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에 출연한 박지원 의원, 전현희 전 의원,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
종편은 한때 야권 인사들의 섭외난에 시달렸다. 지나친 보수색 때문에 종편에 출연하는 자체를 꺼린 탓. 하지만 각종 정치 이슈를 거치면서 종편이 연착륙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자 마냥 이를 두고 보기 어려워졌다. 앞서 밝힌 이유처럼 ‘정치 낭인’들에게는 대중적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있어 선호되고 있다. 종편에서 ‘정치평론가’ 명함을 달고 출연하는 이들은 전직 의원들을 비롯, 정무직 당직자나 보좌진 출신 인사들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대학 교수들도 단골 출연객들.
이들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상황을 야권의 시각에서 해석해주는 역할. 정기적으로 코너를 맡는 등 지속적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자신이 직접 또는 간접 연관된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한 출연이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선거 출마 등을 노리고 인지도 쌓기용으로 방송 출연을 택한다는 점에서 정기적 출연을 선호하는 편이다. 종편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한 인사는 “몇 군데에 겹치기 출연을 하다보면 솔직히 피곤하다. 하지만 집에서 노느니 인지도 쌓기 차원에서 나가는 편이 낫다. 주변에서도 ‘잘 봤다’고 인사하는 지인들이 많아지는 등 예전만큼 종편에 출연하는 걸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유정 전 의원, 박용진 전 대변인, 김경록 전 부대변인.
종편 출연자들은 대부분 반쯤은 정치권에 이미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총선 출마를 위한 교두보로 방송 출연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현희 전 의원이나 김유정 전 의원, 박용진 전 민주당 대변인, 김경록 전 부대변인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때에 따라 정치권에 종종 복귀하기도 한다. 정치 상황 해석뿐 아니라 각종 ‘야사’가 꾸준히 업데이트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편의 한 관계자는 “‘한물 간’ 정치인들보다는 요새 정치권 뒷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반 현역 정치인들이 섭외 시 선호된다”고 말했다.
여의도 입성보다 전문적인 ‘정치평론가’ 직업을 찾아 나선 이들도 있다. 전직 의원들보다는 보좌진이나 당직자 등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들이 많다. 안철수 의원의 대선후보 시절 캠프에서 상황실장으로 활동했던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부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시사칼럼니스트로 변신한 이숙현 씨,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업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가 한몫하고 있다. 출연 시간에 비해 출연료 액수가 나쁘지 않은데다 대부분 주업을 따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부업으로 꽤 쏠쏠하다는 뒷얘기다. 물론 종편 출연료 자체만으로 생활할 수준까지 기대한다면 무분별한 겹치기 출연이 불가피 하다. 콘텐츠도 그만큼 빈약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원색적 발언이 많아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종편은 예전에 비해 야권 출연자 섭외를 꽤나 손쉽게 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예전에는 야권에서 출연하겠다는 사람 자체가 없어서 큰 곤욕을 치렀다. 지난 대선 때는 그나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정도만 종편 출연을 꺼리지 않았었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이 종편 출연 빗장을 푼 게 2013년이다. 이후 인식이 많이 달라져 섭외가 그렇게 어렵진 않다는 반응이다. 다만 강경 운동파 출신이나 친노 진영에서는 여전히 종편과 거리를 두고 있다. 종편의 한 관계자는 “편견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우리로서도 특정 성향의 정치 세력들이 출연을 거부하다보니 그들의 입장을 반영해주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종편 출연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나친 겹치기 출연으로 내용 자체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은 데다 생각보다 여전히 ‘종편 출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진보 성향의 지지층이 많은 새정치연합 인사들은 나중에 지나친 종편 출연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정적 앙금이 쌓인 탓도 있지만, 친노 진영 인사들이 종편 출연을 아직도 금기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우리 유권자들이 종편에 거부감이 높은데 종편에 출연해 떠들어봤자 표가 되지도 않는 ‘저쪽 진영’ 인지도만 쌓아서 뭐하겠느냐”며 “오히려 괜한 구설의 빌미만 제공할 우려가 있어 앞으로도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종편 출연=긍정적 인지도 상승’의 공식이 성립하는지 확인할 시발점은 내년 총선이 될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서 종편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한몫을 한 점은 분명하지만, 아직 종편이 야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은 나온 적이 없다. 괜히 ‘종편만 떠도는 보따리장수’ 같은 이미지만 덧씌워진다면 엄격한 공천 과정을 통과하기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자극적 뉴스 생산에 매몰돼 있는 종편 특성상, 나중에 경쟁 후보에게 말실수 공격거리만 제공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나온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 상황이나 현안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예상과 기대로 말하는 경우가 많더라. 추측성 정치 공세 발언만 남발하는 사람을 누가 곱게 보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복잡한 정치영역을 다양한 해석을 통해 국민들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점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수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