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 하듯이 진행되는 인위적 사정에 대한 검찰 내 피로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향후 박근혜정부가 진행할 고강도 정치개혁 사정이 실패할 경우 황 후보자가 큰 후폭풍에 휘말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현재 서초동 내에선 ‘부정부패 척결 적임자’ 발언이 이명박 정부를 표적으로 한 청와대발 기획사정 책임론에서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향후 박근혜 정부가 진행할 고강도 정치개혁 사정이 지금처럼 실패할 경우 그 책임 또한 황 후보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사정의 동력이 약화된 가운데 구속영장을 놓고 물밑 신경전이 치열한 법원과 검찰의 관계, 군사작전 하듯이 진행되는 인위적 사정에 대한 검찰 내 피로감, 사정수사 책임론을 검찰에 떠넘기는 청와대에 대한 불만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기에 하는 얘기들이다.
# 검찰과 법원의 ‘불편한’ 관계
왼쪽부터 김진수 전 부원장보, 정동화 전 부회장.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구속영장 기각 배경은 법원과 검찰 간의 불편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4월 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유전 불구속, 무전 구속”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평소 강성으로 알려진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분위기라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장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한동훈 공정거래조세조사부 부장검사가 불같이 화를 냈다는 소문도 있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한 부장은 평소 ‘독사’로 불릴 만큼 한번 문 사건에 대해선 놓지도 않고 실패도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영장이 기각되면서 거의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흥분했던 것으로 안다”며 “한 부장의 친구인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박 지검장과 한 부장 사이에서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후 영장전담재판부와 장 회장 변호인간 전관예우 논란까지 일면서 법원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검찰의 구속영장 재청구를 받아들였지만 검찰 내에선 “다음 사건 영장은 반드시 기각”이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전관예우를 문제 삼아 비난하는데 법원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다음 주요사건에 대해선 반드시 영장을 기각시킬 것이고 그게 포스코가 될지 경남기업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법원은 두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시킴으로써 검찰에 톡톡히 ‘보복’을 한 셈이다. 검찰도 정 전 부회장의 영장까지 기각됐을 때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게 검찰로선 더 큰 문제라는 분석이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영장을 놓고 법원과 검찰이 불편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정수사를 바라보는 법원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법원은 이 수사의 시작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과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따라서 앞으로 어떤 종류의 사정 수사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법원의 입장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더 중요한 건 이런 상황이 결국 사정을 기획한 청와대와 황 후보자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검찰 내 팽배한 사정 피로감
김진태 검찰총장의 한 측근은 “최근 김 총장이 매우 힘들어하고 있고, 그 때문인지 짜증이 너무 많아졌다”며 “이런 분위기가 대검찰청에 있는 참모들에게도 퍼지는 것 같고 서울중앙지검도 그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를 “사정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경남기업은 기소하기가 쉽지 않다고 담당 검사가 얘기했더니 어느 간부가 ‘내가 그걸 모르겠느냐. 그래도 만들어내야 한다’고 핀잔을 줬다는 얘기가 검찰 내에서 돈 적이 있다”며 “그런 상황을 겪다보니 검찰 수뇌부도 그렇고 일선 검사들도 사정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황 후보자에겐 녹록지 않을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 후보자가 검찰을 손아귀에 쥐고 사정수사를 진두지휘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총리가 되면 예전만큼 검찰 조직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은 탓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물론 누가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오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현재 검찰 내에선 황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을 그만두는 게 검찰에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그만큼 지난 2년 3개월간 황교안 체제의 폐해가 심각했다는 의미이고, 그가 정치개혁을 위한 고강도 사정을 주문하더라도 하는 척이야 하겠지만 정신없이 달려들지는 않을 분위기”라고 말했다.
# 검찰 내 청와대 비토 기류
성완종 전 회장 자살 이후 청와대발 기획사정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정의 밑그림을 그렸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박근혜 정부는 더 강도 높은 사정을 예고하고 나섰다. 명분은 정치개혁. 그러자 검찰 내에선 “할 말을 잃었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 실패한 사정을 덮기 위해 더 강도 높은 사정의 페달을 밟으라는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사정의 칼날을 함부로 휘두르는 과정에서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했고, 그로 인해 역풍이 불었으니 그보다 더 강도 높은 사정의 후폭풍은 그만큼 더 심각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 전에는 역풍의 타깃이 우 수석이었다면 이제는 황 후보자가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청와대가 황 후보자 지명 당시 “정치개혁의 적임자”라고 공언한 데다, 박 대통령도 임명사유서에서 사실상 두 차례에 걸친 사정의 책임자로 황 후보자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황 후보자를 잘 아는 한 지인은 “황 후보자 책임론이 불거진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대응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중요한 건 황 후보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본인이 정치 생명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들지도 않았고 그런 일에 직면했을 때는 알아서 잘 피해가는 스타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