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선발 탈보트가 지난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3회말 무사 두산 1루주자를 견제하다 보크가 선언된 뒤 거칠게 항의하다 퇴장 당했다. 작은 사진은 문제의 보크 장면. 연합뉴스
# 보크란 무엇인가
실제로 보크는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규정이다.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보크도 있지만, 신체의 일부분만 보크의 경계선에 놓이는 미세한 동작들도 종종 발견된다. 정확한 집계가 나온 적은 없어도, 심판들은 평균적으로 20%가량의 보크를 놓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판정이 힘들다. 게다가 보크는 스트라이크-볼 판정과 마찬가지로 심판의 고유 권한이다. 심판 합의판정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 아무리 거세게 항의해도 한 번 선언된 보크는 번복되지 않는다.
KBO 야구규칙에는 무려 13가지 보크 항목이 지정돼 있다. 투수들이 지적 받는 보크 동작이 매번 비슷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복잡하고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조항들을 상세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투수판에 중심발(오른손 투수는 오른발, 왼손 투수는 왼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시작했다가 투구를 중지했을 때. 즉, 와인드업을 시작한 뒤 타자에게 투구하지 않으면 보크라는 뜻이다. △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1루에 송구하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 공을 던지지 않았을 때. 2루주자와 3루주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1루주자와 타자에게는 일단 송구 동작이 시작된 뒤 취소할 수 없다. △투수판을 딛고 있는 투수가 베이스에 송구하기 전에 발을 똑바로 그 베이스 쪽으로 내딛지 않았을 때. 외국인 투수들이 종종 1루 견제를 할 때 자유발(오른손 투수는 왼발, 왼손 투수는 오른발)을 홈과 1루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내딛어 지적을 받곤 했다. △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주자가 없는 베이스에 송구하거나 송구하는 시늉을 했을 때. 플레이에 필요한 상황(1루주자가 도루를 시도할 때 2루에 던지는 것 등)을 제외하면 모두 보크다. △투수가 반칙투구를 했을 때. 타자가 타석 안에서 충분한 자세를 갖추기 전에 투구하면 보크가 선언돼 주자가 진루하고, 주자가 없을 경우 보크가 성립하지 않기에 스트라이크가 들어와도 무조건 볼이다.
이뿐만 아니다. △투수가 타자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투구했을 때. △투수가 투수판을 밟지 않고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취했을 때. △투수가 불필요한 이유로 경기를 지연했을 때. △투수가 공을 소지하지 않은 채로 투수판을 밟거나 걸쳐 섰을 때, 또는 투수판에서 떨어져 투구에 관련된 동작을 했을 때. △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고의 여부와 관계없이 공을 떨어뜨렸을 때. △고의4구를 진행하고 있는 투수가 포수석 밖에 나가 있는 포수에게 투구했을 때. △투수가 세트포지션으로 투구하면서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투구했을 때도 모두 보크 항목으로 분류된다.
# 1루 견제 보크가 논란 낳는 이유
보크 판정 때 가장 논란이 많이 일어나는 사례는 단연 1루 견제 시 투수가 주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최근 화제가 된 한화 외국인투수 미치 탈보트의 보크가 바로 그랬다. 탈보트는 지난 5월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1루로 견제구를 던지다 보크를 지적받은 뒤 곧바로 글러브를 던지며 심판에게 항의를 표현하다 퇴장당했다. 당시 심판진은 “탈보트가 투수판을 밟고 서 있다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것처럼) 양쪽 무릎을 한 번 움찔한 뒤에 몸을 1루로 틀어 견제구를 던졌다”며 “명백하게 주자를 기만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탈보트는 이미 올 시즌 벌써 두 차례나 비슷한 동작으로 문제가 됐다. 한 번은 실제로 보크가 선언됐고, 한 번은 상대팀 감독의 항의를 받았다. 삼성에서 뛰던 2012년에도 세 번의 보크를 기록했던 그다. 한 야구인은 “한 번 보크를 지적받으면, 이후에는 투수가 고쳐야 한다. 심판들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 번 보크를 선언한 동작에 대해서는 다음 경기에서도 보크로 지적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보크의 여지가 있는 동작은 처음부터 신경 써서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1루 견제에 관련된 보크를 판정할 때, 기본이 되는 기준은 ‘투수판’이다. 투수판에서 발을 뺀 투수는 한 명의 야수로 간주된다. 견제구를 던지는 시늉을 하다 말아도 상관이 없고, 반드시 베이스 쪽으로 자유발을 딛고 공을 던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투수판을 밟는 순간부터 투수는 투구와 그 이외의 동작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분명히 투수판에서 발을 뺐는데도 보크가 선언될 때가 있다. 투수판에서 내려올 때는 반드시 뒤쪽, 즉 2루 방향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베테랑 심판위원은 “일부 오른손 투수들은 1루 견제 동작을 빠르게 하기 위해 3루 쪽으로 중심발을 빼면서 견제하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수판 뒤쪽으로 발을 뺀 게 아니기 때문에 투수판을 밟고 있는 것과 똑같이 간주돼 보크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투수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히 투수판에서 발을 뺐는데 왜 보크냐’고 항의하는 일이 가장 많다고 한다.
지난해 삼성과 NC의 경기에서 삼성 마틴이 보크를 범했다는 판정에 류중일 감독이 심판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보크도 하나의 기술이다?
