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민간조사업법(탐정법) 도입과 관련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이 세미나는 경찰 소관의 탐정법 도입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는 크게 반대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선 민간조사업법 도입과 관련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에선 한상암 원광대 교수와 신형석 박사는 각각 ‘민간조사업 관리감독의 실효성 제고 방안’과 ‘민간조사업 도입법안 논의와 입법대안’이라는 주제로 대표 발제에 나섰다.
한 교수는 이 자리에서 “최근 민간조사 분야에 대한 수요 증가, 범죄와 미아·가출인 증가와 같이 국가치안서비스의 부족현상을 고려해 볼 때 민간조사제도 도입은 시기적절하다”며 “국가치안서비스에 대한 한계를 메우며 민간경비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탐정법 도입에 적극 찬성론을 피력했다.
신 박사는 여기에 덧붙여 “역기능과 부작용 등 위험요소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제도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전국적인 조직력을 갖추고 있고, 40년에 걸친 경비업의 관리감독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경찰청장이 소관행정청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며 경찰 소관의 탐정법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공동 주최측인 강신명 경찰청장은 축사를 통해 “국가가 개인의 모든 사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국민 스스로의 자료와 정보 수집노력은 불가결할 수밖에 없다”라며 “문제는 여건과 형편상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 문제의 해결이 민간조사업”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세미나는 지난 2012년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과 경찰청, 그리고 대한민간조사연구학회가 공동 주최했다. 윤재옥 의원 역시 전직 경찰 출신 정치인이다. 앞서의 발제 내용과 주최측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이 자리는 무엇보다 경찰 소관의 민간조사업 도입의 필요성과 적절성을 피력하는 목적이 강했다.
경찰이 유독 탐정법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탐정법 도입에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한상훈 대변인은 “결국은 경찰들의 밥그릇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발의 법안 안에는 수사 경력자들에게 자격시험 일부를 면제해주는 조항(27조 3항과 4항)이 포함돼 있다. 또한 그 분들 하시던 일이 수사다 보니, 법안이 통과된다면 전직 및 퇴직 이후 경찰들에게 많은 이익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에서 명시하고 있는 수사 경력자들에는 경찰은 물론 검찰 수사관 및 국정원 요원이 포함된다.
이에 경찰 출신인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은 “만약 법안이 통과돼, 자격시험이 시행된다면, 경찰 선발 시험에 준하는 엄격한 수준으로 치러질 것”이라며 “수사 경력자들에게 일부 자격시험을 면제해주는 것은 수사 경력이 출중한 우수자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몇몇 찬성론자들은 일부 변호사들의 반발에 대해 도리어 ‘변호사들은 탐정을 자신들의 유사직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인데, 이 역시 밥그릇을 염두에 둔 처사 아니냐’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변협 측은 “실제 탐정이 도입된다고, 우리 일에 피해가 가는 일은 거의 없다”며 “국민 입장에서 탐정 도입이 이익이 된다면 우리도 환영하겠지만 오히려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반대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법안 통과를 전제로 기존의 수사기관인 경찰과 민간 수사 주체인 탐정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될까. 이는 매우 예민하면서도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첫 번째는 탐정을 경찰의 ‘대체재’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주로 반대론자의 주장이다. 다음은 대한변협 관계자의 말이다.
“경찰은 지금도 검찰과의 수사권조정 문제를 두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왜 지금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탐정들과 나누려는지 이해가 안 간다. 현재 민간 사건이라면 주로 변호사와 본인이 증거를 수집하고, 형사사건이라면 경찰이 이를 진행한다. 만약 탐정이 도입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내가 탐정을 고용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국민들 입장에서 전혀 환영할 일이 아니다.”
반면 김종식 소장은 탐정을 경찰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설명한다.
“경찰과 탐정은 오히려 협업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특히 실종자 찾기와 수배자 추적 분야가 그렇다. 지난 5년간 973명의 미아가 발생했다. 경찰 인력을 늘리는 것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리다. 탐정은 경찰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 또 일부에선 탐정법 도입으로 국민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변호사 수임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정보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이득이다.”
경찰과 탐정의 특수한 관계가 또 다른 ‘전관예우’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쌍방폭행’ 사건이 발생할 경우, 경찰 출신 탐정이 해당 사건의 증거 수집을 의뢰 받을 경우, 담당 경찰과 속칭 ‘짬짜미’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탐정들의 일탈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기존의 다양한 법적 장치가 있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경찰과 탐정법 도입의 이러한 예민한 사안들 때문에, 소관 기관을 법무부로 두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실제 윤재옥 의원의 법안과 함께 법무부를 소관 기관으로 두는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의 또 다른 민간조사업 도입 법안이 계류 중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법무부를 소관기관으로 둘 경우, 전문성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경찰 등 기존의 수사기관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여전히 찬반이 첨예한 탐정법 도입이 과연 10년이 넘는 법안 계류 역사를 넘어 사회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