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일각에선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원 안)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백기사’였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금호산업 채권단 관계자는 “재입찰 혹은 수의계약 등 문제는 채권단 결의사항으로서 지금 결정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최종 결정은 채권단 전체회의를 거친 후 5월 중순께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마감한 본입찰에는 입찰적격자(숏리스트)로 선정된 곳 중 호반건설만 단독 참여했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재매각에 나선다 하더라도 여러 곳의 경쟁 입찰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결국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과 협상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더욱이 단독 입찰한 호반건설의 입찰가는 6007억 원.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1조 원 육박’에 턱없이 못 미치는 가격이다. 뿐만 아니라 호반건설은 채권단에 금호산업의 우발채무를 전액 보전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6007억 원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 셈이다. 이대로라면 박삼구 회장이 낮은 가격에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은 뻔한 일이다. ‘1조 원’ 매각을 바라던 채권단으로서는 유찰시키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이다.
재계에서는 앞으로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이 벌일 협상과 그 결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본입찰이 유찰됨으로써 금호산업 매각-인수 문제에서 주도권이 채권단에서 박삼구 회장 쪽으로 넘어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출자전환을 되풀이해온 채권단으로서는 금호산업을 되도록 비싼 가격에 매각해 채권 회수율을 극대화할 심산이었다. 금호산업 본입찰에 여러 곳이 참여해 흥행이 돼야 매각 가격을 높일 수 있었다.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박삼구 회장 측이 한때 대기업과 사모펀드들에 금호산업 인수전 불참을 종용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채권단이 ‘매각을 방해하면 우선매수청구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박 회장 쪽에 으름장을 놓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1조 원 베팅’도 불사할 것처럼 보였던 호반건설이 정작 본입찰에서 6007억 원밖에 써내지 않자 ‘채권단이 당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금호산업에 눈독을 들이던 사모펀드들이 금호산업 실사 이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인수전 참여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1조 원’을 언급한 호반건설 영향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던 터였다. 사모펀드들의 철수가 금호산업 인수에 1조 원가량을 투입하기는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평가를 종합해보면 채권단은 금호산업을 박삼구 회장에게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채권단으로서는 채권 회수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각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손해가 크다”며 “비록 기업 가치가 나중에 더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매각 시기를 놓쳐 잘 된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금호산업을 박삼구 회장에게 매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 탓에 주도권이 박삼구 회장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금호산업 매각을 앞두고 박삼구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강경한 자세를 보였던 채권단은 이제 ‘1조 원 매각’은 사실상 바라기 힘들어진 듯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삼구 회장에게 금호산업을 얼마에 넘겨야 할지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인수 가격으로 6000억~700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자금 동원력에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힘들지만 도와주겠다고 한 곳이 여러 곳”이라며 “일단 채권단 전체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느긋해 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 의사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언급하기 힘들지만 주도권이 넘어갔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기대 이하 베팅’ 호반건설 본심은? 시세차익+홍보효과 어찌됐든 ‘최고 수혜’ 4월 말~5월 초의 1주일은 당초 박삼구 회장에게 피 말리는 한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금호산업 본입찰·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의 일정이 계획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반건설의 결정적 한 방으로 예상과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호반건설 본사 전경. 일요신문 DB 그러나 본입찰에 단독 참여한 호반건설의 입찰가가 알려지자 김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호반건설의 입찰가인 6007억 원은 금호산업 채권단이 바라던 1조 원은커녕 금호산업에 대한 시장평가액인 8000억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호반건설은 6007억 원이 실사 결과와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가치를 종합한 ‘적정가’로 보고 있지만 재계와 IB업계 일부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호반건설은 박삼구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한 셈이다. 높은 입찰가를 써낼 것을 암시해 입찰적격자로 선정된 사모펀드들을 전부 따돌렸다. 6007억 원을 제시해 박 회장의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을 낮춰줬다. 호반건설의 입찰가가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박삼구 회장의 가이드라인도 그려진 데다 채권단과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박 회장에 쥐어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광주 동향 출신이자 동향 기업인 박삼구 회장과 김상열 회장 사이에 모종의 약속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금호아시아나와 호반건설 모두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펄쩍 뛰고 있다. 비즈니스에서 결코 그런 약속이 있을 수 없다는 것. 특히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호반건설이 인수 후보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무렵부터 ‘어딜 감히!’라는 반응을 보이며 괘씸하게 여길 정도였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호반건설은 금호산업 인수전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매도하는 과정에서 수백억 원의 시세 차익을 챙겼으며 호반건설의 이름과 브랜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상열 회장은 지난 3월 광주상공회의소 신임 회장으로도 선출됐다. 금호산업 인수전을 무대로 호반건설의 약진과 활약상을 보여준 것이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