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티븐 바넷 AIG손해보험 사장. (제공=AIG손해보험)
AIG손보의 여성임원으로 일한 A 씨는 지난 2월 스티븐 바넷 AIG손보 사장이 여성 임직원들에게 성희롱 및 인격 모욕을 했다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바넷 사장이 A 씨와 여직원 B 씨 등 여성 임직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을 자주했다고 밝혔다.
인권위에 정식으로 진정이 들어간 사건은 두 가지다. 지난 2014년 2월 7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AIG 한국진출 60년 기념식 행사’에서 바넷 사장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20대 여직원 B 씨에게 “You look like a vamp(너는 요부처럼 생겼다)”고 말했다고 한다. ‘Vamp’는 ‘요부’라는 뜻으로, 남자에게 기생해 사는 꽃뱀의 의미로 쓰인다.
진정서에는 바넷 사장의 이 발언에 “당사자 B 씨뿐만 아니라 옆에서 발언을 지켜본 A 씨까지 성적 모멸감과 굴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B 씨에 대한 성희롱은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에도 계속됐다. B 씨가 바넷 사장실 앞 복도를 지나가는데 바넷 사장이 사장실에서 B 씨의 이름을 부르며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사장실에 들어간 B 씨는 “사장실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텐데 어떻게 누구인지 알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바넷 사장은 “I recognize you by your legs(너의 다리를 보고 알아봤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에 수치심을 느낀 B 씨는 바로 A 씨에게 찾아가 “사장에게 연이어 성희롱 발언을 들으니 회사를 더 이상 다니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진정이 들어간 2개의 사건 말고도 진정서에는 바넷 사장의 여러 가지 성희롱성 발언이 등장했다.
한번은 A 씨가 바넷 사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바넷 사장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A 씨의 의견을 들은 바넷 사장은 “I‘ll soften you(내가 너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겠다)”라고 발언했다. 이 말은 영미권에서 주로 성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말로, 성적 함의가 들어있다. 사장과 임원 사이에 나눌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지난 2011년 10월에는 직원들과 회식자리에서 바넷 사장이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다 들어와 A 씨가 앉은 자리를 지나가면서, A 씨의 허리를 슬쩍 만졌다고 한다. 이에 A 씨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 바넷 사장은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Oh, Sorry(미안)”라고 말했다.
또한 A 씨는 “지난 2013년 4월 골프행사를 마치고 직원 등 일행들과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에 대해 의논하다가 바넷 사장이 여직원들도 있는 자리에서 ‘Who would sit on my lap to Seoul(누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서울까지 갈래)’라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발언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여성임원 A 씨와 여직원 B 씨는 지난해 회사를 퇴직했다.
특히 A 씨는 “회사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면서 바넷 사장의 이러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호세 헤르난데스 AIG 아태지역 총괄 사장 등 본사에 알렸으나, 회사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A 씨는 진정서에 “바넷 사장은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으로 가득했고, 특히 여성들에 대해서는 쉽게 다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다”며 바넷 사장의 성희롱 발언을 지적했다.
국내 진출한 외국계 손보사 가운데 인권위로부터 성희롱 등의 혐의로 CEO가 조사를 받는 것은 AIG손보가 사실상 최초다. 스티븐 바넷 사장은 지난 2011년 5월 한국 AIG손보 사장으로 부임했다.
바넷 사장의 인권위 조사에 대해 AIG손보 관계자는 “확인 중에 있다”고만 밝혔다.
한편 A 씨는 지난 2월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직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직 사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