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는 지난 2009년 7월 개설됐다. 현재 회원 수 60만이 넘는 초대형 여성 전용 커뮤니티다. 회원들은 서로를 여시 또는 언니라고 부른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그들의 매너다. 여시는 ‘차분한 20대들의 아름다운 공간’을 추구한다. 연애, 취미, 쇼핑 등 여성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공유해왔다. 2013년엔 포털 ‘다음’이 선정한 우수 카페에 선정될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다.
“신분증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맨 앞 2번째 자리와 7번째 자리를 제외하고 모두 가린다.”
여시는 가입조건부터 까다롭다. 정회원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신분증과 생년월일 그리고 성별을 운영진에게 인증받아야 한다. 20대 여성이 아니면 함부로 가입할 수 없게 하려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일각에선 “단순히 온라인 카페 가입을 위해 운영자가 회원 개개인의 구체적인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몇몇 누리꾼들은 “X떡 같은 등업(등급상향) 조건 보셨나요? 신분증 들고 셀카 찍어서 비공개로 운영자 보여주기라니…”라며 정회원 가입을 포기했다. 다음 카페 규정에 따르면 ‘카페지기(운영자)는 회원등급의 상향을 목적으로 회원에게 추가적인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여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셈이다.
다음 내 여성시대 카페 메인 페이지. SLR클럽 회원들에 대한 사과의 글이 올라와있다.
수년째 고집한 ‘폐쇄성’ 때문이었을까. 결국 사건이 터져버렸다. 지난 10일, 한 ‘SLR클럽’ 회원은 ‘스르륵 여시벙커사태 정리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SLR클럽은 회원수 160만의 국내 최대 카메라 커뮤니티. 문제의 글은 “새벽에 오유에 올라온 여시카페 내부 고발자에 의해서 스르륵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발견되었다”고 시작한다. 여기서 오유는 진보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를, 스르륵은 SLR클럽을 의미한다. SLR클럽 내의 여시의 비밀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을 전 여시 회원이 폭로한 것. 비밀 커뮤니티엔 43개의 게시판이 발견됐다. SLR 안에 있는 다른 소모임과는 달리 비공개였기 때문에 SLR 회원 누구도 그 존재를 몰랐다. 4만 7000여 여시 회원들이 SLR 회원들 ‘몰래’ 해당 게시판을 이용한 셈이다.
게다가 SLR 측은 여시 회원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 사진 커뮤니티인 SLR 게시판에 이미지 파일을 올리기 위해서는 ‘최대 2MB’의 용량 제한이 있었다. 반면 비밀 커뮤니티내의 모든 게시판엔 여시회원들은 최대 15MB의 이미지를 30개나 올릴 수 있었다. SLR 회원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 과거부터 SLR 회원들은 운영진에게 고화질 사진을 올릴 수 있도록 이미지 용량 제한을 늘려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SLR 회원은 “SLR 내에서 자전거 소모임을 운영할 때 여시 100분의 1 정도만 서포트 해 주었으면…”이라며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탑씨’의 존재가 발각된 것. 비밀 커뮤니티 내 성인 게시판인 탑씨는 탑 시크릿(Top Secret·일급비밀)의 준말이다. 탑씨는 주말이나 새벽 시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열리는 게릴라성 게시판이었다. 여시 운영진은 이곳에서도 신분증과 얼굴 사진을 요구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회원들을 모집했다. 회원들은 탑씨 게시판을 활용해 음란 동영상, 성인용품 사용 팁, 원나잇 후기, 동성 간의 성 경험담 등을 버젓이 공유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18일, 여시 운영자는 공지를 통해 “탑씨는 우리가 사용할 소모임 게시판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의 주목적이 아닌 걸로 보여야 한다”라며 “탑씨 유지를 위해 최대한 글 수가 많아야 한다”며 회원들을 독려했다.
SLR클럽 내 여성시대 비밀 게시판 ‘탑씨’ 게시물, 목록 캡처.
한 SLR 회원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XXX들한테는 있는 지원 없는 지원 다 해주고 불법적 형태까지 지원해 가면서 실제 당신들을 먹여 살리던 유저들은 팽개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지난 11일, 여시 운영자는 “탑씨 운영사실을 숨긴 점에 대해 SLR클럽 회원들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며 “소모임 회원 전부가 탑씨를 하기 위해 가입했다는 말은 많이 과장됐다. 소모임 내에는 일상적인 글이 대부분인 다른 게시판들이 많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SLR 회원들은 운영진을 성토하며 오유, 딴지일보 등 다른 커뮤니티로 대거 이탈했다. 덕분에 오유 게시판은 SLR 전 회원들의 고화질 사진으로 도배되고 있다. 회원들은 SLR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다른 SLR 회원은 경찰 민원을 통해 음란물 게시 범죄로 여시 회원들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SLR 사건에 대해 현재 경찰에 정식으로 고소건이 접수된 것은 없다. 다만 민원 건은 신고인과 확인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SLR 운영진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홈페이지 업그레이드를 위해 독립된 형태의 소모임을 통해 테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도 억울하고 황당하다. 운영진은 여시 회원들의 음란물 공유를 알지 못했고 지난 4월 게시판의 운영중단 및 재발방지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여시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은 ‘낙태정보공유’다. 현행법상 낙태는 불법. 그러나 간단한 검색만으로 여시 회원이 올린 낙태 정보 글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2년 게시물엔 낙태 경험, 낙태 병원 추천 등에 관한 정보가 올라와 있다. 한 여시 회원은 “언니들 나 낙태 같은 거 하기 정말 싫은데…. 아무 준비도 없이 아이 키울 자신이 없어”라며 “병원 찾기가 너무 힘들다. 가능한 병원 좀 알려줘”라는 글을 올렸다. “부모님 동의 없이 낙태 가능한 병원 좀 찾아줘”라며 도움을 구하는 회원도 있었다. 물론 최근엔 이 같은 글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낙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나 조언을 구하는 글은 지금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에 대해 여시 운영진은 “몇 년 전부터 이미 낙태 글은 엄연한 여성시대 활동 중지 사항이다. ‘건방진 회원’ 게시판을 통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며 “일부 회원들에 의해 낙태 글이 올라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 ‘여성시대 전체가 다 그렇다’고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고 반박했다.
최선재 기자 sun@l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