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최규호 전 전북 교육감이 자취를 감춘 뒤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2009년 2월 24일 당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학업성취도평가에 관한 정책협의에서 최규호 교육감(맨 오른쪽)이 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내일 아침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겠다.”
지난 2010년 9월 12일, 최규호 전 전북 교육감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었다. 최 전 교육감은 검찰청사에 나타나지 않았고 변호인과 연락마저 끊었다. 최 전 교육감은 당시 김제 스파힐스골프장 측이 9홀에서 18홀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교육청 부지였던 자영고의 매각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3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9월 초 중간 브로커 역할을 한 최 아무개 교수와 돈을 전달한 백 아무개 교수를 긴급체포했다. 이들은 검찰에서 “골프장 측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아 최 전 교육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뒤늦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지만 최 교육감 신병확보에 실패했다. 다급해진 검찰은 전주와 김제, 서울 등 최 전 교육감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그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가족을 상대로 자수를 권유했지만 소용없었다.
잠적 4년째인 지난해에는 전담검사 1명을 두고 지인의 휴대폰, 통장 등을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의 신변을 둘러싼 소문이 무성해진 계기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최 전 교육감을 목격했다는 설부터 그가 예식장에 나타나 수사관들이 덮쳤다는 설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심지어 이미 중국으로 밀항을 했거나 유력 정치인이 그를 숨겨주고 있다는 설까지 돌았다.
최 전 교육감은 전북지역의 첫 직선 교육감이었다. 지난 2004년 간접선거로 제14대 전북 교육감에 당선된 그는 2008년 15대 전북도 교육감 선거에서 오근량 후보를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익산 남성고와 전북대를 졸업하고 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2~4대 전북도 교육위원 선거 등 여섯 차례의 선거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승리의 아이콘’이었다. 그랬던 그가 교육감 잔혹사의 ‘막장’으로 추락해 버린 셈이다.
최 전 교육감이 잠적한 지 벌써 5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에 ‘김제 스파힐스 골프장 사건’은 지난 2012년 11월 관련자 9명 가운데 5명이 사법처리됐다. 3억 원의 뇌물을 준 최 교수는 실형을 받았고 돈을 배달한 백 교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 골프장 대표 정 아무개 씨는 징역 2년 6월이 확정됐다. 곽 아무개 전 김제시장은 골프장 브로커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가 확정됐다. 현재 최 전 교육감을 제외한 관련자 대부분이 형을 마친 상태다.
<일요신문>은 현 수사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월 30일 전주지방검찰청을 찾았다. 검찰 관계자는 “최 교육감에 대해선 이미 기소중지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소중지 사건이 교육감 건 말고도 많다. 일일이 다 쫓아가서 수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사실 대한민국의 성패가 걸린 사건도 아니고 국민적 큰 관심이 일었던 사건도 아니다. 담당검사도 바뀐 상태다”라며 “전담팀이라고 해봤자 검사하고 수사관 몇 명이 있을 뿐이다. 최 전 교육감에 관한 제보가 들어오면 꾸려지는 것이지 여건상 지속적으로 수사할 수 없다. 체포 영장이 발부됐기 때문에 출국금지 상태라 중국 밀항 가능성도 희박하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최 전 교육감의 비리 의혹을 제기해온 전주지역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이런 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전주시민회 이문옥 사무국장은 “지역사회의 불행이다. 검찰이 무능한 거다. 잡범, 공안사범은 철저히 수사하면서 왜 이쪽(최 전 교육감 사건)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전북 교육감은 2만여 명의 교육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을 직접 행사한다. 최 전 교육감은 교사들의 승진, 보직변경, 인사이동 등 인사권을 이용해 교육감 선거자금을 마련했다. 뇌물 3억 원 받은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고 추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관계자도 “최 교육감의 동생이 현직 국회의원이다. 동생이 국회의원이 되고 그 다음에 형이 교육감이 됐다. 그래서 수사가 미진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보탰다. 최 전 교육감의 동생은 최규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 현재 전북도당 최다선 의원이다. 김제시·완주군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최 전 교육감이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스파힐스골프장도 최 의원의 지역구 김제에 있다.
최규성 의원
최 전 교육감의 선거를 곁에서 도왔다는 한 인사는 <일요신문>과 만나 “급식업자 등 이권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운영위원들이 최 전 교육감 주변에 많았다”며 “직접 찾아가서 ‘업자들 다 떼어 내세요’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최 전 교육감이 ‘애경사 때 1만 원 넣을 거 100만 원 넣어라’는 요구를 거절한 적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 전 교육감의 행방에 대해서 “항간에 서울 최규성 의원 집에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규성 의원실 관계자는 “최 전 교육감이 잠적한 뒤로 동생인 의원님과 연락이 전혀 안 닿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원님도 걱정을 하시는 것 같다”면서 “다만 형이 잘못했다고 동생까지 뭐라고 하는 건 연좌제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전북 전주=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