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폭탄 발언을 한 사람은 다름아닌 빌 클린턴 전 대통령(68)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7)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혈육인 첼시(35)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사실 첼시가 클린턴의 친딸이 아니란 의혹은 몇 년 전부터 일부 누리꾼들과 반 클린턴 성향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었다. 첼시가 클린턴의 친자식이 아니라 힐러리가 외도를 통해 낳은 혼외자식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첼시의 친부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반 클린턴 성향의 블로거인 로버트 모로우는 “첼시 클린턴은 빌 클린턴이 아니라 웹스터 허벨의 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 시절 법무차관을 지냈던 허벨은 클린턴 부부와 막역한 사이며, 힐러리와는 로즈 법률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이기도 하다. 과연 이 소문은 대권 판도를 뒤흔들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터무니없는 흑색선전에 불과할까.
첼시가 빌 클린턴의 친딸이 아닌 힐러리의 혼외자식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왼쪽부터 힐러리, 첼시, 빌 클린턴. 로이터/뉴시스
“첼시 클린턴은 왜 그렇게 못 생겼을까? 왜냐, 재닛 레노(클린턴 정부 시절 여성 법무장관)의 딸이니까.”
반 클린턴 성향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모로우는 지난 1998년 공화당의 원로 정치인인 존 매케인이 이런 농담을 했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매케인은 진실에 근접했었다”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매케인은 힐러리가 동성애자일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했던 농담이었지만 적어도 첼시의 아빠가 클린턴은 아니라는 사실은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로우가 제기한 이런 의혹은 지난해 6월 <뉴요커>가 다시 한 번 언급하면서 한 차례 화제가 됐었다. ‘더 힐러리 쇼: 힐러리 클린턴과 언론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뉴요커>는 “클린턴의 정책과는 별개로 언론은 계속해서 클린턴과 관련된 이야깃거리를 찾아낼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모로우의 주장을 함께 언급했다.
“첼시는 클린턴이 아니라 웹 허벨의 생물학적 딸이다.” “힐러리는 로즈 법률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인 웹 허벨과 빈스 포스터 둘 모두와 관계를 가졌다.”
래리 니콜스
니콜스는 <레이더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1984년 아칸소 주지사 관저에서 직접 클린턴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아칸소에서는 클린턴에 관한 괴소문 하나가 돌고 있었다. ‘여자 사냥꾼’이었던 클린턴이 아칸소의 한 여성을 임신시켰다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이에 대해 니콜스는 “그때 우리는 이 여성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린턴은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어릴 적 홍역을 심하게 앓은 후로 불임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니콜스는 “클린턴은 정확하게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헛방만 쐈던 셈이지’”라고 덧붙였다. 도저히 클린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 니콜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첼시는 어떻게 된 거지?” 그러자 클린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허벨이 아빠야.”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던 니콜스는 그럼에도 클린턴은 첼시에게 줄곧 훌륭한 아빠였으며, 처음부터 늘 첼시를 친자식처럼 대해줬다고 말했다.
한편 모로우는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통해 첼시의 친부 스캔들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 “이는 힐러리의 인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힐러리가 처음 임신 사실을 남편인 클린턴에게 숨겼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아내가 임신을 하면 대개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은 남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클린턴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클린턴은 힐러리의 임신 소식을 신문 기사를 통해서 비로소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명한 작가인 에드워드 클라인의 저서 <힐러리의 진실>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클린턴은 힐러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칸소 가제트>에 실린 기사를 통해 알았다.
