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기도 광주 Y 미술관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윤인철-김미정 부부. 주례는 신랑 신부가 혼인서약을 각자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진제공=료한 디렉터
신부는 ‘결혼행진곡’이 아닌 중창단의 합창에 맞춰 입장했다. 고즈넉한 산기슭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올린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신부의 눈에 다 들어왔다. 누가 왔는지도 모른 채 빠르게 진행되는 기존 결혼식과는 분명 달랐다.
“아버지는 작은 결혼식 올리겠다는 딸 때문에 회사 사람 한 명 초대 못한다고 서운해 하셨어요. 어머니도 당신의 친구 한 명 초대 못한다며 한소리 하셨죠.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주변 어른들께서 가벼워 보이지 않겠느냐고 걱정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자 감동의 눈물바다가 됐죠.”
지난 3월 경기도 광주 Y 미술관에서 결혼한 김미정(여·31), 윤인철(47) 씨 부부 얘기다. 신랑·신부 양측을 합쳐 총 100명 남짓한 하객이 결혼식을 보기 위해 시골 외딴 곳을 찾아왔다. 경기도 광주 Y 미술관을 택한 건 미술을 전공한 김미정 씨였다.
“요란하고 빨리 진행되는 결혼식을 바라지 않았어요. 처음에 청첩장을 돌릴 때만 해도 시골 외딴 곳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여기가 어디야?’라며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교통과 관련한 불평불만은 전혀 없었어요. 다들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주시는 분들이었으니까요.”
결혼식은 한 시간 넘게 진행됐다. 주례는 신랑 신부가 혼인서약을 각자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진심을 담아 축하를 전하는 편지를 읽어줬다. 형부는 직접 쓴 시를 낭독하며 신랑과 신부를 축복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덕담을 해줬다. 결혼식을 함께 만들어준 사람들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펜션 웨딩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료한 디렉터
‘특별한 결혼식’이 꼭 크고 화려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최근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결혼식에는 수많은 하객도, 틀에 박힌 식순도 없다. 장소도 웨딩홀이 아닌 자택이나 미술관, 카페, 숲 등 제한이 없다. 웨딩홀 패키지에 비해 신경 써야 할 것은 많지만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꾸리는 작은 결혼식을 올린 부부들은 하나같이 “다시 해도 이렇게 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특급호텔이나 웨딩홀에서 이뤄지는 판박이 결혼식을 벗어나 소규모로 ‘나만의 결혼식’을 꿈꾸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하객 50명 내외의 소규모 결혼식을 진행하는 삼성동 A 업체 안재희 실장은 “2년 전만 해도 트렌드에 민감한 직업을 가진 부부들이 소규모 결혼식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직업군에 상관없이 작은 결혼식이 많이 대중화 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과거에는 작은 결혼식이 이뤄지는 장소를 확인하고 부모님들이 계약을 취소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2013년 한국소비자원이 결혼 당사자와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85%가 ‘결혼식에 사치 풍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며 “‘웨딩’만 붙으면 거품이 생기는 결혼식 비용과 똑같이 진행되는 결혼식 풍조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발로 ‘작은 결혼식’과 ‘셀프 결혼식’ 같은 새로운 결혼식 모형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작은 결혼식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평균 3000만~4000만 원이 들어가는 기존 웨딩홀 결혼식에 비해 비용과 하객의 규모는 절반 수준이다. 작은 결혼식을 좀 더 특별하게 연출하기 위해 비용을 더 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예단과 예물은 생략하거나 부부가 중심이 되는 결혼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식 장소와 형식, 식순에 제한이 없다는 것도 작은 결혼식의 특징이다. 지난 5월, 4년 열애 끝에 100명 내외의 하객을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올린 이유미 씨(여·31)는 작은 공간을 빌려 1부와 2부에 걸쳐 결혼식을 진행했다.
“평소 우리가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신부대기실이 아닌 입구에서 하객들을 맞이했습니다. 1부는 부모님과 친지 분들을 모셔놓고 결혼식을 올렸죠. 2부는 친구들을 초대해 천천히 식사를 하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눴어요. 친동생과 친구들이 직접 쓴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 됐다고 해요. 식비를 포함해 총 400만 원을 넘지 않은 것 같아요.”
소규모 결혼식 연출 전문가인 웨딩 디렉터 료한 씨(예명)는 “기존 결혼식과 달리 작은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근에는 놀이터에서 결혼식을 한 부부도 있었다. 신부가 어린이집 교사였기 때문이다. 카페나 미술관, 스키장, 자택 등에서 소규모 하객을 모시고 하는 결혼식도 있다. 사실 부부가 마음만 먹으면 아스팔트 위에서 하는 결혼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재희 실장은 “작은 결혼식은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 신부가 웨딩드레스가 아닌 평소 입던 정장을 입거나 드레스에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며 “결혼식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하거나,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결혼식을 진행하는 부부도 있다. 대부분 하객들과 함께 최소 4시간 정도 결혼식을 즐긴다”고 덧붙였다.
