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에는 한국경마를 대표하는 3세 준족 13마리가 부마(씨수말)의 명예를 걸고 격돌한다.
자마(새끼말)들이 경마에서 거둔 성적에 따라 씨수말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막대한 상금이 걸린 코리안더비는 사실상 제주도에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씨수말들의 대리전으로 볼 수 있다.
매니피.
이번 대회에 자마들을 출전시킨 주요 씨수말은 100억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메니피(한국마사회, 19세)와 17연승의 미스터파크를 배출한 엑톤파크(이시돌목장, 19세), 데뷔4년차의 민간씨수말 컬러즈플라잉(태영목장, 9세) 등이다.
이들은 한국 경마를 이끌어갈 ‘혈맥’의 주도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펼쳐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민간 씨수말 ‘컬러즈플라잉’은 자마 ‘라팔’(수말 3세, 마주 김종태)과 ‘돌아온현표’(수말 3세, 마주 박웅진)가 유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으며 한국경마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값이 비싼 씨수말은 ‘메니피’다. 현재까지 보여준 ‘메니피’의 성적은 막강하다.
2007년 국내에서 첫 교배를 시작한 ‘메니피’는 2010년 퍼스트크롭(first crop) 리딩사이어에 올랐고, 2011년에는 리딩사이어 2위에 오른바 있다. 이후 2012년~2014년에 3년 연속 리딩사이어에 선정됐다.
코리안더비에 출전한 4마리의 메니피 자마들의 평균몸값은 1억 4천5백만원에 달한다.
‘메니피’의 자마는 부상이나 질병 등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한 1억 원을 보장 받을 정도로 ‘메니피’ 광풍은 거세다.
메니피는 현역시절 스타 경주마로 인기가 대단했다. 수입되기 전 1998년과1999년 미국에서 11번 경마 대회에 출전해 5차례 우승했고, 4차례 준우승, 1차례 3위를 기록했다.
수득상금으로 미화 1백73만2000달러를 벌어들였다. 메니피는 유명 종마의 피를 받았는데, 그의 할아버지인 ‘스톰 캣’은 1회 최고 교배료 5억 원, 생애 총 교배료 1400억 원을 받은 최고의 종마 가운데 하나였다.
메니피는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 최고의 종마로 활약 중이지만, 나이가 19살로 많기 때문에 종마로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컬러즈플라잉.
이런 상황에서 국내 씨수말 부문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 삼관경주 첫 대회로 지난 4월에 열린 ‘KRA컵 마일’에서 ‘라팔’과 ‘돌아온현표’가 1·2위를 기록하며 부마 ‘컬러즈플라잉’의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동안 3세마 경주에서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메니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일대사건이었다.
현재 경주에 출전한 ‘컬러즈플라잉’의 자마들은 모두 43두이고, 이 중 17마리가 우승을 기록하며 데뷔 2년차 씨수말 부문에선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컬러즈플라잉’의 자마들이 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핏줄이다. ‘컬러즈플라잉’의 부마는 1회 교배료가 15만 달러에 달했던 전설적인 씨수말 ‘에이피인디(A.P.Indy)’다.
2011년 씨수말 생활을 은퇴한 ‘에이피인디(A.P.Indy)’는 미국 삼관마인 ‘시애틀 슬루(Seattle Slew)’의 자마로 현역시절 ‘벨몬트 스테익스’, ‘브리더스컵 클래식’ 등에서 우승을 하며 올해의 경주마에 선정됐다.
은퇴 후에는 약 20년간 씨수말로 활동하면서 총 135두의 그레이드(Grade)급 경주 우승마를 배출하고 두 번이나 미국 리딩사이어에 올랐다.
한국경마 최다 연승(17승)을 기록한 명마 미스터파크를 배출한 ‘엑톤파크’도 ‘트리플나인(부경, 3세 수말, 최병부 마주)’을 더비에 출전시키며 주목받고 있다.
엑톤파크는 현역시절 G1경주와 G2경주에서 우승하는 등 명문혈통에 걸맞게 큰 경주에 강했다.
특히 3세 때 출전한 슈퍼 더비에서는 매니피를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에서 현역시절 통산 23전 6승, 2위 4회로 153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은퇴 뒤엔 씨수말로 변신해 2005년 미국 씨수말 순위 25위(2세마 부문)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 경마 무대에 진출한 엑톤파크는 미스터파크를 비롯해 2013년 그랑프리 우승마 ‘인디밴드’ 등을 배출하며 올해 교배료가 1,000만원까지 치솟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 2005년 이후부터 고가 씨수말을 도입해 경주마 생산에 노력을 기울였고, 경주마의 전력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메니피’를 필두로 마사회가 소유한 특정 소수의 씨수말에 의존해 교배가 이뤄진 점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민간 목장주도로 우수 씨수말과 씨암말이 대거 도입됨으로써 경주마 생산에 있어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호근 경마 애널리스트는 “민간목장 씨수말들의 자마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메니피’ 등 한국마사회 씨수말의 자마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는 국내 경마 혈통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올해 코리안더비는 향후 한국경마의 혈통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전했다.
가까운 일본은 ‘선데이사일런스’라는 씨수말로 인해 경마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과연 국내에서도 한국형 ‘선데이사일런스’가 탄생할 수 있을지 향후 국내 씨수말들의 활약에 더욱 기대가 모인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