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가 이번 비노계 공세의 ‘진짜 목적’을 풀어냈다고 판단한 것은 논란의 ‘당원들에게 보내는 글’이 공개되기 하루 전이다. 비노 성향 의원들이 주축이 된 민주당집권을위한모임(민집모) 오찬 모임에 참석한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일부 의원들이 ‘공천혁신특위 구성’을 주장하자 불같이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 진영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요구가 없어서 진짜 저들이 바라는 게 뭔지 몰랐는데, 문제는 공천권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에게 ‘계파 나눠먹기’로 보일 수 있는 이런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친노계는 즉각 대책회의를 갖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친노계 인사들은 이 자리에서 비노계에 대해 강한 비토를 쏟아냈다. 한 참석자는 “구시대 정치적 발상인 나눠먹기 요구를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나왔다”고 했다. 친노 측 김경협 의원이 페이스북에 비노계의 공천권 요구에 대한 비판 글을 올리는 등 친노계 전체적으로 격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문 대표 역시 이 같은 비노계 요구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굳혔다. 그리고 문 대표는 일부 참모들의 도움을 얻어 문제가 된 ‘발표문’을 직접 작성했다.
문 대표는 당초 2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발표문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었다. 사실상 비노계 요구를 ‘공천권 확보’로 확정짓는 것이어서 당 대표의 입으로 공식화될 경우 상당한 반발을 촉발할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공식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 지도부 측 설명은 문 대표가 발표 전 발표문을 지도부에 회람하도록 한 뒤 의견을 구했는데, 반대 의견이 많아 그대로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노계 쪽에서는 문 대표가 ‘꼼수’를 쓴 것으로 의심한다. 공식 발표에 대한 파장을 줄이면서, 발표문 내용 자체는 언론을 통해 흘려 논쟁의 프레임을 장악하려는 꾀를 쓴 것이라는 얘기다. 당의 한 관계자는 “친노 쪽이 일부러 그랬는지는 명확치 않지만, 비노 쪽에서는 대놓고 대응하기 난처한 상황이 된 건 맞는 것 같다”고 평했다.
문 대표가 일부러 이같은 치밀한 ‘작전’을 세운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당 지도부에서는 이날 문 대표가 자신의 발표문을 사전에 회람토록 한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평소 같았으면 문 대표가 이미 결정한 내용에 대해 의견을 묻거나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처음엔 단순히 ‘문 대표가 바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면 다양한 수를 계산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싸움 대부분은 공천권 싸움인데, 어느 쪽도 그걸 먼저 입에 담지 않으면서 시소게임을 하는 것”이라며 “이를 누가 먼저 언급하느냐는 것이 싸움의 관건인데 일단 몸이 단 친노 쪽에서 ‘리크(누설:leak)’ 형식으로 이 카드를 사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후 당연한 얘기지만 비노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비노계 좌장격인 김한길 전 대표는 보고를 받은 뒤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대표 측은 “왜곡된 프레임을 덮어 씌워 제대로 한 판 해보자는 것”이라며 발끈했다. 김 대표 측 참모는 “문 대표가 ‘친노 좌장’으로 버티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 혹은 지분 운운은 사실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원외의 당원들이나 원로들 사이에서는 ‘문 대표 퇴진 또는 신당 창당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친노 쪽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실제로 발표되지도 않았고 없었던 일로 하기로 한 것인데, 비노 측에서 반발한다는 얘기는 속을 간파당했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저들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 상황에서 더는 양보할 수 없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15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기득권에 안주해서는 우리 당에 희망도, 미래도 없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가 그동안 어정쩡한 태도로 비노 측에 끌려간 것에 대해 친노 쪽에서 강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라고 보고 있다. 비노 측 눈치를 본다고 해서 더 좋아질 것도 없다는 계산에서다. 문 대표가 어떤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비노 측이 온갖 구실을 갖다 대며 흔들기를 할 것이 분명한데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당 대표의 로드맵대로 가야 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노 측 관계자는 “일단 재보궐 선거에 대한 책임 논란은 단발성으로 그친 것 아닌가. 크게 봐야 한다. 그런데 계속 비노 측이 친노 패권주의라든지 확실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공세를 펴고 있다. 문 대표가 당의 수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대처해야 한다. 이러다 죽도 밥도 안 된다. 미진한 점이 있어야 일단 부딪히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앞으로 문 대표가 비노 측의 정치공세적인 흔들기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응에 대해 비노 측은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이다. 재보궐 선거 뒤 문 대표가 이렇다 할 수습안을 전혀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의 사사로운 말싸움이나 흔들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며 당 대표의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번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하면 되는데 몇 번 들어주는 척하다 결국 폭발해 ‘본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비노 측은 “정작 책임질 사람이 그것을 요구한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적반하장 식 대응에 기가 막힌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비노 측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힘 있는 사람이 대처를 잘 해야 한다. 비주류로서 재보궐 선거 책임론에 대해 당연히 한 마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문 대표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큰 숲을 못 보고 있다. 아직 정치적으로 미숙한 것 같다. 당의 내분을 수습하기는커녕 대책 없이 갈등만 키우고 있다. 정치를 자기 기분대로만 하느냐. 문 대표는 항상 자신의 말이 맞다는 독단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구석으로 계속 몰리자 결국 친노의 손을 잡는 쪽으로 교통정리를 해버렸다. ‘친노-비노’ 간 감정의 골도 더욱 깊어져버렸다. 당의 한 중립성향 의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된 이상 그동안 곪았던 것을 전부 터뜨려서 끝장토론을 해야 한다. 적당히 덮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전면전 아니라 핵전쟁이 나더라도 당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의 당 내홍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친노-비노 모두 기득권 지키기로만 비쳐진다. 이대로 가면 양쪽 다 망한다”라고 말했다.
안수현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