작은 결혼식이 각광을 받고 있는 만큼 명심해야 할 점도 있다. 료한 웨딩 디렉터는 “작은 결혼식 붐이 일면서 이와 관련한 업체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부부라면 그 업체가 진행하는 결혼식을 한번쯤은 가서 지켜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안재희 실장은 “작은 결혼식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꽃과 장식품을 챙기다 하객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한다면 후회가 남지 않을까. 주변에서 훈수를 둬도 휘둘리지 않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결혼식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작은 결혼식 비용은? 연출·음식·답례품 따라 ‘0’ 하나 더 붙고 안붙고 작은 결혼식이라고 해서 비용도 ‘작은’ 것은 아니다. 10명 내외의 하객을 초대해 200만 원의 비용으로 올리는 작은 결혼식도 있지만, 20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드는 작은 결혼식도 있다. 작은 결혼식은 웨딩홀을 벗어나는 대신 카페나 미술관, 숲과 같은 공간을 결혼식장으로 연출하는 데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또 하객의 규모가 줄어드는 대신 내놓는 음식이나 답례품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결혼식장 연출비용, 음식, 답례품에 따라 작은 결혼식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하객 50명 내외의 소규모 결혼식을 진행하는 삼성동 A 업체 안재희 실장은 “요즘에는 직업군에 상관없이 작은 결혼식이 대중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 씨는 결혼식부터 신혼여행까지 총 2500만 원을 지출했다. 그는 “작은 결혼식을 진행해주는 업체가 많아진 지금과 달리 2~3년 전에는 정보가 별로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준비를 해야 했다”며 “펜션을 빌리고, 꽃 장식 등 업체를 각각 계약했다. 음식을 잘 대접하고 싶어 1인당 10만 원 정도의 식비를 지출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웨딩홀에서 진행하는 것만큼 비용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성 씨는 “정말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실 분들만 모신 자리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더욱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 것 같다”면서 “그날 온 친구들이 ‘나도 너처럼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니 실제로 몇몇 커플은 소박하고 작은 결혼식을 했다”고 보탰다. 3남 중 막내인 김 아무개 씨(37)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서구의 호텔 한식당에서 일가친척과 친한 친구 총 13명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님은 평소 입던 정갈한 한복차림을 했고, 김 씨와 신부도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정장을 꺼내 입었다. 김 씨는 “첫째 형은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다. 양가 하객만 해도 600명이 넘었다. 부모님이 두 번 바빠지시는 건 볼 수 없지 않느냐. 평소 결혼식을 조용히 치르고 싶다고 양가 부모님께 오래전부터 말씀드렸기 때문에 별다른 반대는 없으셨다”면서 “신부와 먼저 식당에 도착해 직접 하객들을 맞이했다. 성혼서약을 하고 반지를 교환하는 것으로 식을 마무리했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돌아가며 덕담을 하며 2시간가량 식사를 했다. 식사비용과 간단한 꽃 장식, 답례품 을 준비하는 데 150만 원쯤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스스로도 이런 결혼식이 가능할까, 초라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일가친척들이 ‘용기에 감동했다’, ‘신랑 신부 얼굴을 이렇게 오래 볼 수 있는 결혼식은 오랜만이다’며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셨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믿고 지지해줄 배우자를 만난 것이 작은 결혼식을 가능하게 해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 |
넘어야 할 난관들 ‘뿌린 돈은 거둬야…’ 부모님 설득이 우선 한국에서 작은 결혼식이 가능하려면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혹은 부모님이 엄청 깨어있으시거나 둘 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속 있는 작은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부부들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작은 결혼식을 위해서 넘어야 하는 난관이 많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그 난관을 돌파하는 방법을 정리했다. 주변에서 두는 훈수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배포도 필요하다. 작은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혼주나 신랑 신부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결혼식은 부모 행사기도 하다’, ‘그래도 은수저 하나는 받아야 한다’, ‘숨어서 하는 결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남들이 평범하게 결혼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같은 말이다. 허영과 체면에 휘둘리지 않는 신부와 혼주에게서 멋진 결혼식이 탄생한다는 것은 작은 결혼식을 해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결혼식은 하객과의 피드백이 중요하다. 이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결혼식 참여 여부를 전날까지 꼼꼼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객을 줄여야 하다 보니 어디까지 청첩장을 돌려야 할지 정하는 어려움도 있다. 결혼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혼을 알리는 정중한 카드를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작은 결혼식은 형식이 없는 것이 형식이다. 이 때문에 여백을 부부가 서로 상의하며 채워 나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명이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면 싸움나기 십상이다. 작은 결혼식에는 약간의 귀찮음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