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5월 17일 넥센전에서 0-6으로 뒤지던 경기를 7-6으로 뒤집었다. 연장전 끝내기 밀어내기 후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는 선수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지난 5월 13일, 대구 경북고 야구장. 오후 2시 30분이 되자, 경북고 야구부 선수들이 하나둘씩 훈련을 마무리했다. 옆에 있던 경북고 박상길 감독에게 “벌써 훈련이 끝났느냐”라고 묻자, 박 감독은 “3시부터 한화 선수들이 훈련하러 오기 때문에 운동장을 비워줘야 한다”고 답했다. 박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 동안 한화 이글스가 경북고 야구장에서 3일 동안 ‘특타’ 훈련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윽고 저 멀리서 김성근 감독과 이성열, 김경언 등 10여 명이 운동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김 감독은 두터운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 경북고 야구부원들은 물론 학생들도 고등학교 야구장에 나타난 프로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김 감독은 기자에게 “요즘 선수들 타격감이 살아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특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열과 김경언은 고등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심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물론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에서도 경기 전 훈련을 한다. 장소와 시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김 감독은 원정 경기 갈 때마다 그 지역의 고등학교나 대학교 야구장을 빌려 특타를 한다. 보통 코치를 보낼 수도 있지만, 모든 걸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다.
김 감독이 특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화의 전력 자체에 불안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접전이 속출되면서 변칙적인 마운드 운용의 부작용과 그에 따른 투수들의 혹사 논란 또한 끊이질 않는다. 선수단 전체의 피로도를 수치로 계산할 때 한화 선수들이 최고치를 달릴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불펜진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선 마무리 투수 권혁.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권혁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무엇보다 선발진이 초반에 무너지다보니 불펜진 가동이 빨라지고, 박정진, 권혁으로 이어지는 필승조의 등판이 잦다. 권혁은 5월 21일 현재, 올 시즌 팀이 치른 42경기 중 26경기에 등판해 3승 4패 8세이브 3홀드를 기록하고 있다. 40⅓이닝을 던졌다. 박정진도 26경기에 등판, 34⅔이닝을 소화했다.
김 감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던 결정적 장면은 안영명의 주 3회 선발 등판이었다. 12일 삼성전에 선발로 나선 안영명은 2이닝 1실점한 뒤 허리 통증으로 강판됐다. 14일 삼성전 역시 1⅓이닝 3실점 2자책점으로 부진했다. 선발진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 안영명은 17일 넥센전에 또 다시 선발로 나섰다. 1주일 3경기 선발 등판은 2002년 이후 한 번도 없던 기록이다.
이로 인해 수면 밑에서 들끓고 있던 김성근 감독의 선수 혹사 논란이 재점화됐다. 선수들 몸을 챙기지 않고 이기는 데 급급한 ‘문제적’ 감독이란 비난도 뒤따랐다. 안영명은 이런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직접 “혹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선발이 제몫을 못했고, 투구수가 적었기 때문에 일주일 3회 등판에 대해 부담스럽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왼쪽부터 안영명, 박정진.
“올 시즌은 144경기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의 마운드 운용을 보면 하루살이 인생과 같다. 당장의 승리도 중요하겠지만, 시즌 전체를 보고 선수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면서 호흡이 긴 시즌에 대비하는 자세가 부족해 보인다. 선수들은 감히 김 감독의 훈련법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괜찮다’, ‘부담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내용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투수들을 혹사시킨다면 반드시 부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 해설위원은 또한 “한화의 선발진이 흔들린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투수들을 썼다간 시즌 마치기도 전에 부상당할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며 “김 감독은 자신 밑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선수들이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이, 부상과 수술, 재활로 힘든 시기를 보냈는지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한화의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화를 담당하는 한 기자의 얘기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있는 살림살이에서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선수들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선보인다. 김 감독도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 시즌 마칠 때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군 선수들을 돌아보고, 월요일 휴식일에도 야구장에 나와 투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삼성이나 SK처럼 선발투수들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뭐 하러 잦은 투수 교체와 잦은 등판으로 혹사 논란을 부추기겠나. 옆에서 지켜보면 김 감독의 고민과 고뇌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KBO 기술위원장인 김인식 전 감독은 “팀 사정은 감독밖에 모른다. 지적과 비난, 비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감독이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나 기자들은 없을 것”이라면서 “감독보다 더 전문가는 없다. 그렇다면 그를 믿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화 투수 박정진은 얼마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혹사 논란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였다.
“처음 감독님 방식의 훈련이 진행될 때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반감을 가졌다. ‘이걸 꼭 해야 하나?’ ‘왜 이렇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들로 복잡했다. 그러다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시즌이 시작되면서 감독님의 의도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난 연투가 어려웠던 선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연투도 가뿐하다. 무엇보다 야구하는 게 재미있다. 밖에선 감독님에 대해 이런저런 지적을 하지만, 선수들은 재미있는 야구, 이기는 야구를 하게 된 사실에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은 ‘빛과 그림자’로 대별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만년 꼴찌를 도맡았던 한화의 약진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가는 김 감독의 지도력은 좋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이 프로에 있는 동안에는 혹사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김성근 감독이기 때문이다.
“나도 삼성처럼 투수 걱정 없는 팀을 맡았다면 선발이 6, 7회를 지키는 동안 의자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을 것이다.”
김 감독이 며칠 전 기자들에게 하소연했던 내용이다. ‘김성근 논란’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