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8만 캐럿에 달하는 거대한 에메랄드 원석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뜨겁다. 일명 ‘바이아 에메랄드’라고 불리는 이 원석을 두고 지금까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사람은 광산업자, 부동산 재벌, 무역업자 등 모두 여덟 명. 최근에는 브라질 정부까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현재 LA 주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판을 중지 또는 보류할 것을 요청한 브라질 정부는 장물아비들에 의해 미국으로 밀수출됐던 에메랄드가 본국인 브라질로 반환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둥 모양의 에메랄드 원석 아홉 개가 붙어있는 이 암석의 중량은 무려 390㎏. 시가로 따지면 3억 7200만 달러(약 410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의문인 것은 과연 이 에메랄드 원석이 진짜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보석감정사들은 “사실 그 정도의 가치는 없다”라고 말한다. 크기만 봤을 때는 분명 희귀한 것이 맞지만 보석으로서의 가치를 봤을 때는 형편없다는 것이다. 단지 사기꾼들이 서로를 속이면서 값을 부풀렸을 뿐 훌륭한 원석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꾼들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바이아 에메랄드’의 8년 동안의 길고도 수상한 여정을 따라가봤다.
시가 4000억 원대에 달하는 세계 최대 크기의 에메랄드 원석을 둘러싸고 소유권 분쟁이 뜨겁다. 오른쪽은 그중 한 명인 벤처 투자가 토니 토마스.
브라질 북동부의 바이아주 핀도바쿠 인근에는 먼 옛날 지각 활동으로 인해 지면이 마치 아코디언 주름처럼 구겨진 지역이 있다. 갈라진 지표면 사이에 생긴 깊은 골짜기는 세월이 지나면서 수풀로 뒤덮였으며, 점차 베릴륨, 크롬과 같은 원소들이 바위와 함께 냉각되면서 다량의 육각형 녹색 크리스탈을 형성했다. 바로 에메랄드였다.
이곳에 에메랄드가 다량 묻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광산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브라질 각지에서 수천 명의 광산업자들이 바이아로 몰려왔다. 이들은 맨홀보다도 좁은 수백 피트 아래에 있는 수갱으로 내려가서는 목숨을 건 보석 사냥에 나섰다.
2001년 초 어느 날, 보석 사냥꾼 한 명이 수갱으로 내려갔다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에메랄드 암석을 채굴해서 올라왔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에메랄드 원석은 크기만 클 뿐 선명한 색을 띠고 있지는 않았다. 바이아에서 출토되는 대부분의 에메랄드 원석이 그런 것처럼 탁한 색을 띠고 있었으며, 불순물로 인해 상당 부분 손상되어 있었다. 때문에 콜롬비아, 잠비아 등 세계 최고의 광산에서 출토되는 고품질의 에메랄드가 1캐럿 당 수천 달러에 팔리는 것과 달리 바이아의 에메랄드는 1캐럿당 10달러도 채 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까닭에 바아이에서 산출되는 에메랄드는 대부분 값싼 인조 보석으로 팔리며, 아랍 국가에서 모스크나 집안 장식을 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간혹 지질학적 희귀성으로 보석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긴 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이 거대한 에메랄드 암석을 처음 매입한 사람은 바이아 지역의 한 남성이었다. 당시 이 남성은 5000달러(약 550만 원)에 암석을 사들였으며, 그 후 2만 달러(약 2200만 원)에 되팔았다. 하지만 이 에메랄드 원석의 합법적인 거래는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이 원석은 점차 불법적으로 은밀히 거래됐으며, 행방도 묘연해졌다.
2001년 6월, 광부인 엘손 리베이로와 루이 사라이바의 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친 뒤였다. 리베이로와 사라이바는 이 원석을 상자 안에 보관한 후 픽업트럭에 싣고 바이아주를 떠났다. 이 에메랄드 원석의 길고도 수상한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국의 에메랄드 전문가인 로널드 링스러드는 “크면 무조건 사들이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는데 바로 ‘바이아 에메랄드’의 운명이 그러했다. 실제 가치야 어떻든 이 에메랄드는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기꾼 갱조직단, 배신자, 형사들의 손을 거쳐 8년 동안 브라질을 거쳐 미국을 여행했다.
2001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의 건설회사 사장이자 벤처 투자가였던 토니 토마스는 현금을 두둑하게 보유하고 있던 부자였다. 당시 벤처회사 붐을 따라 덩달아 호황을 맛보았던 그는 벤처회사인 DRI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닷컴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회사 수익도 준 데다 DRI사마저 파산할 위기에 처했던 것. 이에 DRI사의 CEO인 웨인 캐틀렛이 새로운 펀딩이 필요하다면서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때 토마스의 머리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한 건설 현장에서 만났던 60대 후반의 광산 컨설턴트인 켄 코네토가 했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광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코네토는 당시 브라질에서 산출된 거대한 크기의 에메랄드에 대해 귀띔했었다.
