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댕기머리 홈쇼핑팀이 직원들에게 자사 제품 구매를 종용하는 문자로 YTN 방송 캡처. 오른쪽은 판매 중지된 진기현 샴푸액.
특히 ‘마감 임박’이라는 글자가 쉴 새 없이 반짝거리고 반복되며 TV 화면을 꽉 채우고, 호스트와 도우미들이 마감 임박’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라도 하듯 독특한 홈쇼핑식 말투와 과장된 제스처로 추임새를 넣으면 ‘어머, 저건 사야해’라는 생각이 들며 어느새 전화기를 들기 일쑤다.
그런데 이 ‘마감 임박’이 사실상 조작된 것이라면? 최근 한 샴푸업체에서 직원들을 동원해 콜(Call)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매출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탈모 방지 한방 샴푸로 유명한 ‘댕기머리’ 제조사 두리화장품은 홈쇼핑 생방송 중 주문량이 저조할 경우 직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제품을 주문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화를 불렀다.
두리화장품 홈쇼핑팀은 홈쇼핑 생방송 중 직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한 세트씩 나눠서 두 세트 주문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으로 구체적 주문 수량까지 제시했다. 또 미주문시 ‘주문 안하신분들 서둘러 주세요. 너무 안 나오고 있습니다’라며 재촉하기도 했다.
회사는 제품을 구입한 직원들의 명단을 관리했고, 주문 후에는 한 사람당 10만 원에서 20만 원에 이르는 구매 비용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재기는 주문량이 회사 목표치에 미달할 때면 수시로 진행됐고, 200여 명의 본사 직원들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동원됐다.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이 진출하며 레드오션화 되는 한방 화장품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인기상품이라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대량 판매를 위해 홈쇼핑 입점 업체와 도매업자들이 미리 계산된 약속을 통해 주문을 넣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입점 업체들이 대량 판매를 위해서 도매업자들을 구매에 개입시키는 경우가 가끔 있어 왔다”며 “이 같은 꼼수를 막기 위해 한 사람이 다량으로 주문을 동시에 넣을 경우 걸러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렇지만 역부족인 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또한 입점 업체가 홈쇼핑 업체 몰래 재고 물량과 주문 물량을 속임으로써 사실상 콜 수를 조작하는 효과를 내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다고 한다. 홈쇼핑 업계 다른 관계자는 “거짓으로 수량이 얼마 없다는 식의 ‘매진 임박’ 같은 표현을 할 수 없게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항상 근거를 갖고 진행한다. 그렇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개별업체에서 그런 근거를 조작하려고 꼼수를 쓰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며 “한두 번은 욕심상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상 주문 취소가 갑자기 많이 들어온다든지 해서 다 드러난다”고 밝혔다.
문제는 홈쇼핑 입점 업체들이 직원들을 이용한 주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더라도 홈쇼핑 업체로서는 이를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앞서의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송출화면을 스테이션별로 해서 매출액이 구분이 되긴 하는데, 이렇게 해서 해당 업체에서 주문을 낸다고 하는 게 구분되기는 어려운 것이고, 게다가 요즘은 모바일로 많이 주문하기 때문에 스테이션별로 구분한다는 것은 별로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입점 업체가 콜 수를 올리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소비자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애기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우리에게 상담해 오는 내용들은 제품 하자에 관한 게 대부분이다. 꼼수 판매나 사재기 등의 경우 소비자들이 직접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당하게 콜 수를 조작하는 행위들은 일반 소비자들의 선택을 비합리적으로 유도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리화장품의 이 같은 사재기 의혹에 대해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까지 별다른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 측은 “우리 원의 조사 대상이 아니고 공정위 사안이다. 또한 우리 원은 민원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처리할 뿐 행정적 제재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원들에게 강요해서 판매하는 ‘사원판매’의 경우 법 위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일단 이 사례의 경우 홈쇼핑은 전자상거래이기 때문에 전자상거래법이 먼저 적용되고 사원판매 부분은 공정거래법의 일반 불공정거래 행위 중에 한 유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일 두리화장품이 제조한 ‘댕기머리 진기현 샴푸액’ 등에 대해 정기 감사를 실시한 결과 75개 품목에서 약사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이 가운데 2개 품목은 제조·광고 업무를 정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댕기머리 진기현 샴푸액’ 등 55개 품목은 제조과정에서 각각의 첨가제를 개별 추출하도록 정해진 제조 방법을 준수하지 않고 혼합 추출했으며, 제조·품질관리 기록서도 허위로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댕기머리 진기현 샴푸액’과 ‘댕기머리 진기현 프리미엄 샴푸액’ 2품목은 TV홈쇼핑에서 원료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광고해 광고 업무 정지 처분도 함께 내려질 예정이다. 홈쇼핑업계는 ‘가짜 백수오’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댕기머리 샴푸 후폭풍을 맞았다. 대형마트들과 홈쇼핑 등에서는 댕기머리 샴푸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두리화장품은 홈쇼핑 사재기 논란에 이어 설상가상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일요신문>은 두리화장품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답이 없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