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범키가 마약 판매 및 투약 혐의를 벗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마약 재판에선 객관적 물증이 없을지라도 구체적이고 확실한 진술이 있으면 이를 증거로 받아들인다. 우선 범키의 재판에서 객관적 물증은 없었고 관계자들의 진술만 있었다. 이들의 진술을 재판부가 어디까지 증거로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었다.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지난 2012 8월 증인 송 씨와 범키가 서울 시내에서 몇 차례 통화한 이력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마약 사건에서 매수자와 매도인이 서로 잘 모르는 경우라면 통화 내역이 유력한 증거지만 이 사건에서 두 사람은 그 무렵 친하게 지내며 자주 만났다고 진술한 부분이 일치하기 때문에 통화내역이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송 씨의 진술 내용에 대해서도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송 씨는 필로폰 투약 및 매매 등에 대해 수사 및 재판을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형상 이해관계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인인 배 씨의 진술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범키)에게 필로폰 3회, 엑스터시 1회 등 총 4번이나 매수했다고 배 씨가 진술했지만 여러 차례 거래한 것에 비하면 통화 내용이나 금융거래 기록이 없다”며 “특히 배 씨는 처음 검찰에 제보할 때 자신에게 마약을 준 사람이 미국계 한국인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피고인(범키)이라고 밝혔다. 이런 번복 경위에 관한 배 씨의 진술이 사실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정에서도 공소 사실에 기재된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서도 형식적으로만 진술했다. 배씨 역시 송 씨와 마찬가지로 양형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범키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서도 증인들 진술의 구체성과 확실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정확한 증거는 증인들의 진술뿐인데 내용이 번복되고 있으며 구체성과 일관성이 떨어져 피고인(범키)을 유죄로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범키의 마약 판매 혐의는 송 씨와 배 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이들과 범키가 양형상 이해관계가 있음을 강조하며 진술의 증거 능력을 부정했다. 이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양형거래, 소위 말하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판결이다.
범키의 판결 내용을 두고 유흥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마약 수사에서 흔히 이뤄지는 일이라는 얘기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동 소재의 한 룸살롱 사장의 얘기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쪽 사람들(마약 사범)과도 알고 지내게 된다. 마약 관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 플리바게닝이 자주 이뤄진다고 한다. 워낙 마약 수사가 어려우니 그렇게 수사 범위를 넓혀 가는 것 같은데 이런 과정에서 가장 유용한 게 연예인이라고 하더라. 심지어 유명 연예인의 마약 정보 한두 개만 갖고 있으면 조직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이번에도 수사 과정에서 범키 관련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린 게 아닌가 싶다.”
연예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범키의 실수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중견 탤런트의 말이다.
“후배 연예인들에게 자주 해주는 충고인데 이쪽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맥을 맺게 되는데 그렇게 알게 된 이들 가운데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면 항상 조심해야 한다. 범키라는 친구가 무죄를 받아 다행이지만 결국 그쪽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서 그런 진술이 나오도록 만든 것이 일차적인 실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그런 진술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연예인은 무조건 ‘약’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이번 경우처럼 엉뚱한 진술로 괜히 구설에 오를 수가 있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마약 구경도 못해보고 마약 전과자가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연예인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