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로 밀거나, 족집게로 뽑거나, 왁싱을 하거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매일 몸 어딘가의 털을 제거하느라 상당 시간을 할애하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몸의 털은 사실 필요 없거나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특정 신체 부위에 털이 자라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령 피부를 치유하거나 보호하거나 혈액 순환을 돕는 등 몸에 이로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불필요하게 제모를 할 경우에는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며 경고한다. 심지어 털이 많은 사람이 더 똑똑하고 건강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이 분야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살펴본 ‘왜 몸의 털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왜 몸에 털이 많을수록 좋은지’에 대해 알아봤다.
전문가들은 “우리 몸의 털은 필요가 없거나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가능한 한 제모를 하지 말 것을 권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 모공은 피부 재생
신체 어느 부위든 모든 털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래드포드대의 세포생물학 교수인 데스 토빈은 “모공은 단지 털이 자라는 구멍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공 주위에는 혈관, 신경, 지방이 모여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공은 피부 재생을 돕는 줄기 세포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면서 팔뚝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를테면 모공이 넓고 많아서 비교적 털이 많은 팔뚝 바깥쪽에 난 상처와 이에 비해 털이 없는 팔의 안쪽에 난 상처를 비교해 보면 바깥쪽에 난 상처가 더 빨리 치유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유는 바로 줄기 세포 때문이다. 팔뚝의 바깥쪽에는 줄기 세포가 더 많고, 또 혈액이 더 많이 공급되기 때문에 상처가 빨리 치유된다.
대머리의 경우도 비슷하다. 두피에 상처가 생기거나 타박상을 입었을 경우, 대머리는 머리숱이 많은 사람보다 상처가 늦게 아문다. 이는 건강한 모공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도를 하거나 왁싱을 해서 털을 제거하는 경우는 다르다. 이런 경우는 모공이 손상돼서 털이 빠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햇빛을 차단한다
먼 옛날 인류 조상에게 있어 몸에 난 털은 일종의 ‘의복’과도 같았다. 런던 크랜리 클리닉의 피부과 전문의인 닉 로우는 “체모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햇볕과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오늘날 진화한 현대인의 경우에는 선사시대 조상들처럼 보호 목적에서 털이 수북하게 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털이 많을수록 자외선 차단 효과를 더 많이 보는 것은 사실이다.
이밖에 토빈 교수는 “역사적으로 체모의 또 다른 기능은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면서 “잘 알다시피 대머리는 열을 더 많이 뺏긴다. 추위에 떨면 온 몸의 털이 바짝 서는데 이는 따뜻한 공기를 피부 표면 가까이 가둬놓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 코털을 뽑지 마라
레스터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조지 머티는 “그래도 굳이 코털을 제거하고 싶다면 뽑는 것보다는 가위로 다듬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특히 감기에 걸렸을 경우 코털을 뽑는 것은 좋지 않다. 머티 전문의는 “족집게로 코털을 뽑을 경우 모근까지 함께 제거되는데 이럴 경우 피부에 구멍이 생겨 감염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감염균이 주변에 많을 경우에는 코털을 뽑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코끝이야말로 신체 부위 가운데 가장 털이 촘촘히 자라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의 몸에는 500만 개의 모공이 있는데 성인이 되면서 팔다리의 모공 간격은 점점 넓어지는 반면, 코끝의 모공 간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 가슴털 많으면 건강
흔히 솜털이라고 부르는 가느다란 털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점차 두꺼워지며 색도 짙어진다. 이는 테스토스테론이나 디하이드테스토스테론과 같은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란 털을 가리켜 성모(굵은털)이라고 한다.
남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여성보다 보통 성모가 더 많이, 그리고 신체의 더 많은 부위에서 자라게 된다. 가령 얼굴, 복부, 가슴과 같은 부위가 그렇다. 따라서 가슴털이 많다는 것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건강한 남성이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슴털이 적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슴털의 많고 적음은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몸에 털이 적은 남성의 경우에도 남성 호르몬이 풍부할 수 있다.
