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 진행자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
장동민이 만든 논란의 시작은 어쩌면 단순했다. 지난해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를 통해 동료 개그맨 유세윤, 유상무와 진행했던 프로그램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내뱉은 발언이 뒤늦게 대중의 심판대에 올랐다. 여성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말과 1995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생존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듯한 발언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장 사과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장동민은 사태 수습보다 ‘방관’으로 일관했다. 내부적으로 돌파구를 찾기 위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대중의 체감은 달랐다. 논란의 초반,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듯한 인상을 남긴 탓에 그 여파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제는 스타가 되는 일보다 그 인기와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세상이 됐다. 스타도 많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침도 잦은 탓이다. 장동민 역시 데뷔 10년여 만인 최근에야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노련하게 자신의 위치를 다져왔지만 관리 능력에서는 허점을 그대로 노출하며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논란을 잠재울 기회가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두 놓쳤다. 장동민이 놓친 세 번의 기회는, 그래서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 <무한도전> 새 멤버 내정설…상황 파악보다 ‘발끈’
장동민이 최근 대중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모은 계기는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마련한 코너 ‘식스맨’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노홍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 멤버를 선발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동민은 특출한 실력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상황은 장밋빛에 가까웠지만 4월 초 퍼진, ‘내정설’로 상황은 달라졌다. 제작진은 곧장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고 연출자인 김태호 PD까지 나서서 “이렇게 공개할 거면 굳이 왜 특집 코너까지 마련했겠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렇게 끝날 수도 있던 이 소문에 불을 지핀 장본인은 장동민이다. 당시 진행하던 KBS 라디오 <장동민 레이디제인의 2시!>에 출연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왜 기사로 썼느냐”고 답답해했다. 심경을 드러낸 항의의 표현이었지만 격양된 탓에 그 표현 수위는 상당했다.
루머의 당사자가 직접 해명했지만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발끈한 장동민이 쏟아낸 발언이 반감을 키운 듯한 분위기마저 형성됐다. ‘한번 찍히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온라인 중심의 ‘넷심’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겼다. 장동민이 가장 먼저 택한 건 <무한도전>에서 하차하는 일이었다. 그쯤으로 논란을 잠재우고 싶었던 의도였지만 맘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차 선언과 동시에 온라인에서는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됐다. 이른바 ‘여성비하 발언’이다.
# 여성비하…분위기 파악 못하고 사과 대신 침묵
장동민이 진행하던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는 누구나 방송하고 진행할 수 있는 오픈 채널이다. 일종의 비공식 채널로도 통한다. 동갑 친구이자 데뷔부터 함께한 개그팀 ‘옹달샘(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굳이 팟캐스트를 라디오 진행의 무대로 활용한 이유도 비공식 채널을 통해 더욱 자유분방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겠다는 의도였다.
장동민이 간과한 게 있다. 그 채널이 어디든 방송에 나선 연예인이 갖는 상징성과 파급력을 적지 않다. 이를 망각한 듯 그는 스타일리스트와 겪은 에피소드를 밝히며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에게 다 이야기한다”거나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특정인을 지칭한 욕설도 했다. 이에 대해 곳곳에서 불쾌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역시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여성을 모욕하고 비하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예능인들. 반드시 퇴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끔찍하다”고 썼다.
논란은 삽시간에 가열됐지만 장동민이 택한 건 뜻밖에도 ‘침묵’이다. 그 대신 진화에 나선 소속사는 관련 방송이 나간 시점이 ‘1년 전’이라고 강조하며 “당시 문제가 됐을 때 사과했다”고 설명했다. 더욱 화를 돋운 건 유세윤과 유상무였다. 이들은 여성비하 논란이 가열되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같은 시기 각자의 SNS를 통해 논란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냄비 근성이니 신경 쓰지 말라”거나 “우리 라디오가 인기는 인기인 것 같다”는 글을 써 논란을 키웠다.
# 기자회견까지 해놓고 ‘피소’…이미지 추락
장동민은 결국 DJ를 맡고 있던 KBS 라디오 <장동민 레이디제인의 2시!>에서 하차했다. 일부이지만 ‘장동민이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4월 28일 장동민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세윤, 유상무도 함께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온 사과문을 읽었다. 장동민은 눈시울을 붉히며 “웃음만 생각하다보니 부적절한 말이 나왔다”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한다. 앞으로 더욱 주의하며 활동하겠다”고 사과했다.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지만 짜인 듯한 기자회견을 두고도 여러 말들이 나왔다. 특히 앞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비하한 과거 발언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했던 김구라의 사례가 새롭게 주목받기까지 했다. 그보다 앞서, 결과적으로 무혐의를 받은 세금 문제로 연예계 은퇴까지 선언했던 강호동과 장동민을 비교하는 시선도 많았다.
기자회견 전후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장동민은 피소까지 당했다. 삼풍백화점 생존자를 언급하며 ‘소변을 먹고 견뎠다’는 과거 발언이 피소 이유였다. 고소인은 장동민의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비하 발언에 이어 이번엔 생존자 모욕이 추가된 셈이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논란 속에 장동민을 기용하고 있는 KBS와 jtbc, tvN 등 방송사들은 모두 그의 프로그램 참여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범법 행위가 아닌 만큼 장동민도, 해당 프로그램도 ‘버티는’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