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음악 영화가 대세라지만 드럼을 내세운 음악 영화도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 <위플래쉬>가 개봉할 당시의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극장에서만 160여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위플래쉬>는 조용한 반전에 성공했다. 극장 개봉관을 잡기도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외국의 작은 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벌인 것. 그만큼 <위플래쉬>는 좋은 영화다. 영어 원제는 <Whiplash>, 러닝 타임은 106분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음악을 주된 소재로 활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광기다.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음악대학 신입생 앤드류의 광기, 최고의 실력자지만 최고의 밴드를 위해 최악의 폭군이기도 한 플렛처 교수의 광기가 충돌하는 영화인 것. 살짝 몸싸움 등을 통해 광기가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최대한 이 광기의 충돌을 음악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고 결말 역시 음악을 통해 광기의 대결이 화해와 이해로 마무리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음악을 통한 광기의 대결, 그리고 화해랄까.
이 영화를 본 뒤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바로 반전이다. 자세한 언급은 스포일러이니 피하려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반전은 우리의 상식 수준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사실 반전이라기보단 현실을 그대로 그려낸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뭔가 여기선 이렇게 인물 구도가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미 머릿속에서 인물 구도의 흐름을 생각하며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상식적인 수준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그리고 현실이 실제 그런지 모른다. 우리는 인간관계가 도덕적이고 이상적으로 진행되길 늘 꿈꾸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 상처받곤 한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우리가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방향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인 스토리의 흐름과 인간관계의 진행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는 반전이 된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었다는 <식스 센스>의 비현실적인 반전과 반대로 <위플래쉬>는 매우 현실적인 반전을 보여주며, 이것은 매우 매력적이다.
@ 줄거리
드럼을 치는 음악대학 신입생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가 있다. 분명 그는 미친놈이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 그는 정말 혼신을 다해 연습한다. 그리고 경쟁자를 뛰어 넘기 위해 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짝사랑하던 여성과 연인이 되지만 음악에 더 집중하고 싶다며 헤어지자고 얘기할 정도다. 교통사고로 피를 흘리면서도 무대에 서려고 한다. 좋게 표현하는 광기에 사로잡힌 드러머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그냥 미친놈이다.
또 음악학교에서 최고의 밴드를 지휘하는 플렛처 교수(J.K. 시몬스 분)가 있다. 역시 미친놈이다. 최고의 실력자이자 최악의 폭군이다. 누구나 그의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그가 최고의 밴드를 이끄는 실력자가 된 까닭은 바로 그가 폭군이기 때문이다. 인격 비하는 기본, 학생의 부모까지 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밴드에서 쫓겨난다. 어차피 누군가 잘리더라도 들어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넘쳐나니까.
이런 플렛처의 교육 방식에 힘겨워 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앤드류는 그에게 더욱 빠져든다. 광기와 광기의 만남이 앤드류의 집착을 서서히 키워가는 것. 이들의 광기는 결국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고 만다. 그 아찔한 광기의 충돌이 벌어진 뒤 바닥으로 떨어진 두 남성은 새로운 구도로 다시 관계를 맺고 충격적인 무대를 함께하게 되는데….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재즈를 좋아하며 기막힌 반전을 기대한다면 클릭
기본적으로 음악 영화이며 재즈 밴드를 다룬 영화다. 드러머의 얘기를 다루고 있어 드럼 연주가 주를 이루지만 기본적으로 재즈다. 평소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재즈 밴드의 얘기를 다룬 영화인 만큼 재즈의 세계에 빠져들어 볼 만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광기를 발산하는 남성의 영화다. 그리고 그들의 광기가 충돌하면서 기막힌 반전이 등장한다. 익숙한 스릴러 영화의 결정적인 반전이 아닌 음악을 매개로 한 현실적인 반전이 돋보인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2000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참을성이 필요한 영화다. 앤드류와 플렛처 교수의 광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의 흐름에 지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절정은 그들이 한 번 광기의 충돌을 벌인 뒤 비로소 시작된다. 스승과 제자의 ‘광기 배틀’은 다소 지루하게 반복되지만 그들이 크게 충돌한 뒤 영화는 비로소 진정한 시작점에 선다. 그 대목까지 참아낸다면 영화 후반부의 멋진 반전, 그리고 극적인 연주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결말을 선물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