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방송사와 연예기획사의 세력 대결은 지난 몇 년간 계속되어왔다. 그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른 주체는 단연 방송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타파워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연예기획사 역시 막강한 힘을 키우게 됐고 결국엔 피할 수 없는 힘겨루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방송사의 절대 권력에 맞서기 시작한 선두주자는 단연 SM엔터테인먼트다. HOT와 SES, 신화라는 확실한 스타를 앞세운 SM엔터테인먼트는 여차하면 ‘출연정지’라는 보검을 휘두르는 방송사에 ‘출연 보이콧’이라는 신무기로 맞섰다.
지난 1999년 11월 MBC에서는 <로그인 HOT>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해 눈길을 끌었다. 특정 그룹을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주요 게스트로 SES를 출연시켜 특정 기획사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안티 팬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문제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있다. 당시 HOT는 KBS, SBS와 모두 껄끄러운 관계였다. 우선 KBS는 HOT와 SES의 염색한 머리를 문제 삼아 출연을 정지시킨 상황이었고 SBS 역시 SES가 다른 방송국에서 컴백무대를 가진 직후 출연정지 조치를 내린 상황이었다. 이에 SM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 전원을 이 두 방송사에 출연시키지 않는 강경 방침을 세우게 된다. 결국 MBC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를 단독으로 세울 수 있게 됐고 이것이 <로그인 HOT>라는 프로그램으로 긴급편성된 것.
SM엔터테인먼트와 SBS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1년 3월 SES가 3주 연속 1위 등극에 실패하자 SM엔터테인먼트측은 ‘SES가 다른 방송국을 통해 컴백무대를 가진 데 대한 보복 아니냐’는 공정성 시비를 제기하며 출연 보이콧에 들어갔다. 심지어 신화의 이민우는 MC를 맡고 있는 <뮤직엔터>에도 출연하지 않을 정도의 전면전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1위 후보에 오른 강타가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 출연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그 이유 역시 신화의 3주 연속 1위 등극 실패에 대한 공정성 시비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의 방송국과 기획사의 세력대결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금세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2004 SBS 가요대전’을 두고 ‘SM엔터테인먼트의 독무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가까워진 SBS와 SM엔터테인먼트의 관계가 이를 증명해 준다.
SM엔터테인먼트가 방송국과의 오랜 기간 전쟁을 벌인 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곳이 바로 YG엔터테인먼트다. 지난 2001년 2월 KBS가 지누션의 3집 앨범 수록곡 대부분에 대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리자 지누션은 ‘KBS 출연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심의를 둘러싼 KBS와 YG엔터테인먼트의 감정싸움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고 결국 지난 2003년에는 YG엔터테인먼트와 M보트 소속 가수들이 7개월 동안이나 KBS에 출연하지 않는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2003 KBS 가요대상’ 역시 ‘2004 SBS 가요대전’과 마찬가지로 YG엔터테인먼트와 M보트 소속 가수들이 단 한명도 참가하지 않았다.
▲ 지난 12월27일 열린 ‘2004 SBS 가요대전’. 굿엔터테인먼트의 신화가 대상을 차지했다. | ||
이번 파동이 눈길을 끄는 것은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직접 이를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방송사와 기획사 간의 대결이 암암리에 벌어졌던 데 반해 이번에는 당사자가 이를 만천하에 공개한 것. 가요계는 이를 사상 유래가 없는 큰 사건으로 보고 있다. 양 대표는 출연정지에 대한 억울함과 동시에 “더 이상 이런 ‘학교(SBS를 빗댄 표현)’에는 나가고 싶지 않다”는 표현으로 출연 보이콧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다른 기획사들은 ‘힘 있는 기획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획사 대표는 “중소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가수들은 조금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면서 “사실 새 앨범을 발표하는 시기가 되면 고민이 많아진다. 어느 방송국에서건 컴백 무대는 가져야 하는데 그걸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에 따른 페널티(보복성을 띤 일정 기간 출연금지)는 당연한 관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방송국 담당 PD의 입장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 인기 가수의 컴백무대를 섭외하는 것이 PD의 능력을 재는 잣대처럼 여겨지는 요즘 상황에서 이들 역시 기획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과정에서 밀린 방송국 PD들이 해당 가수를 2~3주가량 출연시키지 않는 것으로 섭섭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일선 PD들은 “무조건 방송국이 강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인기 가수의 출연 섭외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양 대표가 주장했듯 오락프로그램 출연 여부가 페널티 적용에 가미되는 경우에 있다. 가창력과 입담을 겸비한 성시경이나 조성모는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두 가수 모두 신인 시절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거절했다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외면당했던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듀크처럼 실력있는 가수가 노래보다 재담으로 더 인기를 얻고 있고, 신정환처럼 가수와 개그맨 중간 개념의 연예인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세력다툼의 결론은 무엇일까. 양측은 모두 ‘절대반지’를 갖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양 대표는 “예전처럼 기획사가 방송국에 뇌물을 갖다 바치는 시기는 지났다”면서 “힘의 원리에 의해 어느 누가 절대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