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1월 28일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태어난 애나 니콜 스미스의 출생명은 ‘비키 린 호건’이었다. 부모는 그녀가 두 살 때 이혼했고,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며 계부의 성을 따라 이름을 ‘니키 하트’로 바꾸었다. 하이스쿨에 들어갔지만 2학년에 진급하지 못한 그녀는 일찍이 학업을 접었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치킨 집에서 일할 때 주방 보조인 빌리 웨인 스미스라는 남자를 만나 1985년에 결혼을 했다. 그녀는 ‘비키 스미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17세, 남자는 16세였다. 1986년에 아들 대니얼이 태어났지만 1987년에 별거를 시작한다. 그들의 결혼 관계는 1993년에 법적으로 이혼이 완료된다.
이 파격적인 결혼에 수많은 쑥덕거림이 생겨났다. 스미스가 유산을 노리고, 곧 세상을 떠날 재벌과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마셜의 가족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5년 8월 4일, 마셜은 90세로 세상을 떠난다. 결혼한 지 13개월 만에 그녀는 미망인이 되었다. 이때부터 전쟁은 시작되었다. 죽은 마셜의 아들인 에버릿 피어스 마셜은 1939년생으로 당시 56세. 법적으로는 애나 니콜 스미스의 아들이지만 그녀보다 28세 많은, 아버지뻘의 나이였다. 제임스 하워드 마셜의 유언장엔 유산을 아들이 모두 상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아들도 단 한 푼도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이에 니콜 스미스는 남편이 살아생전에 자신에게 유산의 일부를 상속한다는 걸 약속했다며 텍사스의 유언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996년엔 캘리포니아의 파산 법정에 파산 신청을 했다. 당시 그녀는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였는데 법원은 85만 달러의 배상 명령을 내렸던 것. 스미스는 돈이 없다며 두 손을 든 것이다.
1994년 애나 니콜 스미스가 27세 때 89세 석유 재벌인 제임스 하워드 마셜과 재혼해 숱한 화제와 루머를 만들어냈다.
이후 전개되는 법적 논쟁은 미국 법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판례가 되었다. 과연 애나 니콜 스미스에겐, 16억 달러에 달하는 제임스 하워드 마셜의 유산 중 일부를 상속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것이 핵심이었다. 먼저 판결을 내린 곳은 캘리포니아의 파산 법정이었다. 2000년 11월, 법정은 스미스가 4억 4975만 4134달러의 유산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아들인 피어스는 니콜 스미스가 이미 결혼 기간 동안 충분한 금전적 혜택을 받았다며 반발했다. 그리고 1년 후, 이번엔 텍사스의 유언 법정에서 판결을 내렸다. 스미스에겐 상속의 권리가 없으며, 피어스의 소송 비용 100만 달러까지 물어 주어야 한다고 선고했다. 두 주에서 내려진 정반대의 판결이었고, 결국 미 연방 법원으로 사건은 넘어갔다.
2002년 3월 연방 법원은 상속액을 8800만 달러로 줄이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피어스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항소를 제기했고, 2004년 12월엔 2년 9개월 전 판결이 뒤집혔다. 파산 법원이 유산과 관련된 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엔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연방 법원의 사법권을 확장하려 했고, 법무차관은 직접 사건의 중재에 뛰어들었다.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정 공방은, 사법권을 둘러싼 연방 법원과 주 법원의 대립으로 번진 셈이었다. 결국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고 2006년 5월 1일에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판사는 스미스가 유산의 일정 부분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다시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이때 변수가 일어난다. 스미스와 법정 싸움을 벌이던 에버릿 피어스 마셜이 67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렇다고 소송이 막을 내린 건 아니었다. 피어스의 아내인 엘레인 마셜이 바통을 이어 받았고 재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2007년 니콜 스미스마저 세상을 떠났고, 2006년에 태어난 그녀의 어린 딸이 소송을 이어 받게 되었다. 재판을 시작한 두 사람은 모두 죽고, 각자의 아내와 딸이 대물림을 한 형국이었다.
2라운드의 첫 판결은 2010년 3월 19일에 내려졌다. 텍사스의 유언 법원에서 이미 다뤄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캘리포니아의 파산 법원이 간여할 수 없으며, 스미스는 유산을 상속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스미스 쪽 변호사는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다시 대법원으로 일은 번졌고, 2010년 9월 28일 다시 재판이 열렸다. 그리고 2011년 6월 23일, 파산 법정의 판결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파산 법원은 파산법에 관련된 사항만 다룰 수 있으며, 유산 관련 사항까지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당시 파산법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렇게 16년에 걸친 싸움은 끝이 났고, 그 기간 동안 에버릿 피어스 마셜과 애나 니콜 스미스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스미스에게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시기 그녀는 더 큰 불행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주로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