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는 주전 유격수인 조디 머서가 갑작스런 부상을 당하면서 행운의 출전 기회가 주어졌다. 조디 머서가 서둘러(?) 복귀한 24일에는 벤치 멤버로 머물다가 대타로 나서 무안타에 그쳤다. 당분간 강정호는 주전 선수들의 예기치 못한 부상이나 휴식 등으로 선수 교체가 필요할 때, 종종 대타로 나가 경기 감각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일요신문>은 시카고 컵스와의 4연전에서 보인 강정호의 활약을 놓고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강정호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도움말을 준 해설위원은 김형준(MBC 스포츠플러스), 민훈기(SPOTV), 대니얼 김(KBSN스포츠)이다.
강정호가 시카고 컵스와의 3연전에서의 활약으로 피츠버그 홈 팬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AP/연합뉴스
[김형준] 시카고 컵스전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강정호의 선구안이다. 공을 정말 잘 골라냈다. 볼에는 거의 손을 안 대고 스트라이크에만 배트를 휘둘렀다. 3안타 모두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강정호가 그 공에 자신 있게 배트를 돌린 데에는 한국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 덕분이다. 나이트나 밴 헤켄 외에는 대부분 포심 패스트볼 위주로 공을 던지는데, 그에 대한 경험이 많다 보니 포심 패스트볼에서 안타가 나오는 것이다. 시카고 컵스와의 4연전을 통해 본 바에 의하면 강정호의 빠른 볼 적응은 문제없다는 사실이다. 시속 96마일(154.5㎞)의 공을 안타로 만들 정도면 대단한 능력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한국 투수들보다 평균 구속이 시속 4마일(6.4㎞) 정도 빠르다. 한국에서 말하는 ‘직구’도 그들한테는 직구가 아니다. 빠른 볼에 무브먼트를 가미하고, 속구가 휘어져 들어오다 보니 타이밍 맞추기가 어렵다. 강정호로선 올 시즌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컵스전의 안타 행진은 팀이나 팬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민훈기] 강정호가 현지에선 내색하지 않았지만, 넥센의 친한 코치나 선수들한테는 벤치 신세로 머물렀던 시간들에 대해 ‘힘들다’는 얘기를 전한 걸로 알고 있다. 주위에서 하도 ‘레그킥(다리를 들고 치는 타격폼)’에 대해 말들이 많아 잠시 타격폼을 바꿔볼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하더라. 그렇다보니 초반에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나쁜 공에 방망이가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마음이 조급했던 탓이다. 그런데 지금은 타석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다. 공을 고를 줄 알고, 자신에게 유리한 볼카운트도 만들어내면서 상대 투수와 승부를 벌인다. 빠른 공에도 배트 스피드가 밀리지 않는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무엇보다 강정호의 강점은 멘탈이다. 거의 ‘류현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으론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겉으론 절대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팀에서도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기다려줄 자세가 돼 있는 것 같더라.
[대니얼 김] 강정호의 지금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타율은 비록 2할대지만 내 눈에는 마치 3할을 치는 타자처럼 보인다. 나쁜 공에 배트가 나오지 않는다. 선구안이 뛰어나다보니 볼카운트 싸움에 몰리지 않는다. 경기 출전 경험이 많지 않아도 조급해 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강정호, 이것만은!
[김형준] 강정호가 싱커를 던지는 투수한테는 굉장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오른손 투수가 던진 싱커는 타자 몸쪽으로 들어오다가 막판에 휜다. 그에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카코 컵스 1차전에서 선발 출전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상대 투수인 제이크 애리에터가 싱커를 위주로 던지는 투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2, 3차전의 컵스 투수들은 싱커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3차전에는 싱커에 파울이 나왔다는 점이다. 즉 싱커에도 콘택트가 된다는 걸 보여줘 앞으로 경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훈기] 레그킥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당분간은 흔들리지 말고 자기 소신대로 밀고 나갔으면 한다. 지금 보면 레그킥도 필요에 따라 다리를 많이 올리거나 조금 올리거나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올리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변화를 주면서 적응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 아닌가 싶다. 강정호의 지금 상태는 한국에서 상대하기 어려웠던 니퍼트나 밴델헐크 같은 외국인투수를 매일 상대하는 셈이다.
더 세고 강한 투수들이 많기 때문에 힘든 게 사실이다. 변화구나 움직임이 많은 공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해도 정말 치기 어려운 공을 받아 넘기는 선수들은 몇 명 안 된다. 미구엘 카브레라, 폴 골드슈미트, 조이 보토 등이 실투 아닌 것까지 홈런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다. 나머지는 비슷비슷한 상황이다. 1선발이 아니면 모두가 상대해 볼 만한 선수라는 걸 잊지 말고 더욱 자신감 있게 타석에 들어섰으면 좋겠다.
