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데뷔 14년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때가 언제인가?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장소(서울 합정의 한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건물에 사무실을 뒀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2008~9년도쯤 됐을 거다. 그때 제 앨범(4집, 대표곡- 봄이여 오라, Better Than Yesterday)도 잘되고 크루(당시 MC스나이퍼는 ‘붓다베이비’라는 크루의 수장이었다)도 다 잘 되는 상태였다.”
MC스나이퍼. 출처 = 스나이퍼사운드
―크루에 유명 랩퍼(배치기, 아웃사이더 등)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떠나지 않았나? 아쉬운 부분도 있을 듯한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왔을 때 계약이 만료되더라. 워낙 초반에 계약을 했고 기획사 형태보다는 그냥 구두적인 계약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떠나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최근까지 전속계약 법적 분쟁을 벌인 아웃사이더와 극적 합의했는데?
지난 2013년 아웃사이더는 MC스나이퍼가 운영하는 기획사 ‘스나이퍼사운드’와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하며 법원에 정산금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스나이퍼사운드는 아웃사이더를 상대로 음반 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2년여 간 끌었던 둘 사이에 법적 공방은 결국 지난 3월 6일 극적 합의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서로 좋은 형 동생 사이였던 두 사람은 이 사건으로 완전히 틀어져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성적으로 봤을 때 계속 법적 분쟁을 해봐야 서로 얻을 것이 없으니 금전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 결국 합의를 한 것이다. 사실 아직 감정은 남아 있다.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실망이다.”
―디스곡을 냈을 때의 심정과 변함이 없다는 말인가? (MC스나이퍼는 지난해 발매한 앨범 ‘B-Kite 1’에서 ‘자러가자’라는 노래로 아웃사이더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드러냈다)
“그렇다. 성격이 조금 끌어안으려고 하는 성격이라 언젠가는 이해하려고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힘들다.”
―데뷔 초로 거슬러 가보자. 1집 중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가 상당히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를 돌이켜 본다면?
“당시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잘 몰랐다. 언더에서 쭉 올라온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그냥 소신껏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2집 때 또 잘 안됐다. 3집 때는 조금 빛을 보는 듯 하다가 군대를 갔다. 제대하고 나와서 4집을 제작했다.”
―언더 때 힘든 기억은 없었나?
“생활고가 가장 힘들었다. 음악에만 몰두하고 싶은데 생활이 안 되니까. 노가다도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니까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MC BK와는 오래전부터 ‘음악적 파트너’로 알려져 있다. 1집 때 ‘BK Love’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BK와 저랑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왔으면 진짜 ‘징하게’ 오래 있었다. 한 번도 연락 안 끊기고 끊겨봐야 두세 달 정도? 예전에 스무 살 때 BK와 스컬과 팀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때 이름이 스나이퍼즈였는데, 일본식 발음으로 ‘스나이파즈’라고 붙였다. 그러고 1년 정도 활동하다 와해가 됐다. 행사비 2만 원을 받았는데 더 갖겠다고 싸우다가 서로 삐져서 결국 그렇게 됐다. 그때는 그럴 때였다.”
―고향이 충북 제천이다. 일각에선 ‘부동의 토종 랩퍼’라는 얘기도 있는데?
“어려서부터 랩뮤직을 좋아했다. 당시에야 서태지가 힙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힙합보다는 랩뮤직이라고 보지 않는가. 그런 랩뮤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제일교포 친구를 만나서 일본에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쯤부터 언더에서 쭉 올라온 셈이다.”
―별명이 여러 가지다. 힙합계 음유시인, 민족MC 등등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사실 다 부담스럽긴 하다. 한민족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음유시인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가사를 좀 더 열심히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술마니퍼’라는 별명은 마음에 든다.(하하) 예전에 언더할 때 술을 하도 마셔서 그런 별명이 있었다.”
―최근에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등 힙합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힙합이 대중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얻고 있는데 1세대 랩퍼로서 어떻게 보나.
“너무 좋다. 힙합이 대중화되는 것도 좋고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좋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태양이 짙으면 그림자도 짙다는 것이다. 마치 방송 프로들이 대기업 입사 시험처럼 랩퍼가 되는 등용문처럼 되어 버리는 게 아쉽다. 방송을 타지 않아도 될 사람은 되고, 재야의 고수들은 얼마든지 많다.”
―쇼미더머니 시즌 1에 출연하지 않았나? 그때와 지금과 달라진 게 있나?
“맞다. 쇼미더머니의 경우 시즌 1과 2까지는 순수음악을 강조해 괜찮았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시청률이 좋아지고 있지만 점점 쇼미더머니가 진짜 ‘쇼’로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음악은 비즈니스고 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마인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순 없다. 어떤 거친 곡이 하나 나왔다 치자. 그냥 듣기에는 거칠 수밖에 없지만 이 곡이 나올 때까지의 한 남자의 사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는 그런 사연보다는 거친 부분을 부각해서 보여주는 ‘쇼’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슬럼프 이후 최근에는 활동에 날갯짓을 펴는 모습이다. 요새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되나?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주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한다. 요즘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가난’이다. 가난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마음의 가난’에 가장 관심이 간다. 요즘 외로운 친구들이 너무 많다. 요즘 세상은 꿈과 목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다. 스티브잡스 같은 인물은 백년, 이백년에 나올까말까 한데 “스티브잡스처럼 열정을 가져라, 생각을 뒤집어라, 절실함을 찾아라”며 지나치게 채찍질한다. 그러다보니 자기중심도 없고 꿈도 없는 개개인들이 스스로 이상한가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꿈이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인지도 모른다. 뭔가에 쫓겨야만 하고 불안해하는 이런 것들이 마음에 가난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다음 앨범 주제도 ‘가난’인가? 언제쯤 발매를 예상하나?
“계획은 ‘가난’으로 잡고 있다. ‘비카이트 2집’으로 발매는 8월쯤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힙합을 언제까지 하고 싶나?
“별다른 기한의 개념이 없다. 전인권 선배님을 좋아한다. 그렇게 음악을 쭉 하고 싶다. 앞으로 방송 활동 등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