이에 캐틀렛은 토마스에게 코네토와 함께 브라질로 가서 에메랄드를 값싼 가격에 구입해올 것을 제안했다. 원석을 담보로 대출을 받자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토마스는 에메랄드의 가치가 1억 달러(약 1100억 원)는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들뜬 마음으로 코네토와 함께 상파울루에 도착했던 토마스는 당시 원석을 소유하고 있던 리베이로와 사라이바를 만났다. 그리고 차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거대한 원석을 본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원석을 쓰다듬으면서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 에메랄드가 가져다줄 막대한 부를 생각했다.
리베이로와 사라이바는 원석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터키 출신의 보석감정사가 작성한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증명서에는 “이렇게 희귀한 표본은 내 평생 처음 본다. 소더비와 같은 경매 시장에서도 본 적이 없다. 가치는 9억 2500만 달러(약 1조 원) 정도로 평가된다. 전문적인 보석감정사로서 나는 이 원석이 대단히 훌륭하고 진귀하며, 또한 감탄스럽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에메랄드 원석에 완전히 매료된 토마스는 6만 달러(약 6700만 원)에 원석을 사들였으며, 11월 말에는 캐틀렛에게 사업 자금으로 총 18만 달러(약 2억 원)를 송금했다. 그리고 그는 곧 에메랄드가 브라질에서 캘리포니아로 운송되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캐틀렛이 코네토와 손을 잡고 토마스를 배신했던 것이다. 2001년 말, 캐틀렛은 토마스를 포함한 투자가들에게 쓴 작별의 편지를 통해 “지난 5개월 동안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막대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말하면서 파산 신청을 했다.
그 후 3년 동안 ‘바이아 에메랄드’는 ‘브라질 은행’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2004년 캐틀렛, 코네토, 리베이로, 사라비아는 파나마에서 공동 설립한 ‘젬웍스 마이닝’사를 통해 ‘바이아 에메랄드’를 캘리포니아 산호세로 운송해왔다. 세관에는 100달러(약 11만 원) 상당의 바위 덩어리라고 신고했다. 그리고 전문 사기꾼들을 고용해서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투자가들을 끌어 모았다.
이들의 사기 수법은 다양했다. 투자가들로부터 에메랄드 구입 명목으로 대출을 받은 후 연락을 끊어 버리기도 했다.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석의 조각을 잘라서 직접 보여주거나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이들에게 당한 사람은 척추지압사부터 부동산 투자가까지 다양했으며, 4만 달러(약 4400만 원)나 8만 달러(약 8800만 원) 등 피해 금액도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속이기도 했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몰래 원석을 이리저리 빼돌렸다. 산호세에 있는 코네토의 창고에서 다시 산타바바라에 있는 캐틀렛의 변호사 사무실로 옮겨졌던 원석은 다시 캐틀렛의 뉴올리언스 연방 은행 금고 안으로 이동됐다. 때문에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몇 주 동안 물속에 잠긴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캐틀렛이 부동산 개발업자인 래리 비글러에세 원석을 팔아넘기면서 이 원석은 희귀 보석 및 광물 수집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코네토의 말에 따르면 비글러는 ‘사기꾼을 등치는 사기꾼’이었다. 비글러는 뉴욕의 다이아몬드 딜러인 개리 와이스에게 ‘바이아 에메랄드’를 좋은 값에 팔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와이스는 2007년, 이베이에 원석을 매물로 내놓았다. 당시 경매 시작가는 1890만 달러(약 209억 원)였으며, 즉시 구매가는 7500만 달러(약 830억 원)였다.
당시 와이스가 이베이에 올린 ‘바이아 에메랄드’ 소개글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이 에메랄드는 처음 발굴 당시 운반하기 위해 여덟 명의 인부가 필요했으며, 5개월에 걸쳐 숲속에서 상파울루로 간신히 옮겨졌다. 물론 이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허풍에도 불구하고 이 원석은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비글러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과장된 홍보를 해서 가격을 부풀리는 것이 최소한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비글러는 다시 원석의 보관 장소를 옮겼다. 이번에는 LA 동부에 위치한 운송회사인 ‘커먼웰스 인터내셔널’의 개인 금고 안이었다.
