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0일 민주통합당과 금융노련, 금융권 피해자 100여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본관 앞에서 ‘국부유출 론스타 먹튀 매각 승인 규탄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일요신문DB
고위 경제 관료의 대형 로펌행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출신이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근한 예만 들어봐도 지난 4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법무법인 지평 고문으로,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이 법무법인 율촌 고문으로 영입됐다. 법무법인 세종이 “3월 말경 영입했다”고 했으니 시기적으로만 보면 윤용로 고문의 세종행이 김 전 위원장이나 권 전 원장보다 먼저 성사된 것이다.
그럼에도 윤용로 고문의 법무법인 세종행이 유독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비단 윤 고문이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부위원장 출신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세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론스타의 법률대리인인 데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물은 2007년에 윤 고문이 금융당국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으며 윤 고문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 외환은행장 등을 거쳤기 때문이다.
윤 고문의 이러한 경력과 윤 고문을 둘러싼 정황만 놓고 보면 윤 고문이 론스타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윤 고문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경력과 정황만 놓고 판단하면 큰 오해가 생긴다”며 “나는 론스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관계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46억 7900만 달러(약 5조 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한 상태다. ‘2007년 외환은행 지분을 HSBC에 매각하려 했으나 한국 금융당국 승인이 늦어지면서 매각이 무산돼 손실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론스타가 제기한 ISD 첫 재판은 오는 15일 미국 워싱턴DC 국제투자중재센터(ICSID)에서 열릴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론스타의 ISD에 대응하는 데만 이미 수십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이 재판에서 론스타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다. ‘고위 관료 출신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 윤 고문의 세종행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가장 큰 이유다.
하나금융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윤용로 고문은 하나금융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 같은 점들이 관련 소송을 제기한 론스타 쪽으로 혹시나 들어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제계와 금융권,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윤 고문의 세종행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위 부위원장까지 지낸 고위 경제 관료 출신이 론스타의 법률대리인 쪽으로 간 것은 부적절한 처사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윤 고문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실제로는 2007년 당시 론스타가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려 한다는 얘기만 나오는 시점이었고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재판이 걸려 있던 터라 HSBC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며 “본격적인 논의는 내가 금감위에서 나온 후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윤 고문이 금감위 부위원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그만둔 것은 2007년 12월이다. 윤 고문은 금감위에서 나오자마자 기업은행장으로 취임했고, 이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외환은행장 등을 거쳤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로펌마다 약간 다를 수 있지만 법무법인 고문들은 각 사안에 대한 자문 역할을 주로 한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법무법인 고문을 로비스트에 빗대기도 한다. 선후배 관계와 인맥을 통해 얻은 정보를 법무법인에 전달하기도 하고 특정 사건과 관련해 정부 관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4월 13일 국회 연설에서 론스타의 ISD와 관련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전광우·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전임 고위 관료들이 워싱턴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털어놨다.
법무법인 세종 홈페이지 메인 화면 캡처.
법무법인 세종은 윤 고문의 영입이 론스타가 제기한 ISD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세종 측은 “금융산업에 관한 일반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윤 고문을 영입한 것”이라며 “론스타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며 윤 고문이 론스타 사건에 어떤 도움을 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밝혔다. 윤 고문 역시 “나는 소송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윤 고문은 론스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외환은행장도 거쳤다. 게다가 하나금융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에는 하나금융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금융당국, 하나금융, 외환은행 등 론스타와 외환은행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을 윤 고문은 전부 거친 것.
하나금융 부회장 시절은 물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외환은행장으로서 윤 고문의 행적도 새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윤 고문은 외환은행장 시절 “단기 수익을 추구한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영업력을 갉아먹었다”며 외환은행의 외형 성장과 영업력 회복에 주력했다.
일부에서는 윤 고문의 외환은행장 시절을 ‘론스타 흔적 지우기’로 요약하기도 한다. 윤 고문은 “내가 외환은행장 시절 ‘론스타 청산’을 외쳤다고 하는데, 그것은 론스타의 단기 수익 추구로 은행 영업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은행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며 “외환은행 인수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다 알아서 한 거였고 나는 글로벌 업무를 담당하다 외환은행장으로 갔지만 그땐 이미 론스타가 떠나고 없었던 상태”라고 말했다. 즉 론스타와 관계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나금융 관계자는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김승유 전 회장이 주도하긴 했지만 그룹 전 임원이 옆에서 지원하고 전사적 차원에서 진행한 일이었다”고 전했다. 또 외환은행 관계자는 “당시 윤 행장이 외형 성장에 너무 치중해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됐다”며 “이 때문에 하나금융의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의 명분을 제공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감위 부위원장, 하나금융 부회장, 외환은행장 등 론스타와 관련해 주변 인물도 아니고 핵심 위치에만 있었던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관계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데, 세종으로 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적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일고 있는 논란에 대해 윤 고문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경력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라”며 적극 반박하고 있고, 법무법인 세종 측도 “윤용로 고문이 론스타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파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윤 고문의 세종행으로 대형 법무법인으로 향하는 고위 공직자 출신, 즉 ‘관피아’에 대한 관리 규정을 마련하고 이를 강화할 필요성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성인 교수는 “모피아·관피아들이 민간기업이나 법무법인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가서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났는지는 밝혀야 한다”며 “하루 빨리 로비스트등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