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얘기냐면 <어린신부>의 문근영을 보며 마음이 떨린다고 해서 결코 어린 아이에게 성욕을 느끼는 변태성욕자, 즉 ‘로리콘’은 아니란 뜻이다. 비겁한 변명이더라도 좋다. 문근영을 좋아한다고 해서 변태는 아니다.
하지만 뭇 사내들의 가슴을 이상야릇하게 설레게 만드는 그런 문근영의 이미지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어린신부>만이 아니었다. 사실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다. 한 인터넷 검색 사이트는 17세의 문근영에게 어깨선이 훤히 드러나는 바니걸 복장을 입혔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어린 아이에게 성적인 관심을 갖는 정신병리학적 상태를 뜻하는 ‘롤리타’는 원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다. 롤리타는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소설 속 사내는 정부의 딸인 열두 살짜리 어린 아이 롤리타에게 반해 정부를 죽이고 롤리타를 차지한다. 그러나 사내 역시 롤리타에 의해 파멸하고 만다. 어린 아이와의 섹스란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으며 탐닉하는 순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금기의 욕망인 탓이다.
그렇다고 문근영이 롤리타란 뜻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녀의 이미지는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여성의 모습을 원하는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립된 것이다. 단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바로 롤리타였을 뿐이다.
소녀와 아저씨의 금지된 사랑, 이름하여 청소년 성매매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열병처럼 퍼지는 이때 문근영의 섹시 발랄한 모습이야말로 모든 음험한 아저씨들이 원하는 이미지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에서의 수많은 롤리타들은 문근영처럼 청순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지형태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