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황교안 법무무 장관을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황교안 총리의 등장은 ‘부패척결→사정정국→물갈이를 통한 정치쇄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로 친박 핵심들이 위기로 몰렸다. 그 탈출구는 바로 여야 없는, 예외를 두지 않는 사정인 것이다. 황 총리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민정수석을 아우르는 사정 전권을 쥐고 여야의 굵직한 인사에게 칼을 겨눌 때, 그리고 어느 한 명이라도 놀랄 만한 인사를 잡아들일 때, 국민적 지지가 솟구치지 말란 법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에 ‘빚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또 가능하다고 본다.”
정가를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서부터 최근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유용 논란까지 이슈의 흐름이 자연스레 정가를 향하고 있다. 앞서의 인사는 “돌격대장 황교안의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 누구를 쳐낼지 흥미진진하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황 후보가 총리에 오르면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민정수석을 아우르는 사정 전권을 쥐고 정치권 물갈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위는 새누리당 의원총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황교안 후보자의 총리 지명 소식을 접한 고위 공직자 출신의 새누리당 한 의원은 “초선이나 비례는 예외지만 재선 이상만 돼도 크고 작은 기업들이 뒤를 봐준다. 성완종 사건도 마찬가지 아닌가. 황 후보자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기업에서부터 시작하겠지만 결국 정치권을 향하게 돼 있다”라며 “여기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예외일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거물급이 걸려들 가능성이 더 높다. 이게 박 대통령이 장관을 총리로 업그레이드 시키면서까지 해내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황 후보자가 총선 승리를 비롯해 여권의 물갈이를 불러올 수 있다. 부패, 비리, 구악의 정치인을 솎아내면서 여권 내 물갈이를 주도할 경우 정치를 불신하는 국민의 지지를 다시 이끌어낼 수 있다”며 “현재 여권 주류 진영이 완전히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박 대통령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신 친박 인사’로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황 후보자가 여권의 차기 주자까지는 아니겠지만 여권의 권력구도를 격변시킬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쥐게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막고 존재감을 이어가려면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형식으로 오히려 여의도 공천개혁에 나서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 후보자를 ‘긴급 대타형’으로 보는 쪽이 더 컸다. 한 정치평론가의 분석은 이랬다.
“우향 경직화된 황 후보자가 소통형 화합형이 아닌 것은 국민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박 대통령과 호흡이 맞는, 역할 분담이 가능한 사람을 뽑았을 뿐이다. 황 장관과 ‘경제’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임기 반환점에서 새 총리가 국정을 파악하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북한 통일 외교는 박 대통령 본인이, 그리고 공공부문 개혁은 황 후보자를 통해 이루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중도 사퇴한 안대희 전 대법관 예에서 보듯, 검찰 출신이 대권으로 직행하는 그림은 그리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미래를 위해 키우는 ‘대권형’이 아니라 성완종 게이트 등 당장 시급한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일종의 ‘원 포인트 릴리프’(한 타자만 상대하는 구원투수)라는 해석이다.
무엇보다 이완구 전 총리가 사퇴하고도 25일, 식물총리가 된 지 40여 일 만에 황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 황 후보자가 없었는데 인물난에 이렇게 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해석이 더 무게감이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한국적 대통령제 하에서 국무총리는 정치적 상징성만 있는 존재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가진 기대치에서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역할, 그러니까 조순, 고건, 김황식 등의 예에서 보듯 총리일 뿐이지 ‘후계자’로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야당과의 불통이 불 보듯 뻔한데 여당 지도부로선 황 후보자 카드가 정말 마뜩찮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여당 지도부 내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 정책위 소속 한 의원은 “진짜 일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오히려 우리의 적은 BH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28일, 5월 임시국회에서 마지막 남은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합의했는데 ‘정말 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들 했던 분이 총리에 지명됐다”며 “야당이 기다렸다는 듯 청와대의 총리 지명 발표 직후 반대 브피링을 했다. 야당이 두 번이나 해임건의안을 냈던 장관을 국무총리로 앉히다니…이건 협상을 하지 말라는 뜻과 같지 않느냐”며 흥분조로 토로했다. 실제 오전 10시 발표 예정이 10시 15분으로 밀린 그 시각,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정론관 앞에서 지명 반대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안통치 선언’ ‘대통령의 불통 정치’ ‘회전문 인사’ ‘청문회에서 철저 검증’ 등 악에 받친 표현이 등장했다.
여권 한 고위 당직자는 “허탈하다”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왕 늦어진 인사를 28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을 처리한 뒤 지명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했다. 이 당직자는 “어떻게든 야당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여 결과물을 내놓으려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솔직히 황 후보자는 ‘청문회 통과용’이랄 수도 없는 인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비선실세 파동, 통합진보당 해산,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등 굵직한 사건들과 연관돼 있는데 이럴 땐 공무원연금 개혁 정국이 아니라 청문회 정국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권에서 황 후보자 카드를 환영하는 인사는 단 둘 뿐이란 말도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다. 법무부 장관의 국무총리 승격은 곧 이 두 사람의 여의도 귀환을 지시한 것과 같다는 논리다. 실제 최 부총리는 초이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인 지금, 황 부총리는 교육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국회로 돌아오길 강력하게 원했다는 전언이다. 황 부총리는 특히 최근 매주 의원회관에 들러 지역구 관리를 측근들에게 당부했다는 말이 떠돈다. 이래저래 황교안 카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의도에서는 “왜 우리는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국민들이 진정으로 환영할 만한 인사 한번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걸까”라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던 5월 21일이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