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시대 열다
박인비는 대표적인 ‘세리 키즈’다. 어린 시절 박세리의 활약을 보며 골프선수 꿈을 키웠고, 그 꿈은 의외로 빨리 이뤄졌다. 2007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LPGA투어 무대에 뛰어든 박인비는 이듬해인 2008년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연합뉴스, AP/연합뉴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 연습을 시작한 박인비는 2000년엔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에 뽑혔고, 죽전중 1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유학길에 올랐다. 박인비는 거침이 없었다. 2002년 US여자주니어 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했고, 2003년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는 등 25번의 전국대회에서 18번이나 톱5에 들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06년 프로로 전향한 박인비는 2부 투어인 퓨처스를 거쳐 2007년 LPGA투어 첫 시즌을 맞았다. 첫 해에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한 게 최고였다. 그러나 2008년, 박인비는 19세 11개월의 나이에 자신의 우상 박세리가 섰던 바로 그 무대,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10개월이나 일찍 앞당기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0대 선수로서는 처음.
이후 박인비는 올 시즌 2승을 포함, 통산 14번째 LPGA 투어 트로피를 차지했다. 올 시즌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목표로 하는 그는 현재 세계 랭킹 2위에 올랐지만, 조만간 우승이 이어지면 올 시즌 세계 랭킹 1위 탈환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박인비는 US여자오픈과 LPGA 챔피언십에서 각각 2번,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한 번 우승했다. 브리티시 오픈과 2013년부터 메이저대회로 승격된 에비앙챔피언십 2개 대회 중 하나만 우승해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김효주는 여섯 살 때부터 골프채를 잡기 시작한 이후 ‘골프 신동’으로 불리며 출전 대회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상비군 발탁, 중학교 3학년 때는 국가대표로 뽑혔다. 중학교 2학년부터 출전하기 시작한 프로 대회에선 10번째 출전이었던 2012년 4월 롯데마트오픈에서 프로들과 무려 7타차를 벌리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김효주는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승(상금 10위)을 기록한 김세영을 압도했다. 모두 5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등극했다. LPGA 투어 대회 우승도 먼저 차지했다. 최소타 기록(61타)을 세우며 메이저대회인 에비앙마스터스 우승컵을 품에 안은 것. 그렇게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김효주는 올 시즌 LPGA 무대에 데뷔했다. 롯데그룹과 5년간 연봉 13억 원, 총액 65억 원의 초대형 스폰서 계약을 맺은 터라 보다 안정적인 투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 3월 LPGA 데뷔 3개 대회 만에 JTBC파운더스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현재 세계 랭킹 4위.
아버지가 태권도 관장으로 있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운동 감각을 선보였던 김세영은 김효주와 함께 LPGA 루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 시즌 열린 9개 대회 중 8개에 출전해 우승 2회를 포함해 톱10에 5차례 들었다. 게다가 2승 모두 극적인 승부 끝에 일궈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바하마클래식에서는 최종 라운드 ‘불꽃타’로 역전승을 거뒀고 롯데챔피언십에서는 마지막 홀의 칩인 파 세이브와 연장전 ‘샷 이글’이라는 기적적인 샷을 선보였다.
김세영은 신장 163㎝로 골프 선수치고는 큰 편이 아니지만 태권도로 단련된 단단한 하체로 주니어 시절부터 꼬마 장사로 통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 2006년 한국 여자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고, 중학교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세영은 2013, 2014년 KLPGA 투어에서 통산 5승을 거뒀는데 모두 빨간 바지를 입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현재 김세영의 상금 랭킹은 3위, 올해의 선수상 3위, 신인왕 포인트 1위다.
# 스윙 장단점
박인비 스윙의 장점은 간결함에 있다. 일정한 스윙 리듬과 클럽 헤드의 무게를 느끼는 스윙이 장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클럽 헤드의 무게를 잘 느끼기 위해 리듬을 찾다보니 테이크백을 천천히 한다. 그리고 백스윙 톱이 높은 이유는 다운블로를 좀 더 잘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스윙 덕분에 박인비는 100야드 안쪽은 거리와 방향성이 대단히 정확한 편이다.
