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전 대표가 현재 거주 중인 전남 강진 토담집. 손학규 전 대표가 최근 전셋집을 분당에서 서울 종로구 구기동으로 옮긴 것도 정계복귀설을 부추기고 있다. 일요신문 DB
하지만 최근 새정치연합이 4·29 재보궐 선거에서 완패하면서 야권은 또 다시 ‘문재인 대안’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 레이더망에 손 전 대표의 모습도 아른거리고 있다. 본인은 “(정계복귀는) 터무니없는 소리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야권에서 그를 쉽게 놔둘지도 의문이다. 당이 완전 풍비박산이 난다면 ‘손학규 등판론’이 다시 나올지 모른다. 꽁꽁 숨어 있는 손학규 전 대표를 찾아나서 보았다.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는 전남 강진을 칩거 장소로 정해 토담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퇴를 했으면 분당의 집에서 생활하면 자연스러운데 강진으로 칩거 장소를 정한 것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언젠가 손 전 대표가 정계복귀를 하게 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수염을 기른 채 ‘지리산 산행 중 급거 귀경’의 극적인 장면처럼 손 전 대표도 강진 오두막에서 화려하게(또는 비장하게) 여의도로 복귀하는 장면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 전 대표 측은 ‘강진행에 별다른 뜻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한 측근은 이에 대해 “‘흑심’은 없다. 손 전 대표가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돼 공부하던 곳이기도 하고, 손 전 대표의 사위가 강진 출신이기도 해서 그곳으로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런 손 전 대표의 ‘순수한’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국민들이 국회라는 링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다”며 “차라리 강진으로 멀리 벗어나 있으면 언젠가 재평가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사는 곳과 마찬가지로 생활도 다산 정약용과 똑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측근은 “손 전 대표의 집에는 보일러도 없어 장작을 직접 패서 땔감을 마련한다. 응원차 방문한 지지자들이 장작을 패주고 가기도 한다. TV나 신문도 없어 성완종 리스트 이야기를 1주일 지나서야 알기도 했다”고 손 전 대표의 근황을 전했다.
이렇게 초야에 묻혀 있던 손 전 대표에게 정치권의 관심이 다시 모아지는 이유는, 4·29 재보궐 선거의 참패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야권에서는 현재 문재인 대표가 대권 재수를 꿈꾸고 있지만 여의치 않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도가 유력한 대권 후보군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앙정계 경험이 많지 않다. ‘실전용’으로 당장 급한 때 쓰일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럴 때 야권이 가장 주목하는 인사가 바로 손학규다. 그는 몇 차례의 당 대표 경험과 오랜 국정경험, ‘저녁론’으로 빛을 발한 정책기획 능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일단은 안정적이다. 다만 대중적인 인기가 여전히 높지 않고 여야를 오간 전례가 그의 장점들을 가리고 있다.
김병욱 새정치연합 분당을 지역위원장은 “솔직히 재보궐선거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손 전 대표의 이름이 언론에 이렇게 거론됐겠느냐”고 반문했다. 손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김 지역위원장은 지난 2011년 손 전 대표가 성남시 분당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때 분당을의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었지만 손 전 대표에게 출마를 양보한 바 있다. 손 전 대표는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강재섭 후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재보궐선거 전패가 새정치연합 내외부에서 새로운 인물을 찾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최근 손 전 대표의 행보가 수상쩍은 면도 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후 은둔을 계속하던 손 전 대표가 최근 서울로 올라오는 일이 잦아졌다는 목격담이 종종 흘러나오고 있는 것. 지난달 25일에도 손 전 대표는 서울에 올라왔다. 이유는 결혼식 참석이었다. 손 전 대표를 10년간 모신 강훈식 당 전략홍보본부 부본부장과 배상만 전 수행비서가 같은 날 결혼식을 올렸다. 손 전 대표의 측근은 다른 이유는 없다면서 “10년간 곁에 있던 사람 두 명이 결혼식을 하는데 불참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5월 15일 스승의 날에도 학교 은사를 뵙기 위해 또 다시 서울을 찾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들어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을 방문하는 셈이다.
