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태국 사법당국으로부터 한국에 인도된 살인·납치강도 피의자 최세용이 반바지와 트레이닝복, 슬리퍼 차림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이다. 최 씨는 자신을 기다린 취재진을 향해 히죽거리며 웃는 표정을 지어 모두를 경악케 했다. 연합뉴스
최세용 일당이 19명의 한국인을 납치해 돈을 뜯으며 사용한 수법이다. 그가 선택한 희생양은 주로 혼자 필리핀을 찾은 관광객이었다. 피해 금액만 6억 원이 넘었다. 필리핀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게 하고 장면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시내 외곽의 주택가로 끌려간 피해자들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협박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나마 운이 좋으면 풀려났다.
끝내 살해당한 이들도 있다. 2008년에는 장 아무개 씨(32)로부터 2000만 원을 빼앗고 살해했다. 2011년 2월 전직 공무원 김 아무개 씨(54)와 같은 해 9월 홍 아무개 씨(33) 역시 이들의 손에 희생됐다. 2011년 9월 여행 중 납치된 홍 씨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필리핀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는데 미성년자였다. 부모들이 찾아와 합의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며 여러 차례에 걸쳐 1000만 원을 송금을 받았고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최세용 일당의 필리핀 은신처에서 발견된 유골. 사진제공=부산경찰청
홍 씨의 아버지는 사라진 아들을 찾다가 “생사를 모르는 아들과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을 꼭 찾아 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홍 씨와 김 씨의 사체가 매장된 위치를 파악한 경찰은 법의학자 등 전문가 7명과 함께 발굴 조사팀을 꾸렸다. 그 결과 실종 3년 만인 지난해 11월 필리핀 마닐라 외곽 따이따이리잘 지역의 한 주택 땅 밑에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됐다.
공군소령 출신 윤 아무개 씨(38)와 송 아무개 씨(37)의 실종사건 역시 이들 일당의 소행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윤 씨와 송 씨는 각각 2010년 8월과 2012년 9월 필리핀 여행 중에 3400만 원, 8000만 원을 갈취당한 뒤 실종됐다. 두 사람이 실종된 시점은 한창 최세용 일당이 활동하던 시점이었고, 다른 피해자들과 범행 방식이 같다.
최세용 일당의 악마 같은 살인행각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7년 7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세용, 김종석, 김성곤 등 공범 두 명과 함께 경기 안양시 동안구의 한 오피스텔에 위치한 사설 환전소에 침입했다. 이들 일당은 일하던 여직원을 살해하고, 금고에 들어있던 현금 1억 8500만 원을 빼내 달아났다. 여직원은 흉기로 목을 찔린 상태로 환전소 사장에게 발견됐다. 훔친 돈을 들고 필리핀으로 달아난 이들은 현지인을 포함한 12명의 한국인 납치 조직을 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에 앞서 2007년 일본에서 이들 일당은 5억 원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공범 안 아무개 씨(38)가 1억 원을 빼돌렸다. 이를 알아차린 공범들은 안 씨를 안심시킨 뒤 태국으로 유인해 권총으로 살해한 사실이 이번에 추가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 일당의 거침없는 범행은 2011년 최세용이 태국에서 붙잡힐 때까지 계속됐다. 2011년 가을 최세용이 태국으로 건너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은 태국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최세용 아내의 행적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나기를 기다렸고, 치앙라이의 한 커피숍에서 아내와 마주한 최세용을 현장에서 붙잡았다.
‘두목’ 최세용이 붙잡히자 일당은 차례로 검거됐다. 행동대장 김종석은 2012년 필리핀에서 잡혔다. 그는 유치장에 있던 중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 범행 관련 자백은 적혀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범 김성곤 역시 2011년 필리핀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가 한 차례 탈옥했고, 2012년 5월 다시 붙잡혀 수감 중 지난 13일 한국으로 인도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경찰관 행세를 하며 수사망을 피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세용, 김성곤은 주말에 필리핀 현지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음식을 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하며 악마의 얼굴을 감췄다. 가짜 경찰 신분증을 만들어 경찰 행세를 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비밀경찰이라고 속여 현지인들의 의심을 피했다. 또한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등지에서 만든 가짜 여권을 이용해 철저하게 신분을 세탁했다. 또 범행 대상을 한국인 관광객으로만 한정했기에 오랫동안 범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경찰은 이번에 밝혀진 것 외에도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해마다 적게는 3건, 많게는 8건 등 총 19건의 범행을 저질렀지만, 2009년에만 유독 밝혀진 건이 없다. 경찰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필리핀에서 실종된 한국인을 전수 조사했지만, 이들과 연관된 사건은 추가로 발견하지 못했다. 최세용 일당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