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 <어벤져스2>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은 수현. 작은 사진은 어벤져스팀 내한 기자회견 당시 모습. 일요신문 DB
할리우드는 배우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한다. 세계 영화시장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싶은 건 배우라면 누구나 가진 ‘로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한다고 누구나 진출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동양인이라는 현실적인 한계 탓에 그 진입 장벽 역시 높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할리우드에 뿌리내리고 자생력을 키워가는 이병헌과 수현, 배두나의 활동은 관심을 받기 충분하다. 이들의 현지 진출 방법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제각각이지만 오히려 이 점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맞춤형 공략 비법’으로 통하고 있다.
# 이병헌
이병헌은 최근 여섯 번째 출연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확정했다. 1962년 제작된 서부극 <황야의 7인>을 현대 감각으로 바꾼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에 참여하기로 했다. 멕시코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을 구하려고 나선 7명의 살인청부업자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에서 이병헌은 출연 비중이 상당히 높은 빌리 록이란 인물을 맡았다.
이병헌은 2009년 블록버스터 <지 아이 조:전쟁의 서막>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2013년 <지 아이 조2>와 <레드2>를 동시에 개봉하기도 했다. 오는 7월 1일에는 <터미네이터> 리부트 시리즈 첫 편인 <터미네이터:제니시스>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의 활동만 놓고 보면 ‘할리우드 집중화’가 뚜렷하다.
이병헌의 할리우드 활동 지향은 명쾌하다.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쌓은 시리즈나 유명 스타와의 동반 출연에 주력한다. 실제로 <레드2>에서는 브루스 윌리스, 캐서린 제타존스와 호흡을 맞췄고 <터미네이터:제니시스>에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만났다. 촬영을 앞둔 <황야의 7인>에서 상대하는 배우 역시 덴젤 워싱턴, 에단 호크 등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배우들이다.
이병헌은 <레드2> 개봉을 앞두고 “미국에서 하고 싶은 역할을 하려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일 뿐”이라고 했다. 일단 현지 안착이 먼저라는 의미였다. “블록버스터에 출연하고 그 안에서 동양인 킬러 같은 악역을 맡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짚은 그는 “훗날 진짜 원하는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절차이자 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전략을 꾸준히 실천 중인 그는 올해 초 알 파치노와 함께 한 영화 <비욘드 디시트> 촬영도 마쳤다.
# 수현
경이적인 흥행 기록을 쓰고 있는 <어벤져스2>의 수현은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참여한 행운을 얻었다.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 인기 영웅 캐릭터가 집결한 <어벤져스> 시리즈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제작사 마블스튜디오가 가장 주력하는 작품이다. 그간 미국영화에 출연한 한국배우는 여럿이지만 수현은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장 핫한 시리즈에 참여했다는 사실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수현은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한국말과 영어를 거의 동시에 배웠다”는 그는 먼저 미국에 진출한 김윤진과 더불어 완벽한 영어 구사력을 갖췄다. 제약 없이 현지 시장에 진출하는 ‘기본’을 갖췄다. <어벤져스2> 참여를 시작으로 그의 활동 방향은 주로 대작에 집중되고 있다. 편당 제작비가 우리 돈으로 100억 원에 달하는 미국 드라마 <마르코 폴로> 시리즈에 몽골의 여전사 역을 맡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각국에서 로케가 이뤄지는 대작으로, 미국 최대 규모 영상 제작·유통사인 넷플렉스가 세계 수출을 목표로 추진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시선을 끈다.
“그동안 상상만 해오던 장르나 이야기에 직접 참여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할리우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는 수현은 “기회가 된다면 할리우드 활동에 주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물론 전망은 긍정적이다. <어벤져스2> 참여 사실로 얻은 프리미엄 자체가 상당하다. 함께 연기한 현지 배우들로부터 얻는 평가도 긍정적이다. 수현을 두고 <아이언맨> 시리즈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한국에서 이렇게 훌륭한 연기자가 배출됐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평했다.
이병헌이 출연한 <지 아이 조2>와 배두나가 출연한 <주피터 어센딩>의 한 장면.
# 배두나
이병헌이 할리우드 활동의 물꼬를 틔웠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아 더욱 견고한 활동 영역을 굳힌 연기자는 배두나다. SF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로 영화 팬들을 놀라게 만든 앤디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남매 감독에게 발탁돼 연달아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 시작은 2012년 개봉한 <클라우드 아틀라스>였다. 톰 행크스, 휴 그랜트 등과 함께했던 배두나는 이후 워쇼스키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주피터 어센딩>에도 참여하며 할리우드에서의 보폭을 넓혔다. 거듭된 배두나 캐스팅에 대해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동양인 여부를 떠나, 지니고 있는 매혹적인 이미지 때문”이라고 밝혔다. 굳은 신뢰를 증명하듯 이들 감독은 10부작으로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센스8>의 주인공으로 배두나를 또 다시 발탁해 촬영을 마쳤다.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최근 3편의 작품에 빠짐없이 참여한 배우는 배두나가 유일하다.
할리우드로 향하는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 앞으로 현지에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스타는 더 많다. 조니 뎁이 소속된 에이전시 UTA와 전속계약을 맺은 하지원이 후발 주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원은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과 만나 현지 진출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돌아왔다. 하정우 역시 향후 활동에 기대를 모으는 배우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흥행 파워를 과시하는 그는 그동안 할리우드 제작진으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왔지만 조건이나 여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할리우드가 먼저 욕심내는 배우라는 점에서 진출 가능성은 크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