또한 손 전 대표가 전셋집을 분당에서 서울 종로구 구기동으로 옮긴 것도 ‘정계복귀설’을 솔솔 부추기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손 전 대표가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구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억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접촉한 손 전 대표의 측근들은 손 전 대표가 앞으로의 포석을 위해 전셋집을 옮겼다는 주장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 한 측근은 “분당구 전세가가 1억 8000만 원에서 2억 원까지 올라 도저히 전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짐도 있고,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 거처도 필요해 집을 구해야 했다”며 “구기동으로 옮긴 것도 집을 옮길 때는 당연하게 연고를 생각하게 되니까 영화감독을 하는 딸의 집이 근처에 있어 그곳으로 구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손 전 대표의 복귀 가능성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앞서의 당직자는 “손학규는 새정치 내에서 문재인, 안철수같이 대선 후보로 손색이 없는 이른바 ‘선수’다. 이런 선수들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의도의 한 정치평론가는 “손 전 대표가 복귀하려면 모멘텀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 선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년 총선 전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며 “또한 돌아오더라도 대선 주자로 가능할지 여부는 손 전 대표 개인 의지에 달렸다기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다든가 정계개편이 일어나는 등의 엄청난 외부적 요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그런 중차대한 상황이 쉽게 올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손 전 대표의 측근도 “손 전 대표가 당장 돌아올 수 있겠냐”며 “(DJ가 은퇴 선언 후 복귀할 때처럼) 손학규 계가 확실하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다만 또 다른 측근은 “손 전 대표가 나라를 위해 쓰임이 있는 사람인데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 아니겠냐”며 “많은 열망이 모이면 손 전 대표의 복귀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손 전 대표의 정계 은퇴 선언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손학규 정계은퇴? 어디 탄광촌 찾아다니며 코스프레 쇼 좀 하다, 국민의 염원 어쩌고저쩌고 하며 내년 말 정도 복귀한단 뜻”이라고 독설을 날린 바 있다. 변 대표의 말처럼 올해 말에 손 전 대표가 복귀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 있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런 주변의 복귀설에 대해 정작 손 전 대표 본인은 어떤 입장일까. 지난 3월 10일 언론 노출을 전혀 하지 않던 손학규 전 대표는 손학규 계파 좌장으로 꼽히는 신학용 의원 모친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말 여수에서 안철수 전 대표의 장인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손 전 대표의 정치인 경조사 참가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상가를 찾은 손 전 대표에게 상주인 신 의원이 강진 ‘토담집’ 칩거를 끝내고 서서히 정치적 움직임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데 대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신 의원이 “제 문상 핑계대고 나오시려는 거 아니냐”고 농담으로 묻자 손 전 대표는 “조문객에게 감사하다고 해야지 헛소리하고 있다”며 말을 자른 바 있다. 속으로 움찔해서 말을 잘랐다는 뒷말이 즉각 나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손학규계 보스 떠난 그후 색깔 튀지 않아 ‘인기’ 손학규 전 대표의 계파는 야권의 수많은 계파 중에서도 소규모에 속한다. 키워드는 수도권, 중도 실용, 비노를 꼽을 수 있다. 손 전 대표 측근들은 경기도지사를 두 번 역임할 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많다. 손 전 대표가 도지사 시절 함께한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할 때도 함께 옮겨 갔다. 제대로 된 손학규 계파는 대통합민주신당 시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 중 일부가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하면서 손 전 대표와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다. 계파로 분류되는 전·현직 의원으로는 신학용, 조정식, 김민기 의원이 있고 김유정, 전현희, 전혜숙 전 의원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이낙연 전남지사와 이제학 전 양천구청장이 꼽힌다. 또한 지난 2월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 출마해 최고위원 선거에서 현장 대의원 투표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아 ‘깜짝스타’에 오른 바 있는 박우섭 인천남구청장도 손학규 계파다. 손학규 계 사람들은 손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에도 계속 모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손 전 지사가 상경할 때마다 측근들이 그를 찾아서 만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3월 신학용 의원 모친상이 끝나고서도 손학규 계 인사 다수가 저녁 식사를 한 바 있으며, 4월 측근들의 결혼식에 참여하고 나서 자리를 옮겨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고 전해진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현재 손학규 계는 계파 수장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더 잘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당 전체의 조직과 재무 상황 등 집안 살림을 총괄하기 때문에 핵심 보직으로 분류되는 당 사무총장을 대표적인 손학규 계인 양승조 의원이 맡고 있다. 지난 7일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막판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 것도 손학규 계인 조정식 의원이었다. 그가 비주류일 때는 숫자도 적었던 계파의 세가 수장이 없어지자 더 잘나가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친노, 반노와 달리 계파 색채가 옅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새정치연합 어느 계파에서도 손학규 계를 쓸 수 있고, 또 너무 색깔이 튀지 않아 반감도 적다는 평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당대표도 계파 청산을 명분으로 신임 사무총장으로 양승조 의원을 지목한 바 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계파 청산은 명분이고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손학규 계의 계파 수장이 자리가 비어 있으니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손을 내미는 제스처일 수도 있다. 계파에 속하는 숫자가 적지만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기에는 충분하다”면서도 “다만 빈 땅인 줄 알고 공들여 농사 지어놨는데 땅 주인이 돌아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