‘컴퓨터 퍼트’로 유명한 박인비는 남기협 코치와 결혼 후 최근 퍼트 방식에 변화를 줬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만 보고 스트로크를 했는데 지금은 헤드를 쫓아가는 방법으로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박인비는 손목이 짧고 뻣뻣한 편이다. 몸의 유연성도 다소 떨어진다. 반면에 손목의 힘과 어깨 회전력은 좋다. 자신의 장단점을 살려 박인비표 맞춤 스윙이 완성됐다. 파워는 더 살리고 손목은 덜 쓰는 자세를 개발해낸 것이다. 백스윙은 작지만 조금 일찍 머리를 움직여 체중 이동을 쉽게 하기도 했다.
김효주 스윙의 가장 큰 장점은 ‘리듬’이다. 그의 몸과 힘에 맞는 스윙을 하면서 어드레스부터 피니시까지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더욱이 김효주는 공을 강하게 때리는 스윙이 아님에도 장타를 날린다. 임팩트 때 체중을 확실히 실어 스윙을 하다보니 비거리가 늘 수밖에 없다.
김효주의 드라이브 샷 평균거리는 약 260야드(KLPGA 투어 공식기록은 255.3야드)다. 단점으로는 백스윙 때 클럽 헤드가 닫혀 올라가는 부분이다. 퍼트할 때도 홀 쪽으로 머리가 따라가는 습관이 있다. 김효주는 평소의 자신의 경기를 영상으로 분석하며 단점을 수정 보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세영은 단단한 하체와 뛰어난 어깨 회전을 바탕으로 장타를 날린다. 올 시즌 LPGA 투어 장타 랭킹에서는 16위(261.6야드)에 머무르고 있지만 승부처에선 언제든 270야드 이상의 장타를 칠 수 있다.
김세영의 스윙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김세영은 “백스윙 때 힘이 많이 들어가면 로테이션이 안 돼 헤드가 닫히고 다운스윙 때는 열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로테이션이 잘 되게 몸에 힘을 빼고, 다운스윙 이후에 확실하게 피니시를 잡아주면 열렸던 헤드가 닫히는 그 힘으로 인해 볼이 훨씬 멀리 가게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에서 10~20야드 정도 덜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치면 오히려 거리가 더 잘 나온다”고 밝혔다. 자신의 몸에 맞는 자연스러운 스윙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치면 거리가 더 많이 나간다는 내용이다.
LPGA는 리디아 고와 박인비의 강세가 뚜렷하다. 그런 가운데 김효주, 김세영은 앞의 두 선수를 위협하는 ‘핫피플’들이다. 두 사람은 강점도 다르고 스타일도 판이하다. 김효주가 안정감을 앞세워 기복이 거의 없다면, 파워풀한 김세영은 경기 결과도 드라마틱하다.
박인비는 이런 후배들을 통해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4일(한국시간) LPGA 투어 노스 텍사스 슛아웃에서 시즌 2승 달성 후 박인비는 “이들의 활약상을 보고 ‘우리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골프 여제’ 박인비, ‘슈퍼 루키’ 김효주, 그리고 ‘역전의 여왕’ 김세영이 미국 골프 무대에서 펼치는 치열한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만 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원조 3인방은 지금? 세리 “친구들 떠나 외로워요” 한국 여자 골프가 LPGA 무대에서 기복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데에는 ‘LPGA 1세대’로 꼽히는 박세리(38), 김미현(38), 박지은(36)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들 중 박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퇴했고, 엄마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박지은도 심각한 허리 부상으로 재활을 반복하다 2012년 은퇴했다. 아마추어 55승이란 전설적인 기록으로 프로에 데뷔했고, 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 등 통산 6승을 기록했다. 12년 동안 연애를 한 초등학교 선배 김학수 씨와 2012년 결혼했고, 지난 2월 첫 딸을 출산했다. 박지은도 골프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것은 물론 <내 인생 최고의 경기는 지금부터>라는 책을 발간했다.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박세리는 김미현, 박지은에 이어 한희원, 장정마저 LPGA 무대를 떠났을 때 외로움을 곱씹었다고 한다. LPGA 1세대 중 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일본의 강수연을 제외하곤 박세리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후배들 중에선 박인비의 심플한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고 밝혔다. 골프가 너무 복잡하거나 많은 걸 갖고 있으면 힘들어지는데 박인비는 골프에 최적화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 “인비한테 한 가지 더 부러운 게 있다면 같은 길을 걷는 남편, 남기협 코치다. 나를 위해 다른 직업을 버리고 희생하는 남자친구나 남편이 아닌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정말 부럽다. 내가 알고 있는 커플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커플인 것 같다.” 박세리는 몇 차례 열애설, 결혼설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솔로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