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5월 18일 행사위의 별도 기념식에 천정배 의원이 참석해 유족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월 말 국회에 재 입성한 천정배 의원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천 의원은 지난 한 달여 동안 대부분 광주 지역구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지지해준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좌진들이 주말에도 출근할 만큼 의원실은 분주했다. 그러다 지난 6월 5일부터 천 의원은 11주간의 토론회 대장정에 나선다. 정치재개를 알리는 본격 신호탄이다. 매주 진행되는 ‘개혁정치의 국가비전 모색’ 토론회가 끝나면서부터는 바로 국감시즌에 돌입한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3년 동안 의정활동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천 의원 입장으로서는 정책을 가다듬는 일종의 ‘몸풀기’라고 한다. 하지만 차기 주자의 한 사람인 그가 정책개발만을 위해 11주간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재보선 승리 뒤 정계개편의 ‘주체’ 가운데 한 명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토론회 같은 공식행사를 통해 세력 확장과 외연 넓히기도 꾀해야 하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 천 의원의 정치적 영역에서는 이와 같은 ‘주문’은 다소 무리다. 왜냐하면 그를 돕는 현역 의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3년 의정활동 공백에 따른 것이라 해도 향후 정계개편의 한 축으로 올라서야 할 처지에서 볼 때 다소 초라한 위상이다. 천정배 의원실 보좌관은 “토론회에 초청한 다른 의원은 없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3개월간의 토론회 사회 등을 맡으며 조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천 의원이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새정치의 열망을 등에 업고 국회에 재입성한 이상 기존 의원들과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 모양새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천 의원이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경선을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만큼 당내 인사들이 그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의 보좌관은 “천 의원이 현역 의원들과 공식적으로 만난 건 없다. 천 의원은 국회 와서 김두관 전 지사와 문재인 당대표를 만난 정도”라면서도 “여의도 주변에서 (천 의원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현재 천 의원의 역할이 애매하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호남 개혁’을 필두로 당선된 그이지만 그동안 몸담았던 새정치민주연합에 크게 각을 세울 수도, 그렇다고 호남의 친노 세력에 대한 비판론을 외면하고 지도부에 우호적인 입장이 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신당 창당 기류도 가시화되고 있지 않아 그로서는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정치 중앙에 복귀하긴 했지만 사실상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 천 의원의 가장 현실적인 카드는 ‘무소속 연대’다. 총선 전까지 당이 분열되지 않거나 비노계 결집에 실패한다면 천 의원은 무소속 연대 등을 통해 재선에 성공하고 총선 이후를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총선 후 정동영 전 의원의 당선 등 정치변동이 일어나면 대권 전 신당창당 형태로 확장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광주 지역의 정치관계자는 “현재 천 의원이 광주 지역에서 신당을 도모하거나 그런 움직임은 없다. 그런데 비노계 인사들 자체가 세력을 도모해야 하는데 모두들 제각각이라 쉽게 뭉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천정배 의원이 해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친노를 견제하고 신당 창당을 못한다면 무소속 연대 형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천 의원이 그동안 ‘국민모임’과 ‘(새정치연합으로의) 재입당’을 부정했기에 무소속 연대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소속 연대는 천 의원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정치적 액션이다. 차기를 바라본다면 본인이 적극적으로 정계개편의 주체가 돼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게 지역 정가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세력이 없는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연대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5월 7일 의원총회에 참석한 안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의원과의 회동은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5월 28일 두 의원은 천 의원 사무실에서 20여 분가량 회동했다. 천 의원의 당선 후 안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남을 제안했고 그동안 광주에 있던 천 의원의 의원실에서 약속을 잡고 재보선 한 달여 만에 만남을 가졌다. 두 의원은 당선 축하 인사와 정치개혁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한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대권주자이자 비노계의 전 당대표가 무소속의 천 의원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각자 향후의 정계개편을 머릿속에 그리며 미리 ‘합’을 한번 맞춰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윤장현 광주시장과 광주 광산구을에 권은희 의원을 공천해 당선시킨 것에 이어 천 의원과도 결합한다면 호남에 의미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천 의원이 ‘안철수’ 연대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는 두 의원의 만남이 신당 창당의 어려움을 알고 친노 세력과 각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 대한 유대감 속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비노계의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천 의원은 호남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정치적으로도 입지를 세우는 것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쉽지가 않다. 안철수 의원도 합당 전 그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두 사람은 비슷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의원회관 5층 한구석에 대각선 방향으로 의원실을 마주하고 있는 두 의원은 조직력이 없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안 의원은 계파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사람은 많지 않다. 안 의원의 경제세미나에 자주 참석하는 권은희 의원과 당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했던 문병호 의원 정도가 친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두 의원의 이번 만남에 대해 ‘별일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다. 유대감이 있더라도 당이 다른 상황에서 연대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앞서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천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이고 천 의원이 무소속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싶어도 서로 같이 가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 때문에 두 의원이 파급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당이 통일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신당 창당을 주도하다 지난해 합당한 안 의원의 상황과 “다시 당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포한 천 의원이 ‘합치는’ 선택이 과연 가능할까. 정치권에서는 양측이 결합하는 전제조건으로, 당내 분열의 가속화로 비노계 의원들이 연쇄 탈당해 ‘천-안’ 중심의 신당을 창당하거나 아니면 총선 전 당에서 천 의원의 재입당을 삼고초려해 성사시키는 것이다.
이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김상곤 혁신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과도 맞물린다. 앞서의 비노계 한 의원은 “천 의원의 신당 창당 움직임은 총선 전이냐 후냐의 문제다. 분명 창당 움직임들은 있을 것이다. 이는 김상곤 혁신위와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김상곤 위원장이 100일 내외로 결과물을 내겠다고 했는데 개혁이 실패할 경우 비노계 이탈파가 생길 것이고 반대로 성공한다면 천 의원을 불러들일 명분이 생길 것이다. 혁신위 성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문재인 당대표가 김상곤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천 의원의 경우 재입당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큰 상황이다. 앞서의 광주 지역 관계자는 “광주 지역 정치인 조직들이 천 의원을 밀어준 것은 호남 신당 창당을 해달라고 밀어준 것이다. 만약 재입당한다면 반대 여파가 만만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이 천 의원에 삼고초려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명분’을 만들어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노계 표로 당선된 이종걸 원내대표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이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천 의원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매개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앞서의 비노계 의원은 “이종걸을 우리 비노계가 밀어줄 때 사실 그런 것도 기대한 것이다. 원내대표로서의 역할로만이 아니고 친노를 견제하고 비노계 역할을 하라는 의미였다. 천 의원을 데려와 비노계를 강화시킬 여지를 가질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천정배 의원의 최근 정중동 행보는 지역민심에 따라 호남창당을 하자니 힘에 부치고 재입당하자니 명분이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