노련한 베테랑 투수들은 가끔 심판의 눈을 피해 의도적으로 보크 동작을 하기도 한다. 주로 발 빠른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을 때 이뤄진다. 주자가 달리기 시작하면 심판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주자 쪽으로 쏠리는데, 그 틈을 이용해 재빨리 ‘걸리지 않는’ 보크를 범하는 것이다. 세트포지션에서 확실한 정지동작 없이 투구하는 ‘퀵 피치’가 가장 많이 시도되는 방법. 게다가 견제아웃을 잘 잡아내기로 이름난 투수들은 대부분 훌륭한 견제와 보크의 애매한 경계를 잘 넘나들기 때문에 심판들도 모든 동작을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심판들은 보크 판정을 위해 어느 부분을 가장 유심히 볼까. 투수별로 다르지만, 주요 포인트는 무릎, 손, 어깨, 글러브 위치 등이다. 예를 들어 왼손 투수가 1루 견제를 할 때 자유발이 벌어지는 각도는 일반적으로 45도에서 60도까지 허용되는데, 견제에 능한 좌완들은 홈플레이트 쪽으로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다가 곧바로 1루 쪽으로 공을 던지는 기술을 구사한다. 이 때문에 무릎 쪽의 세밀한 움직임을 유심히 봐야 보크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또 현역 시절 견제도 잘하고 보크도 많았던 한 왼손 투수는 빠른 주자가 나갔을 때 세트포지션 동작에 돌입하는 것처럼 글러브를 내리는 듯하다가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1루로 견제구를 던지는 일이 잦았다. 연차가 높지 않은 심판들은 어김없이 속아 넘어갔다.
심판들은 ‘국보’로 불렸던 해태 선동열이 견제 능력에서도 역대 최고였다고 손에 꼽는다. 선동열의 보크를 판단하는 포인트는 왼쪽 어깨였다. 심판위원장 출신의 한 야구인은 “일반적으로 오른손 투수가 왼쪽 어깨를 안쪽으로 집어넣으면 정상적으로 투구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인데, 선동열은 이 동작에서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1루로 공을 던졌다. 보크성인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워낙 동작이 빨라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보크에 얽힌 해프닝 박용근 2사 만루 풀카운트서 홈스틸한 까닭은… 지난 2011년 6월 8일. 한화와 LG가 맞붙은 잠실구장에서 보크와 연관된 희대의 오심이 나왔다. 보크를 보크라 부르지 못해 벌어진 불상사였다. 지난해 LG 박용근(원 안)의 ‘보크 유도 홈스틸’은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한화가 5-6으로 딱 한 점 뒤진 9회 초 2사 3루 이대수 타석. 풀카운트에서 한화 3루주자 정원석이 느닷없이 홈을 향해 스타트를 끊었다. 기습적인 홈스틸 시도였다. 마운드에 있던 LG 투수 임찬규는 중심발을 투수판에 대고 자유발을 뒤로 뺀 채 투구 자세에 돌입한 상황. 무조건 투구를 계속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허를 찔린 임찬규는 당황한 나머지 투구 동작을 멈추고 투수판에서 발을 뗐다. 그리고 포수 조인성에게 투구가 아닌 ‘송구’를 했다. 야구 규칙에는 ‘중심발을 투수판에 대고 있는 투수가 투구 동작을 하다 갑작스럽게 중지하면 보크가 선언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주심이 조인성에게 태그된 정원석을 향해 힘차게 아웃을 선언했다. 투수를 바라보면서 달려왔던 정원석은 그 누구보다 임찬규의 보크 장면을 확실하게 목격한 인물. 당연히 억울해 하며 펄쩍 뛰어 올랐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한대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달려와 격한 항의를 시작했다. 세이프라는 주장이 아니라, 보크였다는 항의였다. 만약 정상적으로 보크가 선언됐다면, 3루주자가 자동으로 홈을 밟으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었다. 경기의 흐름 역시 한화 쪽으로 돌아선 시점이었다. 그러나 ‘끝내기 오심’으로 모든 게 종료됐다. 보크는 주심을 비롯한 네 명의 심판 중 누구라도 선언할 수 있지만, 네 명 중 그 누구도 임찬규의 보크를 보지 못했다. 심판들도 화면을 확인한 뒤 “오심이 맞다. 한 감독에게도 인정했다. 하지만 번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뒤집을 기회를 놓친 한화는 결국 그해 LG와 공동 6위에 올랐다. LG 상대 전적에서 근소하게 뒤져 사실상의 7위로 받아들여졌다. 공교롭게도 LG는 3년 후인 지난해 4월 29일 마산 NC전에서 다시 비슷한 해프닝에 휘말렸다. 다만 상황이 정반대였다. 당시 심판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던 LG가 오히려 ‘보크 유도 홈스틸’을 시도한 것이다. LG가 2-3으로 한 점 뒤진 9회 초 2사 만루 최경철 타석. 풀카운트에서 NC 마무리투수 김진성이 공을 던졌고, 최경철이 그 공을 타격해 우익수 플라이로 경기가 끝났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과 동시에 LG 3루주자 박용근이 갑자기 홈으로 파고들었다. 박용근의 발에 걸려 최경철이 넘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타자와 포수가 모두 타구를 눈으로 쫓느라 주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자가 타격을 할 때 홈으로 슬라이딩하는 주자라니. 다음날 이 장면의 영상이 외신에서까지 화제였다. 알고 보니 이 홈스틸은 상대 투수의 보크를 유도하기 위한 시도였다. 한 번 허를 찔렸던 LG가 그 아이디어를 역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박용근은 “타자의 볼카운트가 0B(볼)-2S(스트라이크)로 불리해지면서 한 점을 꼭 뽑기 위해 보크를 유도하기로 했다. 캠프 때부터 준비했던 플레이였다”며 “풀카운트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시야에 뛰어 들어가는 주자가 보이면, 보크를 범하거나 적어도 볼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