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시간을 절약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연설할 메시지를 미리 정리하는 데, 단순히 정리하는 것보다 실물을 봐야 감을 잡는 시간이 줄어들어 연설문 형태로 초고를 쓰는 작업을 한다. 다만 이 초고는 최종 연설문의 10%를 만드는 정도의 작업이다. 대통령은 이 초고를 최종본에 전혀 참고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초고가 최종본이 되는 경우는 절대 없다. 모셨던 두 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말하는 연설을 남이 써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당대의 문장가를 섭외해 연설문을 쓰게 하고 거의 수정 없이 사용했다. 그래서 연설문 자체의 완성도로만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썼던 YS의 연설문도 완성도가 높지만 중간에 턱턱 걸리는 데가 있다. 이 부분은 YS가 연설문을 보다가 한 줄씩 수정하거나 첨가한 것이다. 이렇게 수정한 곳이 신문 헤드라인으로 뽑혔기 때문에 윤 전 장관은 YS의 정치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의 초고를 쓰면서 노 전 대통령 특유의 표현을 누구보다 많이 알 것 같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의 발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노 전 대통령 혹은 친노 인사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나.
“그 쪽 프레임으로 보면 거칠고, 과격하고 그런 의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친노들의 표현은 솔직하고 생생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말 폼, 잡는 말은 잘 안 쓴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 같은 말을 안 쓴다. 그건 굉장히 관념적인 말이다. 권위주의란 말도 그렇고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대통령이 검찰에 전화하지 않겠다’라고 표현한다. 또 ‘서민들이 검찰이 불러도 오금저리지 않고 국세청 앞에 가서 기죽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게 멋을 부리려는 비유는 아니지만 고도의 수사라고 생각한다. 친노 표현이 있다면 이런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런 표현의 특징은 생생하다는 게 가장 크다. 폼 잡으려고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에게 품격 있게 써달라고 만날 주문했다고 하는데, 품격은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자체의 권위보다는 청중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투의 말을 쓰게 된 것이다.”
─가까이서 본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노무현 대통령은 솔직하고 꾸밈없이 말한다. 저의가 없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정치 9단’이라고 한다. 어디까지 솔직하느냐 하면 자신의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돈을 받은 문제에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은 이것은 대통령을 그만둘 사안으로 봤다. 그래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고. 그런데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 그 분은 자신의 국정운영의 기반은 도덕적 신뢰 하나밖에 없다고 굳건하게 믿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임기가 4년 넘게 남았는데 무엇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말을 했다.”
재신임 방식과 관련해 기자회견 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젊은 참모들로 이뤄져 있었다면 지금의 청와대는 좀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다.
“단적인 예로 내가 대우그룹에서 마지막 직급이 과장이었다. 그 당시 담당 이사가 백기승 현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박근혜 정권 국정홍보비서관 역임)이다. 내가 지난 2004년 비서관이 됐는데 백 원장은 거의 10년 후인 2013년 청와대 홍보수석실 국정홍보비서관이 됐다. 더군다나 나와 백 원장의 나이 차이도 5년 정도 있다. 이 정도 연배차이가 참여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있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이해찬 총리(맨 오른쪽)에게 인사권까지 맡기는 등 모든 권력을 내려놓았지만 이를 밖으로 알리지 않았다. 사진제공=청와대
─선배인 윤태영 전 비서관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책임총리제에 확고한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도 총리가 많은 일을 했나.
“대통령은 대통령 아젠다, 대통령 프로젝트만 하고 일상적인 국정업무는 이해찬 총리에게 맡겼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사권을 줬다. 인사권은 대통령 권력의 전부다. 인사권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그걸 총리에게 줬다. 총리가 차관 이하 인사는 완벽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려지지 않게 했다. 알려지면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듣는다. 그건 대통령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다. 공무원들이 총리실에 줄을 서지 청와대 줄 안 선다. 그 사실은 이 전 총리가 알려지지 않도록 당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의 사이가 나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 점에 대해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DJ는 어느 정도 언론과 타협하면서 가려고 했다. 그러다 3년차 때 신년모두연설을 혼자 쓰셨다. 초고를 올렸는데 완전 무시했다. 그런데 완성본을 계속 안 내려주셨다. 원래 며칠 전에 내려주시면 그것으로 사전 작업을 했는데, 그날은 완성본을 연설 당일에 내려주셨다. 그런데 내려주신 연설문을 읽다가 언론사 세무조사가 들어 있어 깜짝 놀랐다. 나 같은 사람도 언론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결정적으로 언론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던 데다 원칙주의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 검찰과 타협하지 않았다. 비행기도 언론사에서 돈 내고 타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위 진보적인 언론사는 돈이 없어 순방에 못 따라가는 경우까지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순방만 가면 큰 건이 연달아 터졌다. 공보실에서는 동포간담회를 ‘공포간담회’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포를 보면 감정이 격해져 거르지 않고 말을 했다. 언론사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기사를 쏟아냈다.”
2003년 육군 무적 태풍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이 사용하는 귀마개를 착용해 보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노 전 대통령하면 말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 그것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나.
“국가에서 내놓는 유일한 제품은 정책 하나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이 어떻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 그럼에도 나중에 이런 말을 하셨다. 언론이 그렇게 내 말을 가지고 한 것에 대해서 자신도 잘못한 게 있다. 말을 나도 고쳐보려고 했다. 언론이 요구하는 대통령과 같이 말해보고 품격 있게 말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노력해도 안 되더라. 그런데 의문은 있다. 과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대통령의 말투나 표현방식이 국정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만큼, 언론이 집요하게 다룰 만큼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곁가지 때문에 중요한 정책은 보이지도 않고 전달도 안 된다. 우체부가 전달을 안 해준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는 정책에 대한 보도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혁신하겠다’ 같은 말은 써주지도 않으니까 표현을 더 세게 했던 적도 있다.”
─청와대 참모와 비서진들에게 출마를 권유했다는데 그런 권유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비서관들에게도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것은 혜택을 받은 것이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너희는 한 것이다. 말하자면 특혜를 누린 것이다. 그런데 그 귀한 경험을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특권만 누리고 떠나는 것이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힘들고 더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하면 그것은 안 된다. 고난의 길로 가야 한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통해 받은 특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고 화두는 무엇이었나.
“‘성공한 대통령’이다. 당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는 덕담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임기 4년을 넘어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시각은 3가지가 있다. 청와대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 언론과 국민이 평가하는 것, 역사가 평가하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이 국정운영을 잘했다는 것인데 잘했다고 하는 것과 올바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경기부양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고 경제를 속으로부터 골병들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길을 가야하는데 그러면 잘하지 못한 게 되고 성공하지 못한 게 되는데 그런 것으로 고민했다. 국민의 평가도 언론이 잘 써줘야 하는데 언론과 그런 관계에 있다 보니 그것도 어려웠다. 대통령 본인도 ‘임기 5년차에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하려는 것이 개혁과 통합인데, 권위주의 내려놓고 권력기관 정상화, 정치자금 투명화 등 개혁은 어느 정도 했는데 통합에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정전반을 보면 스스로 수치로 평가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경제나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게 했다.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찾아 뵀던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2003년 올스타전 개막식 시구 모습. 일요신문 DB
─마지막으로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노무현 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넣는 것. 예를 들면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대의, 역사, 국민을 넣어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위해 선택하거나 국민을 위해 선택하는 점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