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최근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고 있고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구광모 상무 후계 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LG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구본무 회장의 아들이자 그룹 후계자가 유력한 구광모 (주)LG 상무의 승진을 알렸다. 구 상무는 1978년생으로 올해 나이 37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33세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31세에 상무로 승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늦은 감이 있는 나이다.
하지만 구 상무의 출발과 경력을 짚어보면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구 상무가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은 2006년 LG전자 대리로 입사하면서부터였다. 해외법인 등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4월에야 시너지팀 부장으로 승진했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구 상무의 승진을 예사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LG그룹의 후계 승계 작업이 본격화된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함께 후계 승계와 관련한 일들이 잇따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예측은 새해 들어 하나둘씩 들어맞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0일 LG상사는 범한판토스를 인수했다. 범한판토스는 범LG가의 물류회사로 LG에 피인수되기 전인 2013년 2조 400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매출의 60%가량이 LG그룹과 거래를 통해 올렸지만 계열사가 아닌 탓에 일감몰아주기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범한판토스 인수로 LG상사는 한 단계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범한판토스 인수가 LG 후계 승계와 관련 있다고 해석된 까닭은 구광모 상무가 지분 획득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LG상사 지분 2.11%를 보유하고 있는 구 상무는 개인 자금으로 주당 30만 원에 범한판토스 지분 7%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 상무의 지분 획득 참여로 범한판토스는 일약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에 비견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범한판토스와 현대글로비스는 후계자의 지분이 있는 물류회사로 그룹 일감을 도맡다시피 하면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구 상무가 향후 범한판토스 지분을 활용해 후계 승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았다. 범한판토스의 기업공개·상장 가능성이 제기된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범한판토스와 LG상사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관건”이라며 “LG가 범한판토스의 성장 스토리와 상장, 주가 부양에 공을 많이 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본무 회장
이를 의식해서인지 구 상무는 승진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말부터 틈날 때마다 (주)LG 지분을 늘려왔다. 지난해 12월 24일 친부인 구본능 회장에게 (주)LG 지분 190만 주를 수증(受贈)한 구 상무는 지난 4월 7일 장내매수를 통해 9만 주를 사들였다. 지난 5월 27일에도 역시 (주)LG 주식 7만 주를 장내매수로 취득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구 상무는 (주)LG 지분을 5.92%까지 늘렸다.
LG그룹은 구 상무의 지분 확대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너 일가 간 지분 거래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라며 “구 상무의 지분 확대는 오너 일가 중 누군가 매도한 지분을 사들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후계자로 지목된 구 상무에게 오너 일가의 지분이 점차 모여들고 있는 것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지분 구조의 재편이자 후계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아직까지 후계 승계에 대한 고민과 움직임이 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회장님이 건재하신 마당에 후계 승계를 논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재계 해석은 다르다. 총수에게 갑작스런 일이 닥치면서 부랴부랴 움직이는 삼성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차근차근 움직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 역시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다만 이건희 회장 와병이라는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분주히 움직이는 것일 뿐 웬만한 대기업은 전부 후계 승계 작업을 준비해놓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LG 역시 후계 승계를 위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핵심이다. LG그룹에 따르면 범한판토스 상장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지만 삼성SDS나 현대글로비스의 경우를 비춰보면 상장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범한판토스와 LG상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당 30만 원을 주고 획득한 7% 지분으로 후계 승계 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후계 승계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는 데 범한판토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며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처음부터 구 상무에게 지분을 몰아준 후 키운다면 몰라도 범한판토스의 기업가치가 삼성SDS나 현대글로비스와 같아질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LG가 후계 승계 작업을 어떻게 펼쳐갈지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