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선생이 결혼과 함께 정착한 스페인 마요르카에 ‘안익태 선생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고 안익태 선생의 부인 롤리타 안을 비롯한 유족들은 안 선생의 서거 이후 생활고로 인해 스페인의 자택을 내놓게 됐다. 결국 안 선생의 유가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명색이 민족의 대표적인 음악가 유족들이 집세도 못내는 안타까운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일어난 데에는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도 한몫을 했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음악사 전공)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스페인에 주재한 한국 대사들은 부임할 때마다 유족들에 대한 지원 약속만 남발하다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라며 “정부의 무관심이 계속됐다”라고 말했다.
그때, 스페인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 사업가 권영호 인터불고그룹 명예회장이 나섰다. 권 회장은 원양어선 선원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지난 1979년 폐선 조치를 받은 낡은 어선 1척을 사업 기반으로 시작한 그의 사업은 날로 발전해 현재는 원양어업, 호텔, 스포츠레저업을 하는 종합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는 국내 최대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의 창립자기도 하다. 권 회장의 사위인 윤준식 인터불고그룹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90년, 장인께서 스페인에서 사업을 하던 때에 현지 교포들로부터 안익태 선생 유족들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됐다. 그래서 장인은 40만 달러를 들여 안 선생의 유가를 매입하고, 관리의 편의를 위해 유족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에 유가를 무상으로 기증했다. 장인께서는 딱 거기까지만 하셨다. 재단에 참여하거나 관여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권 회장의 유가 기부로 인해 한동안 무관심했던 정부도 뒤늦게 나서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유가보존대책’을 지시했다. 이러한 관심과 흐름 속에서 당시 <한국일보>를 중심으로 재단 설립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이 전개됐다. 그리고 드디어 1992년 12월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재의 ‘안익태기념재단’이 설립됐다. 초대 이사장은 전봉초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이었다.
안익태 선생은 1940~50년대 스페인 마요르카에 머물며 지휘와 작곡에 몰두했다. 선생 부부와 세 딸.
당시 사업에 관여했던 허영한 교수는 “거의 현지에 있는 집을 통째로 옮기는 수준이었다”라며 “당시 김 회장의 노력과 관심 덕에 유품들을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가져 온 유품들은 그대로 한국중앙박물관에 기증됐고, 온 국민이 볼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2007년부터는 안 선생의 모교인 숭실대학교(숭실중학교 후신)가 주도적으로 재단을 이끌게 됐다. 당시 5대 이사장으로 이효계 당시 숭실대학교 총장이 선임됐고, 재단 사무실도 모교로 이전됐다. 그해 11월엔 숭실대학교 안에 안익태 동상이 제막되기도 했다. 재단은 이후 매년 안익태 선생을 기리기 위한 기념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음악가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제1회 안익태 국제음악제’를 개최했다.
안익태 서거 50주년, 애국가 80주년을 맞은 안익태 기념재단은 올해를 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현재 재단은 허영한 교수에 의뢰해 ‘안익태 도록’을 제작중이다. 허 교수에 따르면, 해당 도록은 오는 8월 공개될 예정이며 안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록한 다양한 사진들이 수록될 계획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