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전 공동대표(왼쪽)와 박지원 의원 간에 ‘비노 수장’ 자리를 두고 권력암투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2013년 1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우리기업 상품전시 및 판매전’ 개막식에서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새정치연합 비노계의 불편한 동거는 주승용 최고위원의 사퇴 직후 감지됐다. 동교동계는 발 빠른 타이밍으로 비노계 최전선에 섰다. 박지원 의원은 주 최고위원 사퇴 당일인 8일 4·29 재·보궐선거 전패와 관련, “문재인 대표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면 안 된다”며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국민과 당원 앞에 그 의사를 밝히는 게 건강한 당으로 다시 일어서는 일”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같은 날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상임고문과 회동하고 ‘문재인 책임론’을 제기하며 친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권 고문은 이 자리에서 “정치지도자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권 고문의 발언은 ‘문재인 사퇴론’이 들불처럼 번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노계 한 관계자는 동교동계의 ‘문재인 책임론’과 관련해 “선거에서 패배한 당 대표가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데 대한 반감”이라고 잘라 말했다. 동교동계를 필두로 ‘노무현(참여정부) 대 김대중(국민의 정부)’, ‘영남(참여정부) 대 호남(국민의 정부)’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2012년 8월 20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반면 김한길 전 대표의 침묵은 길어졌다. 김 전 대표가 수세 국면을 공세로 전환한 것은 ‘권노갑·박지원’ 단독회동으로부터 3일 뒤인 11일. 김 전 대표는 문 대표를 향해 “오로지 친노의 좌장으로 버티면서 끝까지 가볼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야권을 대표하는 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결단을 할 것인 정해야 한다”며 “지금은 문 대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대표는 “선거참패 이후 사퇴만이 책임지는 모습은 아니겠지만,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선출직의 의무만 강조하는 건 보기에 참 민망한 일”이라고 말한 뒤 ‘공갈 발언’을 한 정청래 최고위원을 거론하며 “사과만 있으면 상황이 수습될 것처럼 말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일”이라고 문 대표의 ‘상황 인식’을 강하게 질타했다. 전 지도부인 김 전 대표가 침묵을 깨자 당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당 내부에선 “이러다가 분당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비노계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침묵을 깬 것과 관련해 “친노계가 동교동계를 비노의 대표격으로 대우한 데 대한 반발”이라고 귀띔했다. 문 대표는 주 최고위원 사퇴 전날 ‘박지원·김한길’ 등 비노계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표가 양측을 달리 대하면서 김 전 대표 측이 분개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도 문 대표와의 만찬 회동을 거론하며 “문 대표가 ‘앞으로 이렇게 변하겠다’면서 제게 ‘이러한 부분을 도와 달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그런 말씀은 없이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의견을 구했을 뿐”이라고 홀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친노계가 카운터파트너(대화상대)로 동교동계를 선택하면서 빚어진 필연적 결과라는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다. 비노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계파 수를 보더라도 박지원 의원(7명)보다는 김한길 전 대표(12명)가 더 많다”며 “특히 새정치연합 출범 공신이자, 전직 지도부인 김 전 대표 측을 홀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문 대표가 최종 발표를 보류한 ‘당원에게 드리는 글’ 유출 때도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문 대표의 성명서에는 ‘호남=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의원은 “작성은 누가 했고 유출은 누가 했느냐 이런 걸 생각할 때 좀 대표로서 안이하게 보시고 좀 심한 말씀을 하신 게 아닌가”라고 점잖게 훈수를 둔 반면, 김 전 대표는 아예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당 복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측 사이에 앙금의 골이 깊어진 것은 지난해 총·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에 들어온 김 전 대표는 ‘대선 전략가’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공천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역할은 없었다. 총선 패배 직후 ‘한명숙 체제’가 무너지자 곧바로 ‘이해찬 체제’가 들어섰다. 이 해찬 전 대표와 박 의원은 대선후보 당내 경선을 앞두고 ‘이·박’ 연대를 결성했다.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문재인 대선후보’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담합이 ‘이·박’ 연대의 핵심이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 문 대표가 ‘대세론’을 앞세워 손학규·정세균·김두관 후보 등을 격침하자 물밑에서 활동하던 친노 비선조직이 당의 중심축으로 돌변했다.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의원은 ‘이·박’ 연대에 대한 비판 탓에 초반에는 숨죽이다가 대선 막판 선거운동에 나섰다. 문 대표의 비선조직인 이른바 ‘삼철’(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전해철 의원·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쯤이다. 하지만 ‘김한길 역할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당분간 비노계 중심축을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대결국면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대표가 사퇴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이들의 권력암투가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실제 박 의원과 김 전 대표의 ‘미묘한 타이밍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문 대표가 기득권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정청래 징계·초계파 혁신기구 구성’ 등 고강도 개혁안을 앞세워 역공을 펼치자 이들은 다시 수세국면으로 돌입했다.
문 대표가 제안한 혁신기구에 참여한다면 친노계의 덫에 빠지고, 이를 거부하자니 ‘당 분열세력’이라는 오명을 떠안을 수밖에 없어서다. 비노계가 일제히 눈치싸움에 들어간 사이, 김 전 대표가 치고 나갔다. 김 전 대표는 앞서 침묵을 깬 지 일주일 만인 18일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주자는 있어 본 적도 없고, 있을 수 없고, 있어도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20일에는 대표직 퇴임 후 처음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친노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패권정치를 청산하라”고 문 대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한때 공동지도부를 구성한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문 대표의 혁신위원장 제안을 거부하자, 김 전 대표가 특유의 치고 나가는 타이밍 정치로 ‘김한길·안철수’ 연대를 재확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비노계 대표주자 자리를 선점하려는 이들이 전략적 숨 고르기와 타이밍 정치를 반복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라며 당분간 ‘박지원·김한길’의 벼랑 끝 치킨게임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