# 머서와의 경쟁, 어떻게 봐야 하나
[대니얼 김] 내가 강정호라면 ‘하루살이’의 마음가짐으로 살 것 같다. 머서와의 경쟁에 신경 쓰지 말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다. 벤치에 머문다고 해도 크게 실망하지 말고, 주전으로 뛴다고 해도 크게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강정호의 현실은 머서의 백업 멤버다. 들쭉날쭉한 스케줄에 마음이 흔들리기보다는 ‘심플하게’ 생각하고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민훈기]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머서를 밀어내고 강정호가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긴 어렵다. 머서나 다른 선수의 부상이 없는 상황에선 강정호의 경기 출전은 많이 늘어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경기 수가 워낙 많고 3일에 한 번이나 이동일, 팀이 연승할 때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강정호로선 기회가 주어질 때 잡아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한때 강정호의 마이너리그행에 대해 치열한 얘기가 오갔지만, 팀에서 강정호를 내려 보낼 의사가 없다. 무엇보다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을 만큼 신인급도 아닌 터라 지금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김형준] 사실 벤치에 있다가 대타로 나가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강정호의 현실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 피츠버그 입장에선 1100만 달러(118억여 원) 이상의 돈을 들여 데려온 선수이고, 나름 ‘쎄게’ 투자를 한 선수를 벤치에만 머물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츠버그 단장이 강정호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지 않는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이다. 단장으로선 강정호가 성공해야 그의 입지도 흔들리지 않는다. 즉 강정호가 잘해야 강정호를 데려온 단장이 욕을 안 먹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단장과 감독은 강정호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강정호 때문에 피해를 보는 선수가 탬파베이에서 트레이드해 온 숀 로드리게스다. 같은 내야수인데 1년 계약이고, 강정호보다 적은 몸값이다 보니 거의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종종 출전하는 강정호가 숀 로드리게스보다는 훨씬 행복한 상황이다.
# 강정호에게 하는 조언
[민훈기] 강정호가 수비 동작에서 한국에서 했을 때처럼 여유를 보이는 바람에 보는 사람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 때가 있다. 피츠버그에서 강정호에게 수비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진 않는다고 해도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김형준] 김용달 전 KIA 2군 감독이 이런 얘길 했다. 강정호는 류현진보다 더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생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본다. 이제 잦은 원정경기로 인해 체력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모든 게 생소하고 모든 구장이 처음 가보는 경기장이지만, 처음이기 때문에 이해되고 용서도 된다. 외부의 평가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처럼 ‘마이웨이’하길 바란다.
[대니얼 김] 강정호의 수비와 관련 현지 반응을 보면 기대 이상으로 잘한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 실력을 갖고 있진 않다. 강정호로선 대타보다는 수비를 보며 타석에 나서는 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넥센에 있는 동안 경기 감각을 유지해왔던 자신만의 루틴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루틴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결론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강정호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강정호는 신이 아니란 것이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고,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를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현지 기자가 본 강정호 “밥보다 인터뷰 먼저” 자신감 업 강정호의 현지 상황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뉴스엔> 특파원으로 활약하는 조미예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조 기자는 시카코 컵스 4연전을 현장에서 취재하며 강정호의 희로애락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처음 조 기자가 피츠버그를 찾았을 때만 해도 강정호는 주전으로 뛰지 못했고,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해 웃음기 없는 표정이 대부분이었지만, 선발 출전을 하기 시작한 이후론 얼굴 가득 퍼진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고 한다. 강정호는 대타보다는 수비를 보며 타석에 나서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정호 선수는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마다 선발 출전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쉽거나 억울하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언급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전이든 백업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나가겠다고 말했고, 조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겠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듯 인터뷰를 통해 속마음을 풀어냈다. 그러다 컵스 경기에서 선발 출전 기회가 찾아왔고, 두 번째 경기에서 안타를 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얼굴 표정이 확 달라졌다. 한결 편안해 보였고.” 조 기자는 만약 강정호가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안타나 타점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심적으로 많이 흔들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2차전에서 나온 첫 안타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 후론 마치 탄력 받은 선수처럼 모든 게 잘 풀렸다. ‘싹쓸이’ 안타를 쳤을 때는 지금까지 본 강정호의 모습에서 가장 환하게 웃는 얼굴이 아니었나 싶다.” 언론에서는 조디 머서와 강정호를 라이벌 구도로 몰고 가지만 서로 친분이 두텁고, 각자의 자리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기 때문에 시기하거나 아쉬워하는 감정은 전혀 없다는 게 조 기자의 설명이다. “인터뷰 때 메이저리그에 와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강정호 선수는 좋은 점을 먼저 끄집어냈다. 야구선수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현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힘든 부분은 피츠버그가 한국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다 보니 외로움을 느끼다가도 야구에 집중하면 그조차도 잊고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조 기자는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시카고 컵스 1차전에서 3타수 무안타일 때는 강정호가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를 피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2차전에서 안타 2개를 몰아친 후에는 스스로 인터뷰를 자청하고 나섰다고 한다. 기자들이 식사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얘기했지만(선수들은 경기 후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나온다) 강정호는 “밥은 괜찮아요. 인터뷰 먼저 할게요”라며 밝은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오랜만의 선발 출전과 안타, 타점 등으로 수훈 선수로 꼽힌 부분이 강정호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해준 셈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