비글러는 동업자이자 플로리다의 부동산 회사 사장인 제리 페라라와 함께 원석을 팔아넘기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이들의 마수에 걸린 사람은 아이다호의 사업가인 키트 모리슨이었다. 본래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던 모리슨은 비글러를 통해 귀가 솔깃한 만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남미에서 귀한 물건이 오고 있으니 소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글러는 모리슨에게 130만 달러(약 14억 원)를 송금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온다고 했던 에메랄드는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으며, 비글러는 보름간 연락 두절이 된 채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리고 보름 후 나타난 비글러는 “브라질 마피아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났다”고 말하면서 대신 사죄의 의미로 작은 에메랄드 조각을 건넸다.
모리슨은 그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리고 페라라를 설득해 비글러를 배신하도록 한 후 새로운 합작회사인 ‘F&M 홀딩스’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들은 금고에서 몰래 에메랄드를 반출해 도망을 쳤다. 법정에서 페라라는 “나 역시 에메랄드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 나 역시 막대한 현금을 지불하고 비글러에게서 원석을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2008년 10월 초, 비글러는 LA 셰리프국에 에메랄드를 도둑맞았다고 신고했다. 그리고 두 달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모리슨의 행방을 찾아낸 LA 셰리프국은 “에메랄드의 소유권 분쟁을 해결해주는 조건 하에 에메랄드를 넘겨주겠다”는 모리슨의 말에 따라 에메랄드 원석을 금고에 보관했다. 모리슨은 “나는 판매 동의서 등 서류 증거도 갖고 있다. 내가 에메랄드 주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에메랄드의 주인을 자처하는 사람은 모리슨뿐만이 아니었다. 2009년 1월, 코네토는 에메랄드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모리슨을 고소했다.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계속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들이 코네토 또는 모리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코네토, 캐틀렛, 리베이로, 사라이바 등 네 명이 각각 원석의 소유 지분을 나눠 갖기로 모리슨과 협의를 보는 것으로 재판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9월, 갑자기 브라질 정부가 개입하면서 문제는 더욱 꼬여만 갔다. 브라질 정부는 판사에게 재판을 중지 또는 보류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것은 외교 문제다. 때문에 국가 간에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 연방정부와 원석을 안전하게 반환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한 브라질 정부는 “원석은 브라질 소유이며, 브라질 정부는 원석을 되찾아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브라질 정부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 원석이 불법적으로 채굴됐고, 불법적으로 운반됐으며, 미국으로 밀수출됐기 때문’이다. 에메랄드의 가치가 형편없다고 해도 소유권을 주장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브라질의 어떤 보석이나 원석, 광물도 합법적인 허가 없이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만일 원석이 브라질로 반환될 경우 원석을 통해 이득을 취하진 않을 것이며, 대신 박물관에 영구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LA 고등법원은 이런 브라질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모리슨은 재판에서 승소해서 소유권이 인정될 경우 브라질 정부와 협상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단, 적절한 보상금을 지불해줄 경우에 한해서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는 “그럴 뜻이 없다. 바이아 에메랄드는 본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테오도라 에메랄드 진위 논란 수박만한 그 보석…초록색 염색한 거야? 지난 2012년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 ‘웨스턴 스타’ 경매에 희귀한 보석 하나가 출품돼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세계 최대인 무려 5만 7500캐럿을 자랑했던 이 에메랄드는 수박만 했으며, 무게는 11.5㎏에 달했다. 경매 시작가는 115만 달러(약 12억 원)였다. 당시 보석을 출품했던 희귀 보석 딜러인 레이건 리니는 “이 에메랄드는 브라질에서 산출된 후 인도에서 커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에메랄드에 ‘테오도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 에메랄드의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과연 진짜 에메랄드가 맞나 하는 것이었다. 보석감정사인 제프 네카는 “에메랄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순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카는 이 암석이 염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일부분은 에메랄드의 사촌격인 화이트 베럴(무색의 녹주석)로, 초록색으로 염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보석감정연구소(GIA)의 회장인 셰인 맥클러 역시 “만일 이 암석에 화이트 베럴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GIA는 이 암석을 에메랄드라고 칭하지 않을 것”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리니는 이런 의심에 대해 “이 암석은 100% 에메랄드가 맞다. 물론 전체가 녹주석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보석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암석은 거대한 크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니는 경매가 끝나기도 전에 결국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사실 그는 이미 온타리오에서 여러 차례 사기를 저질러 수배명단에 올라있던 인물이었다. 신분을 속이고 멀리 브리티시콜롬비아로 도망쳐왔지만 경찰의 추적 끝에 철창신세를 지게 되고 말았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