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4월 28일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를 통해 했던 발언들이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는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현장에 파견된 구조인력들은 간발의 차이로 구조에 실패해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해야했다. 훼손된 사체가 많았던 탓에 팔과 다리가 모이면 사망자 1명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사체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삼풍백화점 붕괴 잔해를 옮겨간 난지도 매립지에서 직접 사체를 찾아내는 믿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던 붕괴현장에서 10일을 넘게 버티다 생환한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삼풍백화점 최후의 생존자 3인’으로, 11일 만에 구조된 최 아무개 씨(당시 20)와 13일 만에 구조된 유 아무개 씨(여·당시 18), 그리고 17일 만에 구조된 박 아무개 씨(여·당시 19)다.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담당했던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형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경찰서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데 발밑으로 ‘삭’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근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며 “현장으로 달려가 생존자가 없나 살폈다. 수많은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이면서 수사본부도 정신이 없었다. 10일이 지났을 무렵 그 와중에 생존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쁜 와중에도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기적이라며 환호성을 질렀었다”고 회상했다.
새삼 삼풍백화점 생존자의 소식이 들려온 것은 올해가 삼풍백화점 붕괴 20년이 되는 해라서가 아니었다. 개그맨 장동민이 지난해 팟캐스트(인터넷 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삼풍백화점 생존자를 언급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됐다. 장동민은 팟캐스트 진행도중 건강 동호회 이야기를 하다 “오줌을 먹는 동호회가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21일 만에 구출된 여자도 다 오줌 먹고 살았다. 그 여자가 동호회 창시자”라고 말했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아무리 개그라고 해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개그 소재로 받아들이기에 한국사회의 트라우마는 너무나 컸다. 최후의 생존자 3인 또한 당시 사고의 기억으로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생환할 당시 10대 소녀였던 유 씨와 박 씨는 결혼을 해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그러나 박 씨의 경우 사고 후 공기업에서 일을 하다 삼풍백화점 생존자라는 주위 시선에 그만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11일 만에 생환한 최 씨는 사고 이후 해병대를 제대하고 한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삼풍백화점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고 한다. 최 씨의 직장 상사는 “최 씨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며 “최후 생존자 중 한 명이 장동민 씨를 고소한 것도 주변에서 말해줘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때 일을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아한다. 최 씨에게 큰 상처가 된 일이다”고 전했다.
문제가 된 장동민의 인터넷 방송 내용(위)과 ‘사과편지’ 진실공방의 발단이 된 SBS <한밤의 TV연예> 보도 내용. 사진출처=<한밤의 TV연예> 방송화면
장동민은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파문이 확산되자 KBS 라디오 <장동민 레이디제인의 2시!>에서 하차했다. 이어 지난 4월 28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정말 죄송하다. 어떤 말씀을 드려도 부족하다는 것 잘 알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드린다. 이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평생 노력하겠다”고 거듭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장동민은 기자회견 이후에도 고소인 측에 직접 사과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SBS <한밤의 TV 연예>가 29일 장동민 측 입장을 뒤집는 듯한 내용을 방송하면서 장동민 막말논란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장동민 씨가 직접 찾아왔다는데 맞느냐. 손편지도 직접 전달했느냐”는 <한밤> 제작진의 질문에 법률사무소 직원이 “무슨 봉투를 주셔서 받아놓기는 했는데 (확인하지 않아서)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겠다. 기사를 보니까 변호사 사무실에서 3시간 대기한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30초도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동민 사과의 진정성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었다.
방송 이후 장동민의 사과 여부와는 관계없이 엉뚱하게 장동민이 고소인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투자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30일 오전 장동민의 소속사 코엔스타즈 측은 <한밤>의 보도 내용에 대해 “건물 밖에서 상당 시간 대기했다”면서 “사무실을 찾고 대기했다는 것은 당시 1층 안내데스크를 맡고 있던 직원 분이나 소속사 차량의 CCTV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소속사 측은 “또 다른 논란과 오해를 막고자 이렇게 양해를 구하며 반박을 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 붙자 선종문 변호사도 고소인 측의 입장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선종문 변호사는 30일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무실 직원에게 <한밤> 제작진이 찾아와서 ‘편지 줬느냐’고 묻길래 ‘봉투를 주고 금방 갔다’고 한 것이다. 이는 변호사의 공식입장이 아닌데, <한밤>에서는 이를 마치 피해자의 말인 것처럼 왜곡해 보도해 유감”이라고 했다.
현재 장동민의 사과편지는 고소인 측에 전달됐다. 하지만 고소인 측은 이에 대해 아직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형사는 “개그맨이라 웃음만 생각하다 보니 발언에 도가 지나치게 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존자들에게 평생 잊기 어려운 고통으로 남을 것이다. 개그 소재가 될 사건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