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친박’이었던 김 대표는 2008년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 대표는 유세 내내 자신의 ‘친박’ 꼬리표 때문에 보복 공천을 당했다며 표를 호소하기도 했다. 국회로 컴백한 김 대표는 명실상부 친박 좌장 인사로 꼽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관계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2009년 원내대표 출마를 검토했다 박 대통령 반대로 뜻을 접은 뒤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이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2010년 세종시 논란 때였다.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밝혔던 박 대통령은 김 대표가 제안한 절충안에 대해 “가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김 대표가 친박 좌장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친박엔 좌장이 없다”고 밝혔다. 김 대표로선 자존심을 구긴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친박 의원은 사석에서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을 ‘보스’라기보다는 정치적 동반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팽 당하자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2010년 김 대표는 주류였던 친이계 지원으로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의 ‘탈박’을 이 시점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친박과 소원해진 김 대표는 2012년 박 대통령 측이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백의종군하면서 ‘복박(돌아온 친박)’을 하는 듯했지만 결국 정권 출범 후 본격적인 비박 스탠스를 취했다. 이처럼 애증으로 얽힌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포스트 재보선’ 정국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