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에서 벌어진 패륜 사건 현장. 집 앞 마당 곳곳에는 아버지 강 씨가 흘린 핏자국이 선명했다.
곧이어 신고를 받은 경찰과 119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다. 아들은 그때까지도 아버지를 바닥에 눕힌 채 폭행하고 있었다. 집 앞 마당 곳곳에는 아버지 강 씨가 흘린 핏자국이 선명했다. 경찰은 아들과 딸을 현행범으로 긴급체포했다. 아버지 강 씨는 폭행으로 인해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처음 신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가정불화로 인한 단순 존속폭행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전기충격기와 가스분사기 등 부자 간 우발적인 폭행사건으로 보기에 미심쩍은 흉기들이 발견됐다. 석연치 않았던 경찰은 남매의 휴대전화 내역을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남매가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농약 샀다”, “전기충격기 준비했다” 등 아버지 강 씨를 살해하기 위한 사전모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사건의 최초 신고자였던 어머니 김 씨도 공모자였다는 것. 김 씨는 남편을 살해하는 데 사용할 농약도 딸과 함께 구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도 피해자라며 병원에서 남편의 곁을 지키던 김 씨는 결국 지난 5일 존속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병원에 입원 중인 강 씨는 부인까지 공범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웃 이 아무개 씨(58)는 “강 씨가 워낙 말이 없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입원한 이후 아들과 딸 이야기는 입에 잘 올리지 않았다”며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부인 김 씨가 강 씨 옆을 지키고 있었다. 부인 김 씨는 ‘아이들 보고 싶지 않다’, ‘나도 피해자’라는 말을 했다. 그랬던 부인이 공범이라는 소식을 뉴스에서 봤는지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씨는 동네에서 말수가 적고 고집이 센 사람으로 통했다.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 없이 남의 집 머슴살이를 전전하며 어렵게 자란 강 씨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이웃주민 송 아무개 씨(68)는 “강 씨가 막노동도 하고 농사일도 하면서 돈을 모았다. 돈도 땅에 묻어두고 꺼내 쓰던 사람이다. 부인인 김 씨가 남편이 돈을 숨겨놓고 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다녔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워낙 돈에 인색한 탓이었을까. 강 씨 집안은 돈 문제로 가족끼리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이웃주민 김 아무개 씨(75)는 “강 씨 부인은 남편이 너무 돈을 안 줘 남편이 땅에 묻어 둔 돈을 몰래 꺼내다 들켜 혼났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남편에게 맞아서) 골병이 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것으로 알려진 강 씨의 큰아들(38)도 지난해 돈 문제로 강 씨와 크게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 가족의 문제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앞서의 이웃주민 김 씨는 “강 씨가 덩치가 좋아 일을 잘했다. 막노동이고 남의 집 일이고 농사일이고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런데 강 씨 부인이 생전 일을 돕지 않았다. 그 것 때문에 강 씨가 부인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웃주민 박 아무개 씨(74)도 “딸과 아들까지 밭에 나와 있어도 일은 강 씨 혼자만 했다. 왜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물으면 ‘저는 저런 거 할 줄 몰라요’라고 하더라. 강 씨 부인도 농사일을 돕지 않아 강 씨 혼자 거의 일을 도맡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남매와 어머니 김 씨는 농약을 이용해 강 씨를 독살할 계획을 세웠다. 농약을 탄 음료수 등을 강 씨에게 건넨 후 자살로 위장할 심산이었던 것. 김 씨와 딸은 첫 번째 살인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지난 4월 중순 사천 집으로 강 씨를 찾아왔다. 하지만 김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김 씨는 남편 강 씨에게 “아이들이 약을 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귀띔했다. 이후 강 씨는 딸이 건네는 음료와 커피를 거부했다. 문도 꽁꽁 걸어 잠그고 잠드는 등 강 씨는 몸을 사렸다.
아버지가 자신을 경계하는 사실을 눈치 챈 딸은 남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범행 전날인 지난 4월 30일 저녁 동생은 전기충격기와 가스분사기를 들고 아버지의 집을 찾았다. 다음날 새벽 남매는 아버지를 전기충격기로 쓰러뜨리고 무차별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부인 김 씨도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철근으로 얻어맞았다. 결국 이들의 살인계획은 변심한 어머니 김 씨 때문에 미수에 그쳤다.
사천경찰서 이현주 형사1팀장은 “남매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뚜렷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던 딸과 아들은 5개월 정도 방세가 밀려있는 상황이다. 당장 생활이 어려운데 매번 아버지가 도움을 거절하니까, 아버지를 살해하고 상속받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며 “그러나 중간에 어머니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남편에게 사실을 알려준 것 같다. 피해자 강 씨도 사건 당일 가족끼리 쉬쉬하며 눈빛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 중인 강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의 현재 보호자인 이 씨는 “사람들이 못 배웠다고 무시하니 강 씨가 마음을 닫아버린 것도 있다. 아마 자식들도 세대차이도 느끼고 소통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강 씨지만 시집장가 못 간 자식들 걱정이 많았다. ‘결혼할 짝을 데려오면 재산 한쪽 떼 줄 텐데’, ‘애들이 자립하는 걸 보고 싶은데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병원비 걱정 때문에 퇴원한다는 걸 겨우 말렸다. 현재는 거동도 조금씩 하고 건강을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경남 사천=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패륜남매 잔혹성 어디까지 “변심한 엄마부터 죽이자” 휴대전화 내역으로 드러난 ‘패륜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가장을 살해하고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부인과 아들딸들이 몇 개월에 걸쳐 용의주도하게 살인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남매는 모든 범행을 어머니가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딸 강 아무개 씨(35)는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를)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안 그러면 너희들 고생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엄마가 너무 무섭다”고 말하고 있다. 아들(33)도 “돈도 안 주고 때리고, 하여튼 가정적으로 잘 되는 게 없기 때문에, 만날 구박하고 욕하고 때리고 상습범이기 때문에…”라며 아버지 강 씨가 범행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 과정에서 이들이 어머니까지 살해하려고 한 정황을 발견했다. 범행을 공모했던 어머니가 마음을 고쳐먹고 아버지 강 씨에게 범행계획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챈 남매는 방해가 되는 어머니를 먼저 죽이고 나서 아버지를 죽이자고 모의를 했다. 사천경찰서 이현주 형사1팀장은 “서로 어머니를 죽이자고 공모한 내용이 남매가 주고받은 휴대폰 메신저 내용으로 확인이 됐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이는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 씨는 자녀들과 남편을 죽일 계획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현재 함께 조사를 받고 있는 이들 남매와 어머니 김 씨는 점심식사를 할 때도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이현주 팀장은 “가족 간 결속력이 전혀 없는 상태다. 피의자들은 후회한다는 말만 할 뿐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묻지도 않는다”고 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