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A/S용 부품보관용기 및 파레트의 제조 및 판매를 주력으로 하던 삼우는 1995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신성재 부회장이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결혼한 뒤 1998년 현대강관(현 현대하이스코)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대차와의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해 7월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공장을 이전해 상용 자동차용 휠 등을 제조·판매하기 시작했으며, 2005년 충남 당진, 2011년 울산광역시, 2013년 충남 당진에 공장을 잇따라 건설하고 현대제철과 대리점(SSC) 계약을 체결해 자동차용 강판을 절단 또는 가공하거나 상품으로 제작해 현대·기아자동차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공급했다. 2008년 5월 현대차그룹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편입된 뒤 공개된 현대하이스코 및 현대제철의 주요 매출처 명단에는 항상 삼우가 상위권에 위치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신성재 부회장과 정윤이 전무가 이혼을 결정하고, 이어 현대하이스코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나면서 현대차그룹과 삼우의 밀월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우 매출은 현대차 그룹과의 거래를 바탕으로 2010년 3769억 원에서 2013년 9063억 원으로 불과 3년간 140% 급증했다. 하지만 신 부회장이 물러난 지난해 삼우가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와 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은 6663억 원으로 전년보다 16.1%(1277억원) 감소했다. 삼우의 전체 매출에서 현대차그룹이 차지하는 비중도 79.4%를 기록, 2013년보다 8.2%포인트 떨어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최대 거래처였던 현대차를 통한 매출이 금액 기준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지난해 삼우의 현대차 매출은 4411억 원으로 전년보다 1484억 원(25.2%)이나 감소했다.
올 1분기에 현대제철의 주요 매출처 명단에서 빠진 만큼, 삼우와 현대차그룹 계열사와의 거래 규모는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그룹과 인연을 맺은 뒤 20년 만에 모든 것은 끝나버렸고, 이제는 정말 남남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대하이스코 냉연사업 이관이 결정적 요인
신 부회장의 결별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발생하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그가 왜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2005년 신성재 삼우 부회장의 현대하이스코 사장 시절 모습으로, 신 사장(왼쪽 다섯 번째)이 김원갑 부회장(왼쪽 네 번째) 및 고객사 대표 등 관계자들과 함께 설비의 가동을 시작하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하이스코
2013년 4월 현대하이스코는 충남 당진에 냉연 2공장을 완공했다. 현대제철의 당진 3고로 화입을 앞두고 늘어날 쇳물 생산을 소화하기 위해, 또한 자동차 강판 사업 확대를 위해 신 부회장과 현대하이스코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공장에 칠한 페인트도 마르기 전에, 현대차 그룹은 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을 현대제철로 이관하는 것을 결정했다. 신 부회장은 물론 현대하이스코를 이끌어왔던 김원갑 부회장도 사전에 인지를 못했다.
#김원갑 부회장의 한 마디 “다 빼앗겼어”
그해 6월 9일, 철강협회가 주최한 철의 날 기념식에 신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참석한 김원갑 부회장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다 빼앗겼어”라는 말을 반복하며, 회원사 원로들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함께하는 기념촬영에도 응하지 않았다. 역시 이날 참석한 우유철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2014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이 현대하이스코 임원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인사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현대차그룹은 되도록 신 부회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와 관련된 내용은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곧바로 신 부회장과 정 전무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터졌다. 더군다나 이혼 사유가 신 부회장의 외도 때문이었다는 것까지 알려지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리고 이혼 절차를 밟은 뒤 5개월 만에, 신 부회장은 전격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사퇴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고, 김원갑 부회장이 끝까지 말렸지만 신 부회장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현대하이스코 사정에 능통한 철강업계 인사는 “냉연사업 이관만으로 신 부회장이 낙담한 건 아니다. 현대하이스코는 현대제철과 합병이 기정사실화되어 있었고, 시기만 남겨놓고 있었다. 현대하이스코는 범 현대그룹이 창업주 때 철강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설립한 회사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그런 회사를 키워냈다는 자부심, 회사를 계속 이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신 부회장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야망이 깨어진 것이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실망이 크다보니, 신 부회장이 잠시 한눈을 판 것 같았다. 외도는 분명 잘못이지만 신 부회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이 떠나자 현대하이스코 그룹의 정리는 빠르게 진행됐다. 이어진 2014년 연말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현재의 충남 당진 현대제철 철강단지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신 부회장의 멘토로 이끌어왔던 김원갑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종무식을 진행하는 동안 갑자기 그룹발로 인사가 났고, 이후 그룹 임원이 현대하이스코를 찾아와 김원갑 부회장의 사퇴를 알려주는, 사실상 경질에 해당하는 갑작스런 인사였다. 2015년 4월 18일에는 드디어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이 결정됐다. 통합 ‘현대제철’은 오는 7월 1일 출범에 맞춰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재벌가 사위는 ‘남데렐라’
지난해 9월 5일 대표이사 사장에서 사퇴한 신 부회장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 즉 현대하이스코 주식 2만 8438주, 현대제철 주식 3만 9000주, 현대자동차 주식 7000주, 기아차 주식 7491주, 현대건설 주식 830주를 전량 처분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전했다. 임원 사임으로 주식 보유를 금감원에 보고해야 하는 특수관계인에서 빠졌을 뿐 주식을 처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제철 관계자들도 신 부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신 부회장은 오너가의 사위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재벌사회에서 오너 일가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며느리 못지않게 세간의 관심을 받는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좋은 시선만 있는 게 아니다. 신데렐라에 비교해 ‘남데렐라’라는 부정적인 색채가 강한 별칭을 얻는 이들은 사방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이겨낼 수 있는 ‘담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능력’을 보여야 한다. 보여줘야 할 능력의 기준은 처갓집 장남을 비롯한 형제들보다 더 높다. 처갓집 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할 때에는 장인·장모가 가장 신임하는 전문경영인에 못지않은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직원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백’을 얻은 행운아라는 색채가 강하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결국 능력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능력을 보여줘도 오너, 즉 장인어른에게서 받는 평가는 아무리 후하게 받아봐야 ‘본전’이다.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기대는 애초부터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매형, 매제가 있다면 그룹 후계구도에 대한 욕심은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잘해온 분야를 이끌어 가는 몫만 챙기면 다행이다. 반면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목숨은 부지하겠지만 사실상 집안에서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눈 감고, 입 닫고, 귀 막고’ 절대 조용히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오너가 사위라는 것이다.
사위라는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CEO로서 경영인으로서 정 회장도 신 부회장의 사퇴에 많은 아쉬움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럭비공 인사’ 용인술로 유명한 정 회장이 마지막까지 이혼과 사퇴를 막으려고 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신 부회장을 아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들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를 강화시켜야 하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정 부회장의 위상에 누를 끼칠 수 있는 어떤 것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넥슨지티 홈페이지 화면 캡처.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