또한 가슴털과 지능 사이에 특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인 에이커래커디 알리아스는 “특히 의사들의 경우 일반인들보다 가슴에 털이 난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병원 수련의 가운데 가슴털이 수북한 경우는 45%에 달했던 반면, 일반 남성의 경우에는 10% 미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빈 교수는 이 연구 결과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종, 민족성, 사회경제적인 지위 등의 요소를 배제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는 결과다”라고 말했다.
△ 털은 뽑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게 더 좋다
몸의 털은 살갗이 서로 맞닿았을 때 해당 부위의 마찰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관련, 토빈 교수는 “아무리 몸의 적은 털이라도 모든 털은 피부의 ‘완충 작용’을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부위는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제모를 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가령 겨드랑이나 비키니 부위와 같은 곳이 그렇다. 토빈 교수는 “겨드랑이 털을 제거할 경우, 팔을 움직일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살갗이 데이는 것과 같은 ‘카펫 번’ 증상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제모 크림을 이용해서 비키니 라인의 털을 제거할 경우 질염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경우, 가려움증, 통증, 분비물 증가 등과 같은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런던 세인트조지병원의 오스틴 어그마두 산부인과 전문의는 “어떤 사람들은 제모 크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염증이 발생해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반복적으로 국부의 털을 제거할 경우에는 모낭염이 발생할 수 있다. 어그마두 전문의는 “왜냐하면 이 부위에는 모공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땀이 잘 나는 부위이기 때문에 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 발가락에 털이 많으면 혈액 순환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발가락의 털이 갑자기 빠지기 시작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혈관외과의인 콘스탄티노스 키리아키데는 “발가락 또는 종아리 부위의 털이 빠진다면 이는 말초동맥질환의 증상일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다리 동맥에 퇴적물이 쌓일 경우 다리 근육에 혈액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으며, 이런 경우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키리아키데는 “다리에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발가락 끝까지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발가락 부분의 모공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발가락 털이 빠진다는 것이다.
반면 선천적으로 발가락에 털이 적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키리아키데는 “애초에 털이 많았는데 갑자기 빠지기 시작한 경우에만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발가락의 털이 빠지는 증상은 보통 말초동맥질환이 상당히 진행됐을 때 나타나며, 초기에는 걸을 때 종아리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 귀털은 자르지 않는다
귓구멍의 털은 먼지나 미세 입자 등 외부의 이물질이 귓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귀털이 많이 자란 경우에는 되레 귀지가 많이 모여 지저분해 보이는 것이 사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귀털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귀털을 제거할 경우 청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인도 펀자브대학의 인류학자인 키왈 크리샨은 “사람의 귀에는 음향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두 가지 종류의 미세한 감각모가 있다. 귀의 바깥쪽에 난 감각모는 부드러운 소리는 증폭시키고, 시끄러운 소리는 작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귀의 안쪽에 난 감각모는 소리의 파동을 청각 신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귀털을 제거할 경우에는 이런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크리샨 박사는 “귀털이 많으면 청력이 더 좋아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이런 주장에 아직까지는 회의적이다.
△ 겨드랑이털이 많을수록 페로몬 더 잘 퍼트려
일부 전문가들은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이성을 더 잘 유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토빈 교수는 “다른 포유 동물의 경우, 체모는 페로몬과 같은 화학 물질의 냄새를 퍼뜨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페로몬은 이성을 유혹하는 화학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토빈 교수는 “사람도 그런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단, 겨드랑이털을 깎을 경우 페로몬이 공중으로 퍼지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 속눈썹이 길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속눈썹이 풍성할수록 땀과 미세 입자로부터 눈을 잘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또한 안구가 촉촉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모두 속눈썹 덕분이다.
단, 문제는 속눈썹의 길이다. 전문가들은 속눈썹의 최적의 길이는 눈을 떴을 때 눈 너비의 3분의 1이라고 말한다. 속눈썹이 안구 표면의 공기 흐름을 바꿔 일종의 ‘과속 방지턱’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 눈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속눈썹이 너무 길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 효과가 나타난다. 애틀랜타 조지아기술연구소에 따르면 속눈썹이 뜬 눈 너비의 3분의 1보다 긴 경우 오히려 눈 주위의 공기 흐름이 증가해 안구 건조증이 나타날 수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