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청문위원으로 선정된 한 새누리당 의원은 “(청문위원을 하겠다고) 손을 든 새누리당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그간 숱한 청문회가 있었고 선수에 관계없이 해결사 노릇을 하려는 의원들이 줄을 섰는데 이번 총리 청문회만큼은 사정이 달랐다는 말을 실토했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대해 일부 비박계에서는 비토 분위기가 감지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마뜩찮은 것이다. 누가 나서지 않아도 통과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누가 나서서 도와줘도 별로 돌아올 것 같지 않을 수도 있고…그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지도부에서 딱 찍어서 청문위원을 임명한 것은… 답답했을 것이다.”
인사청문위원으로 선정된 한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또 다른 한 새누리당 청문위원은 “역대 어느 때보다 모범적인 청문회를 열어보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이 저격수 여섯 명을 전면 배치해 황교안 총리 후보자 죽이기에 나섰다는데 오히려 여당이 더 날카롭게 질문할 것”이란 말을 했다. 그의 얘기도 들어보자.
“황 후보자가 그간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공안’이다. 빈부격차 문제, 경제활성화, 일자리 창출, 빈곤 타파, 외교나 안보, 통일, 국방…어느 하나 황 후보자의 트레이드마크가 없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총리상과는 이질감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 새누리당부터 그의 ‘미션’을 철저히 따져 물을 것이다. 사정정국으로 공포정치를 이어가겠는가. 또 대통령과의 관계를 상명하복으로 가져가겠는가, 여론을 수렴해 충실하게 전달하는 헌법 속의 총리로 가겠는가 물을 것이다. 이번엔 내 편 네 편 없다고 봐도 된다.”
이렇듯 여당 청문위원마저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대 총리 후보자 가운데 거의 처음이라고 할 만큼 황 후보자의 당내 인기는 바닥 수준이다. 왜 그럴까. 당 안팎에서는 그간 그가 보여준 답변 자세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나 측근 국정개입 의혹 파동,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파문 등 국회 출석이 있을 때마다 황 후보자는 “법무부 소관 사항이 아니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입장을 밝힐 수 없다” “장관으로서 말씀드리기가 부적절하다”는 등 여야 가리지 않고 질문자를 실색케 하는 무책임하고 관료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정가 한 인사는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보다 황교안의 ‘입’을 좋아했을 것이다. 사실 황 후보자의 입을 통해 드러난 새로운 사실은 단 하나도 없다”며 “어차피 이번 정권에서는 그 누가 총리를 해도 똑같다. 뫼비우스 총리였다는 정홍원 전 총리를 아는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여권 내 주요인사로서 물론 ‘입’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 상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황 후보자 같은 경우 소신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관료들의 전형적 특징인 보신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박 정권 들어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의 특징이 여기에 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여권 일각에선 황 총리 후보자 비토 분위기도 감지된다. 결국은 사정정국을 통해 공포정치를 열 저승사자가 아니겠느냐는 의심에서다. 비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을 통괄하며, 인물을 제청하는 총리의 3대 임무 중 어느 것도 지켜질 것 같지 않다. 다만 ‘정치개혁’을 통해 그나마 이 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은 대통령 하나뿐임을 증명할 분”이라며 “당으로선 상처가 크더라도 굳이 황 후보자를 돌파시킬 의지가 크게 보이진 않는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정가의 한 인사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와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그땐 어떻게든 청문위원으로서 ‘이완구 구하기’에 나서 공을 세우고 싶어했다”라며 “이완구 마음에 들면 어떻게든 보답이 있을 것이라 봤고, 그것이 미래에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의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권의 한 정책통 관계자는 “사실 여당의 청문위원은 지역구민이나 국민으로부터 욕을 듣기 딱 좋은 자리다. 야당에선 회초리를 드는데 여당에선 쭉쭉 빨아주는 낯 뜨거운 짓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는 법무부 장관을 끌어다 쓰니까 청문회는 통과될 것이고, 괜히 들러리 섰다가 욕만 듣고 공치사도 못하는 판에 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이번 청문위원은 손해 보는 장사”라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야당보다 여당이 더 매섭게 나설 것이란 관측을 제기한다. 20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황 총리 후보자 통과보다 자기 인지도 높이기나 인기 영합으로 흐를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는 것이다. 총선에 욕심이 난 위원들이 저마다 개인플레이를 펼친다면 황 후보자가 청문회는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생긴 여당과의 틈은 쉽게 메워지지 못한다. 결국 이것도 당-정-청 간의 엇박자만 불러올 도미노의 한 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