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호텔신라 서울면세점 사업 후보지 용산 아이파크몰. 오른쪽은 신동빈 롯데 회장과 롯데 서울면세점 사업 후보지 동대문 피트인(연합뉴스). 임준선 기자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에서는 물건 값을 계산하기 위해 줄 서는 데만 20~30분이 걸릴 정도다. 관광객 수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이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 다른 유통 부문이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은 대단한 매력이 있다. 유통기업이라면 노리지 않을 수 없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오는 7월 관세청의 서울시내 면세사업자 추가 선정을 앞두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유통기업들의 전쟁이 한창이다. 롯데, 호텔신라, 신세계, 한화, SK 등 면세사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각각 유리한 입지 조건과 상생 발전, 문화 기여 등에 앞선다며 선정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면세점업계 한 관계자는 “19년 만에 추가 허용하는 데다 언제 또 다시 할지 알 수 없다”며 “따내기만 하면 5년 동안 큰 걱정 없이 호황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허가사업인 면세점 사업은 5년마다 사업권을 재승인한다. 5년 후에 사업자가 교체될 수 있지만 반대로 사업자로 선정되면 5년간은 정부의 공식 허가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허가는 기존 면세사업자의 교체가 아니라 19년 만에 추가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 면세점업계 다른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은 정부 허가 사업인 탓에 기업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5년마다 재승인하긴 하지만 대부분 기존 사업자에 재승인해주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도전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내 면세점은 롯데 3곳(중구·송파구·강남구), 호텔신라 1곳(중구), 워커힐 1곳(광진구), 중구 동화면세점, 모두 6곳이다. 관세청은 오는 7월 대기업 2곳, 중소기업 1곳을 새로 허가할 예정이다.
이번에도 면세점업계 라이벌인 롯데와 호텔신라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롯데는 사실상 서울시내 면세사업자 추가 선정에 큰 욕심을 내지 않는 분위기였다. 설사 참여한다 해도 구색 맞추기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롯데는 지난 22일 중소사업자인 중원면세점과 함께 ‘동대문 피트인’을 후보지로 삼고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에 나설 것임을 밝히면서 경쟁에 합류했다.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과점 논란 때문에 롯데가 지극히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롯데가 후보지로 삼은 곳이 국내에서 가장 큰 면적인데, 할 생각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관세청 특허심사평가기준을 보면 과점 기업에 대한 불이익이 전혀 없다”며 “어느 사업자나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안다”며 롯데의 행보를 경계했다.
롯데가 비교적 느긋한 모습을 보였던 반면 신라는 지난 4월 현대산업개발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일찍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면세점업계에서는 신라를 호텔사업자가 아닌 면세점사업자로 규정짓는다. 신라호텔은 전국에 서울과 제주, 2곳밖에 없는 데다 호텔신라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대부분 면세사업 부문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라는 올 들어 면세사업권 확보 전쟁에서 번번이 롯데에 패했다. 지난 2월 인천공항 면세사업권 입찰에 이어 제주시내 면세점 운영권까지 롯데에 내줬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에서 과연 신라가 롯데를 꺾을지 큰 관심을 모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서울시내 면세점 전쟁에서도 신라가 롯데에 패한다면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면서 “롯데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신라는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추가 허용하는 대기업 2곳 중 신라가 한 곳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만 3곳을 운영하는 롯데보다 신라 쪽에 가능성을 두고 있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24일 제주 관광산업 현장점검에 나섰다가 제주 신라면세점을 방문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만난 것이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한화,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롯데·신라 아성에 도전하는 유통 대기업들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가 추가 허용하는 면세사업자 2곳을 롯데와 신라가 모두 차지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설사 둘 중 한 곳이 선정되더라도 나머지 한 곳을 차지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오는 6월 1일 마감되는 입찰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힌 기업들은 대부분 후보지 선정을 마친 상태다. 롯데는 중원면세점과 함께 ‘동대문 피트인’을, 신라는 현대산업개발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용산 아이파크몰을, 한화갤러리아는 63빌딩을 각각 후보지로 선정했다. 가장 유력한 사업자 후보로 거론되는 신세계는 85년 역사를 지닌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명품관)을 앞세우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워커힐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SK네트웍스는 동대문 케레스타를 후보지로 선정했다. 또 현대백화점은 삼성동 무역센터점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견기업에 할당하는 1곳을 따내기 위한 중견기업들의 각축전도 대기업 못지않다. 그중 유진기업은 MBC와 손잡고 여의도 MBC 사옥을 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해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한류면세점’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투어·모두투어 등도 여행기업의 장점을 활용해 면세점 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