또한 모로우는 첼시가 클린턴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웬만한 워싱턴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알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공화당 고위직의 한 원로에게 “언제부터 첼시가 허벨의 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그가 “1992년부터 알고 있었다”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모로우가 다시 “그럼 왜 클린턴이 출마했던 1992년 대선 때 이 사실을 폭로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그 원로는 “왜냐하면 내가 199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대부분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모로우는 역사학자이자 정치 평론가인 데이브 마틴의 이야기도 언급했다. 마틴은 “첼시가 허벨의 딸이란 증거는 명백하다. 이 사실을 나는 1994년 크리스 루디(보수 성향의 저널리스트이자 ‘뉴스맥스 미디어’의 창립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루디는 당시 이 소문이 아칸소에 파다했었다고 말했다”라고 언급했다. 크리스 루디는 대표적인 반 클린턴 성향의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모로우는 힐러리의 남성 편력도 클린턴의 여성 편력에 못지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성애자인 힐러리가 변호사 시절 허벨, 포스터와 내연 관계였으며, 1980년 첼시를 낳은 후에도 1990년대 초반까지 포스터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모로우는 클린턴 부부가 처음부터 ‘쇼윈도 부부’였다고도 주장했다. 서로의 독립된 생활을 인정해주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개방 결혼’을 했던 클린턴 부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겉으로는 다정한 부부인 척 굴고 있지만 사실은 남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클린턴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오랜 친구의 충격적인 증언을 예로 들었다. 당시 이 친구는 결혼식 날 새 신부였던 힐러리가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결혼식 당일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던 힐러리는 클린턴이 하객으로 온 젊은 여성의 가슴을 움켜잡고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던 힐러리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섰으며, 당시 클린턴은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결혼식에서조차 바람을 피웠던 클린턴은 지난 40여 년간 수백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모로우는 주장했다.
첼시 클린턴과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의혹이 제기된 웹스터 허벨.
10대 시절 첼시의 입술과 허벨의 입술을 비교해보면 이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모로우는 “허벨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네 입술은 흑인 입술처럼 생겼구나’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적었다”라며 두툼한 아랫입술이야말로 명확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한편 클린턴 부부와 가까운 사이인 허벨은 1973년 변호사 자격시험 준비를 하면서 힐러리와 처음 만났으며, 훗날 로즈 법률사무소에서는 힐러리의 동료로서 함께 일한 바 있다. 1979년 리틀록 시장으로 당선됐으며, 이후 1984년에는 아칸소주 주지사였던 클린턴에 의해 아칸소주 대법원 수석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법무차관으로 임명됐지만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사기 사건과 연루돼 유죄를 선고 받은 후 정계에서 물러났다.
클린턴의 ‘골프 친구’이기도 한 허벨은 아직까지도 클린턴 부부와 연락을 주고받는 친한 사이며, 정계 은퇴 후 현재 소설가로 변신해 활동하고 있다.
모로우를 비롯한 일부 워싱턴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클린턴 가족의 오랜 비밀은 과연 진실일까.
이제 막 백악관을 향한 대장정의 길에 오른 힐러리는 최근 제기된 뇌물성 후원금 의혹에 대해 “앞으로 온갖 종류의 방해와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힐러리가 가족과 관련된 소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빌 클린턴도 ‘친부’ 논란 “모친이 바람 피워 낳아” ‘빌 클린턴의 친아빠는 누구?’ 반 클린턴 성향의 로버트 모로우는 클린턴의 친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모로우는 클린턴의 어머니인 버지니아 여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클린턴의 아버지는 이미 알려져 있는 것처럼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스가 아니라 조지 롸이트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로우는 <빌 클린턴을 찾아서>의 저자인 존 가트너의 주장을 언급했다. 가트너는 클린턴의 고향인 애리조나를 찾아가 어린 시절 클린턴을 잘 알고 지냈던 지역 주민들과 인터뷰를 실시했다. 당시 이 인터뷰를 통해 가트너는 클린턴이 롸이트의 사생아라는 사실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모로우는 버지니아가 난잡한 파티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버지니아가 술과 도박을 좋아했으며,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아마 클린턴이 여성 편력이 심한 것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 아니겠냐고도 주장했다. 실제 클린턴의 바람기에 대해서는 제니퍼 플라워, 모니카 르윈스키 등 몇 차례에 걸친 스캔들을 통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태. 이와 관련, 1992년 대선 당시 클린턴의 보좌관이었던 베시 롸이트는 26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명단에 오른 여성들은 모두 잠재적인 ‘시한폭탄’이라고 불렸다. 언젠가 클린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나설지 모르는 여성들이란 의미였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