거죠?”라는 기자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공원관리인조차 “정체를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울타리를 건너간 한 사람은 허공에 두 팔을 쭉 벌려 어떤 물체를 미는 시늉을 했다. 다른 사람은 연못의 물과 돌이 만나는 경계 사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른 주민은 “세상에 우리 동네에 생전 이런 일이 없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는 “비오는 날에 저기 철쭉꽃 앞에서 매일 절하던 그 여자 같다”라고 말했다. “아니야, 저기 아파트 XXX동에서 살인사건 났다던데 그 시신일 수도 있고…”라는 주민들의 웅성거림도 들렸다.
다른 경찰들도 신분을 끝까지 숨기고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며 그 뒤를 따랐다. 경찰의 등장으로 공원 전체를 압도했던 조용한 평화는 일순간에 깨져버렸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연못 주위를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아니면 연못물을 다 빼 보든가, 도대체 어디서 죽은 거야?”라는 말도 간간히 들려왔다. 보통 시신의 신원을 확보하면 사건의 해결이 수월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현장을 다시 찾았다. 사건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씨의 행적을 좇기 위해선 CC(폐쇄회로)TV 확보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CCTV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공원 입구에서 한 걸음 떨어진 초등학교에서 CCTV 한 대를 가까스로 찾았다. 해당 학교 보안관은 “그 여자가 여기서부터 벌거벗고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도 했다. 이어 그는 CCTV를 손으로 가리키며 “경찰이 저걸 가져갔다”고 보탰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전날 밤 11시경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공원을 향하는 여자의 옆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그 때는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익사체 사건이 다 그렇듯이 ‘가양동 알몸 시신 사건’에서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자살, 타살, 아니면 실족사 중 하나다. 어느 경우를 따져도 ‘미스터리’다. 이 씨가 자살을 했다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타살일 경우 피의자가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고 이 씨의 의식을 잃게 만든 다음, 옷을 벗긴 뒤 시신을 연못에 유기했다는 뜻이 된다. 누군가가 나체로 앉아 있는 이 씨를 밀어 연못에 빠뜨렸다는 추측도 할 수 있다. 이 씨가 실족사를 당했다면 옷을 벗고 무언가를 하다가 연못 쪽으로 미끄러졌다고 볼 수 있다.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부검결과 시신은 익사체로 판정됐다. 이 씨는 원한관계를 살 만한 일이 전혀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며 “유족들도 놀랐으며 타살 혐의점은 낮다고 보고 있다. 실족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A 공원의 연못은 여전히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