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 사이에서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소신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다가 변양호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지 말자는 말이다. 중·고등학교동창인 그와는 친구로 자주 만나는 사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는 검찰에 대한 한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책으로 썼다. 오죽하면 사업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했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모욕 정도다. 그 밑은 또 달랐다. 검찰청에서 조사받던 사람이 도망을 나와 나의 법률사무실로 피신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이 조사를 받던 사람이 수사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해 죽는 걸 보고 공포에 질려서 비상계단으로 검찰청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인격이 모자란 일부 검찰수사관의 작태다. 그들은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대상인물을 파멸시키는 작전을 하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검찰청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검찰에 대해 느낀 점을 솔직히 얘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검사장을 비롯한 고위직들과 수사관들이 강당을 채웠다.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보고 듣고 체험했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반응이 싸늘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거짓말 내지 과장을 한 강사가 되어 버렸다. 나는 고위 검찰간부에게 한번 허름한 차림으로 민원인이 되어 다른 검찰청에 가서 체험해 보라고 권했었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밑바닥 인심에 어긋나는 말은 옳은 말이라도 공격받는다. 또 권력에 미운털이 박힐 말을 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인권유린을 떠들었다가 “변호사를 계속할 생각이 있느냐”는 권력의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이 나라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권력 내에서 함량미달의 가라지들이 뽑혀 나가야 한다. 소수의 그들 때문에 검찰 전체가 욕을 먹는다. 조직 내부의 시각에서는 가라지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충성스럽게 목표를 달성하는 유능한 공무원쯤으로 인식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몰아대는 수사는 이미 수사가 아니다. 생사람을 잡기도 한다. 무시하거나 모멸감을 주면 사람들은 얼음같이 얼어붙고 뒤에서 칼을 간다. 그 칼이 자신을 죽이거나 한평생 한으로 남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이 녹고 자백하는 순간은 인간대접을 받을 때다. 치밀한 논리와 과학적 증거제시로 상대방이 고개를 숙이게 하는 사법절차가 되어야 한다.
검사 친구 중에는 정말 따뜻한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두고두고 인사하는 것도 옆에서 많이 봤다. ‘사법치사’라는 화두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검찰은 그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