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니콜 스미스가 생후 6개월 된 어린딸 대니얼린에게 88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산을 남겨 두고 돌연사하자 수많은 남자들이 대니얼린의 양육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였다.
2006년 6월 1일, 애나 니콜 스미스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 임신 사실을 밝힌다. 불장난 같았던 첫 번째 결혼 후 19세에 아들 대니얼을 낳은 후 20년 만의 임신이었다. 두 번째 남편이었던 제임스 하워드 마셜은 이미 1995년에 세상을 떠난 상황. 사람들은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추측하기 시작했지만 니콜 스미스는 “나는 너무 행복하다”는 멘트를 남겼고, 이후 출산 전까지 정기적으로 동영상을 올렸다.
2006년 9월 7일에 바하마에서 딸을 순산한 스미스. 출생증명서의 아버지 이름을 적는 칸엔 ‘하워드 K. 스턴’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마셜의 유산 상속에 대한 긴 법정 싸움 기간 동안 스미스의 변호사였던 스턴은 자신의 의뢰인과 사랑에 빠졌고, 2006년엔 사실혼 관계였던 것. 그는 9월 27일 CNN <래리 킹 쇼>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부임을 재차 밝히기도 했다. 딸의 이름은 한나 로즈 스턴. 이 이름은 한 달 후 대니얼린 호프 마셜 스턴으로 바뀐다. 하지만 출생증명서의 서명란엔 스턴 대신 당시 그들 부부의 변호사였던 디온 스미스 주니어가 사인을 했고, 이 대목은 이후 증명서의 법적 효력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이어진다.
대니얼린과 친부로 확인된 래리 버크헤드.
애나 니콜 스미스의 보디가드이자 개인 트레이너였고 셰프이기도 했던 알렉산더 덴크도 있었다.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으로 배우로도 활동했던 그는 스미스가 죽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했으며, 과거 5년 반 동안 뜨거운 관계였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친부라는 사실을 역설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항상 나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며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든 간에 양육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에 힘을 실었다. 의외의 후보도 있었다. 독일 출신 왕족인 프레데릭 폰 안할트였다. 그는 1986년에 43세의 나이로 26세 연상인 여배우 자 자 가보르와 결혼했던 인물이었다(가보르의 9번째 결혼이었다). 그는 자신이 10년 가까이 스미스와 관계를 맺었다며 친권 관련 소송을 걸었고 거짓말 탐지기도 통과했으며, 법원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DNA를 제출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는 자신이 대니얼린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지면 가보르와 이혼한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살겠다고 공언했다.
O. J. 심슨도 이 대열에 끼었다. 아내를 죽인 혐의로 긴 법정 싸움을 했던 그는, 혐의는 벗었지만 가산을 탕진한 상태. 아무래도 친권 주장은 유산을 노린 행동처럼 보였지만, 아무튼 자신이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죽은 제임스 하워드 마셜이 아버지라는 설도 나왔다. 애나 니콜 스미스의 이복동생인 다나 호건의 주장이었다. 마셜은 죽기 전에 자신의 정자를 냉동시켰고, 스미스는 그것을 이용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스미스 모녀와 사실혼 남편 하워드 K. 스턴.
버크헤드가 진짜 아버지임은 밝혀졌지만 양육권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버크헤드가 대니얼린을 키우게 되었고, 스미스의 지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래리 버크헤드가 그나마 상식적인 인간이었던 것. 양육권을 확보한 후 버크헤드는 순탄하게 딸을 키우고 있으며, 2013년에 대니얼린은 엄마인 애나 니콜 스미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게스’ 브랜드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 버크헤드는 “아이가 원해서 했던 일회성 이벤트일 뿐이며, 아버지로서 딸을 연예인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